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승낙·자발적 배상 등 가능성 희박…신일철주금 강제집행도 사실상 불가능
권순일·조재연 "청구권협정으로 권리행사 제한…정부가 대신 보상해야"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30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했지만, 피해자들이 실제 배상을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일본 기업 대신 배상청구권 제한 상태를 유발한 우리 정부가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의 반대의견이 관심을 모은다.
법원과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판결에 따라 신일철주금이 징용 피해자에게 1억원씩의 손해배상을 하려면 일본 법원의 승낙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미 신일철주금의 배상책임을 부정하는 확정판결을 내린 일본 법원이 한국 법원 판결의 집행을 승낙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신일철주금이 자발적으로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는 한 한국 법원이 내린 판결을 집행하려면 신일철주금의 국내 재산에 대해 강제집행을 실행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으로 남는다.
하지만 한국법인을 두지 않은 신일철주금의 국내 재산은 피해자들의 배상금을 충당하기엔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징용 배상' 일본 신일철주금 건물 [연합뉴스 자료사진] |
더구나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직후 신일철주금 측은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신일철주금 측은 "이번 판결은 한일 양국 및 국민 간의 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1965년 한일청구권·경제협력협정, 그리고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견해에도 반한다"며 반발했다. 신일철주금이 자발적으로 배상을 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는 대목이다.
사실상 배상금을 받을 길이 막혀 있는 사정 때문에 '우리 정부가 대신 피해를 배상하라'는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의 반대의견에 관심이 쏠린다.
두 대법관은 '배상책임을 부정한 일본판결은 국내효력이 없다'거나 '신일철주금과 가해기업인 구 일본제철이 법적으로 동일한 법인'이라는 대법관 다수 의견에는 같은 의견을 냈다. 하지만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이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다수의견에는 반대했다.
두 대법관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청구권협정의 의미는 양국의 국민이 더이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됐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이어 "개인청구권의 완전한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訴)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일본 외무성 문서 "한일협정과 개인청구권 무관" |
두 대법관은 "청구권협정이 우리 헌법이나 국제법에 의해 무효가 되지 않는 한 협정은 문언과 그 내용에 따라 지켜져야 하며 개인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돼 피해를 본 국민에게는 국가가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일본 정부의 청구권협정에 따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제한되므로, 이러한 기본권 제한상태를 유발한 우리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보상해야 한다는 취지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신일철주금으로부터 배상받을 방법이 요원한 상황에서 두 대법관이 내놓은 대안이 피해자들의 실질적인 피해회복을 위한 방안이 아니었겠느냐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는 "한·일 청구권협정은 국가 간 조약과 같은 것이므로 엄격한 법해석이 필요하다"면서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의 반대의견은 조약의 내용을 존중하면서도 피해의 실질회복에 기여하는 효과적인 대안이었다"고 평가했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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