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수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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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트립in 심보배 기자] 가을 감성이 가장 짙어지는 시간은 노을이 질 무렵. 따스한 온기보다 차가움이 주변을 감쌀 때다. 붉게 저물어 가는 노을 너머 숨겨놓은 그리움과 외로움이 어둠을 타고 순식간에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는다. 헛헛한 마음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 가을은 풍요로운 만큼, 마음 깊숙한 곳까지 허전함을 채운다.
추억을 더듬어 떠나고, 평소 보고 싶었던 친구를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워 몸서리가 쳐지기도 한다. 그렇게 가을은 온 마음을 흔들어 어디론가 향하게 하고, 그곳에서 허전했던 마음은 평온을 찾게 된다. 무작정 달려가도, 혼자여도 좋은 곳 ‘수종사’에서 가을과 동행한다.
수종사 길은 우리의 인생처럼 구불구불한 오르막을 지나 잠깐 평지를 만나나 쉽다가도 또다시 가파른 경사와 폭이 좁은 길을 만난다. 삶이 쉬운 것이 아닌 것처럼 수종사도 쉽게 오르지 말라는 무언의 뜻을 품은 듯,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운길산수종사’ 현판이 있는 입구부터 평온의 길 산책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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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가다 멈춘 산’의 의미를 지닌 운길산. 수종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로 운길산 중턱에 자리 잡은 사찰이다. 세조가 금강산 구경을 다녀오다 양수리에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한밤중에 종소리가 들려 잠이 깬 왕은 신하들에게 부근을 조사하게 해 바위굴을 발견하게 된다. 굴속에 18 나한이 있었고,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들려 이곳에 절을 짓게 한 것이 ‘수종사’다. 또한 조선전기 최고의 문장가 서거정이 ‘동방 사찰 중 제일의 전망’이라고 극찬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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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문을 지나 오르막길을 따라 걷는다. 나뭇잎 사이로 가을 햇살은 길을 비추고 토실토실 익어가는 도토리가 ‘투둑’하고 떨어진다. 도토리를 주워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라, 기억의 어느 날 나의 추억을 불러낸다. 가을이 되면 산 밤을 주워 구워 먹기도 하고, 도토리를 곱게 갈아 묵을 만들어 먹었던 어린 시절 가족의 모습이 가을바람처럼 휘리릭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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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길을 만난다. 돌담길 위에는 크고 작은 돌탑들이 줄지어 있다. 간절한 소망의 무게도 돌 하나에 같이 실려 세찬 비바람을 이기며 그 자리를 지킨다. 그 자그마한 것들에 새삼 감동이 밀려오는 이유는 먼지. 누군가 올려놓은 돌탑 위에 작은 돌 하나 올려놓으면서 무너지면 안 된다는 염원을 담아 집중해 돌을 올려놓는 데 성공한다. 이 돌탑 하나 올리는데도 긴장감과 책임감까지 느껴지니 삶의 무게는 아주 사소한 것들의 연속성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작은 정성이 모여 큰 뜻을 이루고, 소소한 관심이 무너져 내리는 사람을 일으키고, 그늘져 있던 사람을 밝은 빛으로 인도하니, 삶은 나지막한 곳, 작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맡는다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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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정헌’ 옆 넓은 마당에서 바라보는 양수리의 풍경은 말보다 마음을 꿈틀거리게 하고 심장은 뛰었다 다시 평온을 찾게 한다. ‘묵언’이라는 팻말이 무색할 정도다. 가까이 보이는 남양주 물의 정원과 저 멀리 세미원, 두물머리, 양수대교가 제 자리를 지키고 있고, 하늘 위 떠다니는 구름만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흘러갈 뿐이다. 물도 흐르고 싶어 흐르는 게 아닌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으니, 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수종사 무료 다실 ‘삼정헌’에는 가을 마중을 나온 사람들이 조용히 차를 마신다. 다실에 적혀 있는 ‘당신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글귀를 되뇌며 세상없을 여유와 평온한 마음으로 나 또한 차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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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종사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선불장, 약사전, 응진전, 산신각이 있고, 태종의 부인이었던 정의옹주의 부도,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석탑 ‘수종사팔각오층석탑’이 있다. 경기도유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된 석탑은 아담하면서 화려한 탑신의 모습과 안정적인 비율, 상륜부까지의 섬세한 조각으로 인해 학술적 역사적 가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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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은 500년 동안 수종사와 함께 한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가을이면 수종사를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나무는 가을 정취를 만끽하기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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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둘 곳 없어 헛헛한 마음을 부여잡고 수종사를 둘러보고 나니, 내 안에 있었던 작은 마음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듯하다. 애써 채우려 하지 않아도 숨겨져 있었던 그리움과 외로움까지 품게 된다. ‘당신이 있기에 행복합니다.’라는 말처럼 우리도 누군가에게 이미 축복의 대상이고, 앞으로도 행복을 전파할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자.
여행 정보
- 수종사를 차량으로 가려면 주의를 요하는 급커브길과 도로 폭이 좁은 길을 만난다. 초보운전이라면 운길산역에서 주차하고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 양수리 일대가 한눈에 담기는 자리 산신각 앞에서 바라보는 풍경 또한 아름답다.
- 삼정헌은 무료 다실로 녹차를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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