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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서로 방을 바꾼 두 여성의 탈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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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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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대만 합작드라마 <투 시티 투 걸스>

대만 타이베이의 오래된 동네 다다오청에 사는 중의사 녠녠(천이룽)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기만 하다. 그녀는 어린 시절 가족의 곁을 떠나 새로운 삶을 찾은 생모처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꿈꾼다. 한편, 샌프란시스코의 프로그래머 조지핀(쩡페이위) 역시 다른 곳으로의 탈주를 계획 중이다. 대만 출신의 부모 밑에서 태어나 미국인으로 자란 조지핀은 독립적인 삶을 원한다. 어느 날 이들에게 꿈에 한발 다가갈 기회가 찾아오고, 이를 붙잡기 위해 두 여자는 타이베이에서 조우한다.

<투 시티 투 걸스>(원제: A Taiwanese Tale of Two Cities)는 각각 다른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던 두 여성이 방을 교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넷플릭스가 대만의 제작사와 합작한 오리지널 드라마로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된 작품이다. 그동안의 현대 여성 자아 찾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들의 여정이 어느 순간부터 점점 일정한 패턴을 따라가는 가운데, 서로 다른 문화권에 사는 두 여성이 거주지를 맞교환하면서 펼쳐지는 모험담은 꽤 풍부한 여정을 그려나간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드라마는 두 여성의 탈주를 보여주기 전에 먼저 한곳에 붙박인 삶부터 보여준다. 녠녠은 본인도 중의사이면서 너무도 약한 체질 때문에 매일 밤 중의사인 아버지의 진맥을 받으며 규칙적인 시간에 잠들어야 한다. 한약재와 전통차 향이 가득한 동네는 정겨운 한편, 오래 고인 물처럼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누구도 명확히 이유를 말해주지는 않았으나, 녠녠이 어렸을 때 가족을 떠난 엄마 역시 같은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녠녠의 갑갑함은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 중인 남자친구의 현실과 대조되면서 더 강해진다. 그런가 하면 조지핀에게는 대만계 미국인 여성이라는 한정된 정체성이 따라다닌다. 분명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자란 미국인이지만 백인은 아니고, 대만인 커뮤니티는 또 불편하다. 모친은 그녀가 결혼을 통해 안정된 가정을 꾸리기를 바란다.

녠녠과 조지핀을 묶는 공통점은 여성으로 태어난 순간 제한되는 삶의 조건이다. 그녀들은 무작정 탈주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본다. 그리고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여성으로서 서로에게 다른 삶의 기회를 제공하며 성장을 상호 지원한다. 실제로 극 중에서 녠녠과 조지핀의 첫 만남은 웬만한 로맨스 드라마 남녀 주인공의 첫 인연보다 흥미롭게 그려진다. 태평양 휴양도시에서 1년간 최고의 일자리를 보장한다는 말을 듣고 한 대회에 참가한 둘은 주최 쪽이 홍보와 달리 미인대회처럼 진행하자 함께 항의하다가 친구가 된다. 남성 연대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그 어떤 갈등도 없이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대를 맺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신선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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