[그곳의 맛] [8] '60년 손맛' 횡성 안흥찐빵… 오늘부터 3일간 빵빵한 축제
지난 4일 찾은 안흥리는 입구에서부터 구수한 찐빵 냄새를 풍겼다. 마을에서 성업 중인 찐빵 업체는 23곳. 가게마다 내걸린 무쇠솥에선 하얀 김이 모락모락 새어 나왔다. 한 가게에 들어서니 작은 온돌방에서 주민들이 모여 앉아 쉴 새 없이 찐빵을 빚어 내고 있었다. 30년째 찐빵을 빚는다는 진순섭(여·69)씨는 "평일엔 5000개, 주말엔 1만개 정도 찐빵을 만든다"며 "날이 추워지면서 찐빵을 찾는 손님이 많아져 손을 놀릴 틈이 없다"며 웃었다.
강원도의 명물 안흥찐빵은 전통적인 제조 방식으로 빚어 오래 인기를 끌고 있다. /횡성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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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찐빵의 유래는 196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균 해발 450m의 안흥면은 기온이 낮아 벼를 재배하기 어려웠다. 주민 대부분은 팥 등 밭농사로 소득을 올렸다. 6·25전쟁 이후 쌀 구경은 어려웠다. 그나마 밀가루가 흔했다. 주민들은 밀가루 반죽에 팥 앙금을 넣은 찐빵을 만들어 먹으며 주린 배를 달랬다. 주민들끼리 만들어 먹던 찐빵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안흥의 지리적 이점 덕이다. 안흥은 서울과 강릉을 잇는 42번 국도가 지나는 중간 기착지다. 대관령을 넘어 서울과 강릉을 오가던 길손들은 이곳에 들러 점심을 먹고 간식을 챙겼다. 길손을 맞는 주막들이 간식거리로 내놓은 것이 밀가루 반죽에 막걸리를 넣어 빚은 찐빵이었다. 오가는 길손의 입소문을 타고 안흥찐빵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전통적인 제조 방식을 고수하는 것도 안흥찐빵의 오랜 인기 비결 중 하나다. 안흥면 찐빵 업체 23곳 중 13곳이 기계를 쓰지 않고 손으로만 빵을 만든다. 반죽 숙성도 옛 방식 그대로 온돌방에서 한다. 바뀐 것은 온돌을 데우는 데 장작이 아닌 기름을 쓴다는 점뿐이다. 30여 분간 1차 숙성을 거친 반죽은 팥소를 넣어 모양을 잡는다. 그러곤 다시 온돌방에서 2시간 정도 2차 숙성을 거친다. 팥소는 찐빵을 만들기 하루 전 무쇠솥에 넣어 4시간 이상 삶는다. 삶은 팥은 설탕을 넣어 30분가량 더 졸여낸다. 반죽부터 쪄내는 데까지 8시간이 걸린다. 2대째 찐빵 업체를 운영하는 김성순(46)씨는 "손으로 빚어 만드는 빵은 기계로 찍어낸 빵보다 훨씬 쫄깃하다"고 말했다.
강원 횡성군 안흥면사무소 공원에 설치된 빵양 동상이 찐빵 접시를 들고 관광객을 맞고 있다. /횡성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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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군은 지역의 대표 상품인 안흥찐빵을 육성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5년에는 '횡성군 안흥찐빵산업 육성 조례'를 제정해 중장기적 발전 계획을 수립했다. 안흥찐빵 명품화를 위해 군수품질인증제도 운영 중이다. 군수가 직접 안흥찐빵의 품질 관리에 나선 것이다. 군수품질인증을 받기 위해선 손으로 직접 빚어야 하고, 국내산 팥을 써야 한다. 10곳의 찐빵 업체가 군수 품질 인증을 받았다. 이 업체들은 인증 마크를 포장 용기에 부착해 판매한다.
국산 팥 가격이 올라가면 고충을 호소하는 찐빵 업체가 늘어난다. 지난해 군에서는 64㏊ 밭을 확보해 팥을 길러 공급했다. 국비를 포함해 4억1000만원을 들였다. 올해는 재배 면적을 102㏊ 로 넓혔다. 조시형 횡성군농업기술센터 작물환경담당은 "팥 80㎏ 한 가마 가격이 130만원에 이를 때도 있다"며 "안정적으로 찐빵 업체에 국산 팥을 공급하기 위해 군에서 자급화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매년 10월이면 안흥면에서 '안흥찐빵축제'가 열린다. 지난해 축제엔 전국에서 5만1072명이 찾아 25억4100만원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왔다. 12일부터 14일까지 열리는 올해 축제의 주제는 '3일간의 안흥찐빵마을 여행'이다. 커플 찐빵 먹기 대회 등 특색 있는 체험 프로그램 31개가 준비됐다. 손 찐빵 업체 10곳이 축제에 참여해 전통의 맛을 선보인다. 찐빵 판매장에선 저렴한 가격에 안흥찐빵을 살 수 있고, 직접 빚어 볼 수도 있다. 찐빵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진행해 황금 반지를 나눠주는 이벤트도 있다. 안흥찐빵과 삼형제바위의 전설을 마당극으로 꾸며낸 찐빵 도깨비 마당극도 이어진다.
한규호 횡성군수는 "안흥찐빵은 대한민국 누구나 아는 안흥의 대명사"라며 "안흥찐빵 명품화 사업을 추진해 우리나라 대표 먹거리로 알려나가겠다"고 말했다.
[횡성=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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