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판결엔 시효 언급 없지만 민법선 '손해 알게 된 후 3년'
민법에 따르면 피해자가 손해를 알게 된 날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던 시점부터 10년이 지나면 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한다. 다만 피해자가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장애 사유가 있었다면 장애가 사라진 시점부터 시효(판례상 최장 3년)를 적용한다. 일제 강제징용은 불법행위 시점이 최소 73년이 지났지만 법원은 피해자들이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비로소 알게 된 때부터 시효를 적용한다.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놓고 정부 입장, 오락가락한 판결 단계마다 해석이 엇갈렸던 탓에 피해자들의 '권리 인식' 시점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뉜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최종 판결 당시 대법원은 청구권 소멸시효가 언제 시작되고 끝나는지 언급하지 않았다. 피해자 4명이 소송을 제기한 시점인 2005년 2월의 시효 문제만 판단했다. 적어도 당시에는 청구권 협정 문서가 전부 공개되지 않았고 개인 청구권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권리를 행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그 후에 제기된 소송의 시효 문제다.
2012년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2005년 8월 26일 한·일 협정 관련 민관 공동위원회의 발표일을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잡은 것으로 판단된다. 2012년 판결은 "식민지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 청구권은 협정에 의해 해결되지 않았다는 견해가 1990년대 서서히 부각되었고, 마침내 2005년 1월 문서가 공개된 뒤 2005년 8월 민관위 공식적 견해로 표명됐다"고 했다. 하지만 이 판단은 당시 민관위가 '징용 보상은 협정에 포함됐다'고 밝힌 부분을 누락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상고심 선고일인 2012년 5월 24일을 다른 피해자들의 권리 인지 시점으로 판단했다.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당시 피해자 승소 취지로 원심을 파기 환송하면서 청구권 협정에 대한 새로운 법적 해석을 천명했다고 본 것이다. 이때를 시작점으로 치면 시효는 2015년 5월 끝난다.
그런데 2013년 이후 하급심 법원에서 있었던 강제징용 사건 판결에 따르면 소멸시효 기산점은 최종 선고 확정일, 즉 2018년 10월 30일이다. 다수의 법률가가 이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고 말한다. 지난 2016년 서울중앙지법은 "2012년 대법원 판결은 여전히 국내외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고, 일본 기업이 재상고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고가 배상 청구권을 확실히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시효는 2021년 10월 종료된다.
[한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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