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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쓰나미의 땅, 올레길로 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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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기 올레]

제주올레 세번째 해외올레길 개장

죽음의 땅에도 꽃은 다시 핀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피해를 직격으로 입은 일본 도호쿠 지역 미야기현에 지난 7일 '올레'가 열렸다. 게센누마(가라쿠와 코스)와 히가시마쓰시마(오쿠마쓰시마 코스)에 열린 각 10㎞ 코스. 걷기 여행 선풍을 일으킨 제주 올레는 2012년 2월 규슈(현재 21개 코스), 2017년 6월 몽골(2개 코스)에 진출했다. 미야기현 '올레'는 이번이 처음이다.

쓰나미 대피로가 올레 코스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미야기현 오시카반도 동남쪽 바다에서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지진으로 사망한 1만9667명 중 1만566명이 미야기현 사람들이다. 미야기 올레 1코스로 문을 연 게센누마시(市)는 대지진 당시 도시 전체가 불타는 모습이 TV를 통해 전 세계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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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기 올레길을 걸으며 태평양을 바라보는 사람들. 동일본 대지진의 직격탄을 맞은 미야기현에 올레길이 생긴다고 하자 이 지역 주민들은“쓰나미 대피로가 올레길이 된다”며 반겼다. /제주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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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반의 시간이 지났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아픔을 잊지 못한다. 오쿠마쓰시마 지역 어부인 사쿠라이 코사쿠(67)씨는 대피소였던 미야토 초등학교(현 미야토 자연의 집)에 올라 쓰나미가 휩쓸고 간 마을을 바라봤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집들이 들판으로 떠내려와 산산조각 깨진 채로 넘어져 있었다"고 했다. 마을 주민들은 1년 반 동안 잔해물을 치우고 쓰레기를 줍는 등 마을 복구에 힘썼다. 게센누마시 관광협회 직원 구마가이 요(38)씨는 "이번 올레 코스에는 쓰나미가 났을 때 산으로 향하는 대피로이자, 전기와 수도가 끊겨 일상생활이 어려울 때 주민들이 옆집 안부를 물으러 다녔던 길이 포함됐다"고 했다.

길에는 쓰나미가 할퀴고 간 상흔이 아직 남아 있다. 뿌리가 뽑힌 채 쓰러진 나무가 곳곳에 보이고, 쓰나미 당시 심해에서 육지로 떠오른 직경 6m, 무게 약 150t의 암반도 게센누마 올레에서 볼 수 있다.

대지진 이후 관광객 수는 급감했다. 지난해 게센누마에는 145만6000명, 히가시마쓰시마에는 68만7147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재해 전인 2010년의 절반 수준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관광객들은 도호쿠 지역을 꺼리지만 18일 게센누마와 히가시마쓰시마의 방사능 수치는 0.06마이크로시버트로 서울의 방사능 수치(0.114마이크로시버트)보다 낮았다.

주민들이 발 벗고 나서 만든 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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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을 열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발 벗고 나섰다. 동네 사람들만 아는 작은 길들을 알려 코스를 짰다. 큰 차로가 생기면서 잊힌 게센누마 코스의 야에몬자카가 대표적이다. 주민들은 길을 덮고 있던 나무와 덤불을 정리해 예쁜 길로 되살려냈다. 오히사 마사노리 히가시마쓰시마시청 관광사업추진반장은 "마을 어르신들이 어릴 때 학교 다니던 길이라며 알려주고, 한 주지 스님은 숨겨진 절 뒷길을 안내해 줘 멋진 코스를 짤 수 있었다"고 했다.

게센누마 주민 네기시 에마(26)씨는 "올레 개장을 앞두고 주민들이 집 앞을 모두 깨끗이 청소했다"며 "사람들의 발길이 그리웠던 것"이라고 했다. 지역 주민들은 개장식을 기념해 집 앞에 나와 올레꾼들을 환영했다. 녹차와 메밀죽을 나눠주며 "안뇽하세요" "캄사하무니다" 등 서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식당을 운영하는 오야마 노리코(40)씨는 "제주 올레가 미야기현 전체로 확장돼 예전 같은 활기가 지역에 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쓰나미 피해로 농작물을 지을 수 없어 무화과 과수원을 재배하는 오쿠마쓰시마 주민들은 "올레꾼들에게 대접할 무화과 요리를 연구하고 있다"며 "닭다리살을 삶아서 그 위에 무화과 소스를 뿌려 먹는 요리, 무화과 구이를 맛보러 오시라"며 웃었다.





[게센누마·히가시마쓰시마=이해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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