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 들어서서 자리에 앉아 있다./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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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유죄' 입장을 견지해 온 대법원이 14년만에 '무죄' 취지로 판례를 변경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대체복무제가 마련되기 전까지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유죄 판결과 함께 통상적으로 1년6개월의 실형이 선고돼 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다시 판단하라며 창원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3년 9월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이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져 실형 선고를 받고 2016년 7월 상고를 제기했다.
병역법 제88조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통지에 응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정당한 사유'에 종교를 이유로 한 병역 거부가 포함되는지가 쟁점이었다. 이날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면서 이제까지의 판례를 변경했다.
대법원은 "국가가 개인에게 양심에 반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형사 처벌 등으로 제재하는 양심적 제한은 기본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 "형사 처벌 등 제재를 감수하지 않는 이상 내면의 양심을 포기하거나 인격적 존재 가치를 파멸시키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은 "이 문제는 병역법 88조 1항의 정당한 사유라는 문헌의 해석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자신의 인격 가치를 스스로 파멸시키기 때문에 불이익에 대한 어떠한 제재라도 감수하면서 이행을 거부한 것이고 이들에게 집총과 병역 의무를 강제하고 형사 처벌을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고 본질적인 위협"이라고 봤다.
마지막으로 대법원은 “자유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지만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인정해야만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런 다수 의견에 대해 이동원 대법관은 별개의견을 내놨다. 이 대법관은 국가의 안전보장에 우려가 없는 상황을 전제로 진정한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경우에 정당한 사유를 인정해야한다면서 같은 취지지만 다른 이유를 내놨다.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들도 이어졌다. 권순일·김재형·조재연·민유숙 대법관은 “양심의 자유는 인간 존엄의 필수적 전제로서 인간으로서 가지는 보편적인 권리”라며 “내면적 양심의 포기와 인격적 존재가치의 파멸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양심의 명령을 지키는 통로를 열어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박정화·김선수·노정희 대법관은 다른 보충의견을 통해 “국제평화주의와 국제법 존중주의는 국가질서 형성의 기본이 되는 헌법상 중요 원리”라며 “국제인권규약에 조화되도록 법률을 해석하는 것은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사법부가 지켜야 할 책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다수의견에 대한 반대의견도 있었다.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등 4명의 대법관은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한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이 개인적인 신념이나 가치관, 세계관 등과 같은 주관적 사정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할 수 없다”고 보고 반대의견을 냈다.
김소영·이기택 대법관은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으로 “다수의견은 특정 종파의 병역거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헌법이 보호하는 양심의 범위를 근거 없이 제한하고 결과적으로 양심의 자유를 더욱 억제하는 것”이라며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대체복무제 도입 등을 통해 해결할 국가정책의 문제”라고 봤다.
조희대·박상옥 대법관은 또 다른 보충의견으로 “국가안전보장과 국토방위에 직결되는 이런 중차대한 문제에 대한 헌법제정권자의 결단은 매우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대체복무 등 시혜적인 조치를 강구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처벌규정인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포함시켜 무죄선고를 가능하게 하는 해석론은 헌법에 위배되고 법리에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따라 앞으로 재판에서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는 검사가 증명해야 한다. 검사가 '진정한 양심에 따라 병역거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지 못하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처벌받지 않게 된다.
대법원은 2004년 7월 전합 판결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가 유죄라는 입장을 유지해왔으나 이번 판결로 판례를 변경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한 문제제기는 계속 이뤄져 왔다. 2004년 대법원 전합 판결이 나온 이후 대법원이 아닌 하급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건수는 현재까지 110여건에 달한다.
당시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양심의 자유'가 병역 의무 이행에 따른 헌법적 법익보다 우월한 가치라고 할 수 없다"며 "양심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헌법상 허용된 정당한 제한"이라고 판시했다. 종교를 이유로 한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헌재는 2011년까지만 해도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봤지만 지난 6월 입장을 바꿨다. 헌재는 '정당한 사유' 없는 입영통지 불응 등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조항은 합헌이라고 봤지만, 병역법이 대체복무제 여지를 두지 않은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며 2019년말까지 대체복무제 관련 입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정당한 사유'가 없는 병역거부 자체는 불법이지만, 병역 거부자들이 합법적인 대안을 모색할 여지를 두지 않은 병역법 자체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무죄 취지의 이번 판결은 현재 계류된 유사 사건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법원에 따르면 이와 관련해 계류된 상고심 사건의 수는 200건을 웃돈다. 이들 역시 이번 판결의 취지대로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이미 확정 판결을 받아 수감 중이거나 이미 형기를 마친 경우에는 이번 판결의 효력이 소급해 미치지 않기 때문에 즉시 구제되진 않는다. 다만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는 것은 가능하다. 또 정부가 사면, 복권 등의 수단으로 구제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송민경 (변호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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