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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공항 화장품 매장 선배님은 의자를 지급 받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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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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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친절한 기자들로 처음 인사를 드리는 24시팀 최민영입니다. 경찰서를 출입하며 기사를 쓰는 저는 얼마 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점의 한 화장품 매장에서 판매직 아르바이트를 하고 왔습니다.

제가 공항으로 출근을 하게 된 건 ‘쇼윈도 노동의 현실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생생하게 전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보건과학) 연구팀(김승섭·최보경·김지환·윤재홍·유정훈)과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은 지난 봄부터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2806명의 건강 실태를 조사했습니다.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판매직 노동자들의 증언대회에서 최종 조사 수치가 발표됐는데, 숫자가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분명 있었습니다. 저는 추석 전부터 취업 준비를 해서 이달 초부터 일주일 동안 공항에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난 17일부터 ‘쇼윈도 노동의 눈물’이라는 꼭지명으로 <한겨레> 지면에 세 차례 실렸습니다.

이제는 전 직장(?)이 되어버린 화장품 매장을 생각할 때마다 제가 가장 궁금한 소식은 ‘그래서 부서진 의자는 교체됐을까?’ 입니다. 면세점에서 일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은 발이 아픈 것이었습니다. 딱딱한 타일 바닥 위에서 굽 있는 구두를 신고 하루 종일 서 있다보면 발바닥이 부서질 것 같았습니다. 의자가 절실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일했던 브랜드는 지난달 초 각 매장에 의자를 지급했지만, 저희 매장의 의자는 고장이 나서 앉을 수가 없었습니다.

같은 브랜드 소속인 옆 매장 직원들이 앉아서 일하는 게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한 선배님한테 “우리는 언제쯤 의자를 다시 받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선배님은 “모른다”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습니다. 본사에 여러번 이야기 했지만 장기 출장을 간 담당자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의자 추가 지급을 논의하기 어려울 거라는 답을 들었다는 겁니다.

서비스 노동자들의 ‘앉을 권리’는 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고용노동부는 10년 전인 2008년 대형마트에 의자를 두도록 했고, 2011년에는 ‘휴게시설과 의자 설치 의무화’를 규정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많은 백화점·면세점·브랜드 본사는 직원들에게 의자를 지급하는 데 여전히 소극적입니다. 의자를 지급하지 않았을 때 벌금이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등의 제재 규정이 전무해 회사가 손쉽게 의무를 회피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나몰라라’ 하면 현장의 노동자들은 대응할 방법이 없습니다. 본사 직원이 이달 말쯤 출장에서 돌아온다고 했는데, 선배님은 다시 의자를 지급해주겠다는 확답을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면세점에서 일을 하며 가장 친하게 지냈던 ‘중국 동포 언니’가 있었습니다. 외국인으로서 이곳에서 일을 하며 힘든 점이 있냐고 물을 때마다 언니는 “그런거 없고 너무 좋다,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취업 과정에서 구인구직사이트에 올라온 채용 공고를 보면 ‘외국인이 지원할 경우 무범죄경력증명서 제출 필수’라는 문구가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출신 국가나 출신 민족을 이유로 고용과 관련해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는 ‘차별’”이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문구를 적은 업체 쪽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을 땐 “다들 그렇게 하고 있다”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태도였습니다.

중국인들이 한국 면세점의 ‘큰손’으로 떠오르면서, 면세점들은 중국어를 잘하는 직원을 필요로 합니다. 제가 취업한 파견업체 직원도 근로계약서를 건네면서 “중국어 못해서 매우 망설여지지만 사람이 급해서 그냥 뽑는거니까 일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고 미리 경고하기도 할 정도였거든요. 실제로 이번 판매직 건강실태 조사에 응한 이들을 살펴보면, 조사에 참여한 면세점 노동자 811명 중 15%인 122명은 중국인이었습니다. 중국인 직원들이 면세점에서 꼭 필요한 이들이 된 상황에서, 언니와 같은 외국인 직원들은 어떤 겪는 고충을 겪으며 일하는지도 궁금한 점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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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가 그만둔 매장 빈 자리는 다행히 바로 채워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달 말이면 또 다시 빈 자리가 된다고 합니다. 제가 처음 출근했을 때도 매장 선배님은 “회사가 비용 문제 때문에 계속 아르바이트만 쓰는 탓에 사람이 너무 자주 바뀌어서 힘들다”고 했습니다. 두 딸이 어려서 퇴근한 뒤 집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선배님이 더 힘들게 일을 할까봐 이것도 걱정이 되네요. 그만두면서 그 이유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나와서 미안한 마음도 큰데 이 지면을 빌려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쇼윈도 노동’ 현장이 얼마나 바뀔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최민영 24시팀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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