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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문 대통령이 당부한 ‘쌀 목표가격’…고차방정식을 풀어라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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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친절한 기자들]

5년마다 결정…올해 새로 정해야

시정연설에서 “물가상승률 반영을”

농민 ‘한끼 쌀값 200원꼴’ 부글부글

농식품부 “최소 19만4000원” 입장

농민들 “24만원” 국회 “20만원 이상”

‘수조원’ 쌀 직불금 재정 문제에

다른 작물과 형평성도 고려해야

복잡한 이해 얽혀 법개정 진통 예상


한겨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법에 따라 5년 만에 쌀직불금의 목표가격을 다시 정해야 합니다. 정부는 우선 현행 기준으로 목표가격안을 제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농업인들의 소득 안정을 위해 목표가격에 물가상승률이 반영되기를 바랍니다. 적정한 수준의 목표가격이 설정되도록 협력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여야 의원에게 한 당부의 말입니다. 쌀직불금 목표가격? 농민분들께는 익숙한 표현이겠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겐 낯선 표현입니다. 쌀 목표가격은 변동직불금 지급을 위한 기준가격입니다. 목표가격은 쌀 한가마(80㎏) 단위로 산정되고요.

정부는 2004년 추곡수매제를 폐지하며 쌀 수급을 시장기능에 맡겼습니다. 대신 식량안보 차원에서 쌀농가 소득의 일정 부분을 보전해주기 위해 쌀 목표가격을 산정해, 쌀 목표가격과 시장가격 차액의 85%를 직불금으로 쌀농가에 지원하고 있습니다. 2005년 도입된 쌀직불금은 연간 1조1611억원이 지급돼 쌀농업인의 소득을 목표가격 대비 95% 이상 유지하는 구실을 해왔습니다. 다만, 목표가격 산정에 물가상승률이 반영되지 않은 탓에 농민들은 농가의 실질적 소득 보장책이 되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로하는 상황입니다. 문 대통령도 이런 여론을 고려해, 대선후보 시절 쌀 목표가격을 현실화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습니다.

밥 한공기에 200원밖에 안 되는 쌀값

처음 언급했던 문 대통령의 말마따나 쌀 목표가격은 5년마다 결정됩니다. 그리고 올해가 바로 그 쌀 목표가를 새로 정하는 해입니다. 올해도 이제 두달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문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한 날, 농림축산식품부는 2018~2022년 쌀 목표가격을 18만8192원(80㎏당)으로 제시하고, 목표가격 변경 동의요청서(정부안)를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습니다. 기존 18만8000원보다 192원 오른 금액입니다. 농식품부는 다만 이 금액이 “관련 법률 개정이 완료되지 않아 우선 현행 법률에 따라 산정한 것일 뿐”이라고 단서를 달았습니다. 한마디로, 농업인의 소득을 실질적으로 보전하기엔 부족하니, 쌀 목표가격을 현실화할 수 있도록 법을 고쳐달라는 얘기입니다. 아니,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여태 뭘 하다가 올해를 두달 남기고서야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쌀목표가를 정하는 ‘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목표가격은 다음과 같이 정해집니다.

한겨레

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 시행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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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위 그림에서 보다시피 현행법이 목표가격 산정·변경 시 쌀의 수확기 평균 가격 변동만을 고려해 정하도록 하고 있어 애초의 취지와 달리 소득 보전 효과가 갈수록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4%였지만, 쌀 가격은 소비자물가 상승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6%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이에 따라 농업소득은 2015년 1126만원 수준에서 2016년 1007만원 수준으로 10.6% 줄었고요. 농민단체들은 현재 ‘밥 한공기에 쌀값 200원꼴’이라며 “목표가격 재설정에 따른 직불금 소득 없이는 쌀 생산을 지속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물가상승률이 반영되지 않은 현행법의 쌀 목표가격 산정 방식의 한계에 대해선 정부는 물론 여야 모두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입니다. 따라서 법을 바꾸고,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와의 예산 협의를 거쳐 향후 5년간 적용될 쌀 목표가를 재산정하면 됩니다. 현재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는 윤소하 정의당 의원과 김종회 민주평화당 의원이 내놓은 ‘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계류돼 있습니다. 잠시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시죠.



<김종회 민주평화당 의원 등 17명이 발의한 개정안 주요 내용>(2018년 8월24일)

쌀 목표가격 산정 변동 시 평균 수확기 가격 변동만을 고려하고, 인건비 등의 쌀 생산비와 물가변동률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음. 쌀 목표가는 최소한 최근 20년간(1998~2017년) 소비자물가 상승분(74%)을 반영한 24만5원이 되어야 함. 이에 쌀 목표가격 산정 시 쌀 경영비와 물가상승률을 고려하고, 2018년산부터 2020년산까지 쌀 목표가격을 80㎏당 24만5000원으로 정하도록 하며, 현행 5년 간격으로 조정하도록 되어 있는 목표가격을 도입 당시와 같이 3년 간격으로 조정하여 쌀값 변동에 신속히 대응하고자 함(안 제2조 및 제11조).

<윤소하 정의당 의원 등 10명이 발의한 개정안 주요 내용>(2018년 6월28일)

쌀 목표가격 산정에 쌀 경영비와 그 상승률을 고려하고, 쌀 생산을 통한 생태환경 보전 등 공익적 가치를 추가로 반영하도록 하여 2018년산부터 2020년산까지 쌀 목표가격을 10㎏당 2만7875원(쌀 80㎏당 22만3000원)으로 정하도록 하고, 현행 5년 간격으로 조정하도록 되어 있는 목표가격을 도입 당시와 같이 3년 간격으로 조정하여 쌀값 변동에 신속히 대응하도록 하고자 함(안 제2조 및 제11조).



붉은색 글씨로 표시된 부분에서 두 의원은 쌀 목표가격 산정 시 ‘쌀 경영비와 물가상승률을 고려’, ‘쌀 경영비와 그 상승률을 고려하고, 쌀 생산을 통한 생태환경 보전 등 공익적 가치를 추가로 반영’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계산한 금액도 24만5원, 22만3000원으로 각각 다릅니다. 여야의 논의 과정에서 쌀 목표가격 산정에 어떤 고려 요인들이 포함될지는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문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물가상승률만 반영한다고 해도, 몇년치의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느냐를 놓고 정부와 여야, 그리고 당사자인 농민의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법안 처리에서 진통이 예상되는 부분입니다.

한겨레

지난 9월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참가한 농민들이 볏단과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들은 “쌀 목표가격이 도입된 2005년 이후 13년 동안 목표가격이 인상된 것은 단 한차례뿐이었다”며 ‘밥 한공기 300원’에 해당하는 쌀 80㎏ 기준 24만원 수준의 목표가격 인상을 촉구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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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만4000원+α…20만원+α…24만5000원…저마다 다른 셈법

현재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선 80㎏당 최소 19만4000원은 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18만8192원에 지난 5년 동안 물가상승률을 더한 액수입니다. 반면,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쌀생산자협회 등 농민단체들은 쌀 목표가가 24만원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공공비축 양정제도가 도입된 2005년 이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죠.

지난달 10일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부 국정감사에선 대체로 20만원 이상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습니다. 개정안을 낸 김종회 의원이 24만5000원을 주장한 것을 비롯해, 이양수 자유한국당 의원이 ‘20만원 플러스알파’를 외치기도 했고요. 김종회 의원이 주장한 쌀 목표가격 24만5000원은 민주평화당의 당론이기도 합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박완주 의원은 당시 회의에서 “쌀 목표가격을 최대한 올리면 좋지만 최근 4년 동안 과잉생산 때문에 쌀값이 떨어져 직불금이 무려 수조원이 지출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며 쌀 목표가격 인상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쌀 목표가격을 마냥 높일 수만은 없는 예산 상황, 다른 농작물 재배 농가와의 형평성 문제 등 고려할 사항이 많은 탓이죠.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시중 쌀값이 올라 김밥 만들어 팔기도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쌀값만 보전해주냐고 분통을 터뜨리는 자영업자 여론도 만만치 않다”고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또 쌀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에도 직불금을 줘 농가 수익을 안정적으로 보전해준 것이 오히려 쌀 생산을 부추겨 수급 불균형을 부채질한다는 지적과 재배 면적을 기준으로 지원하다 보니 대규모 농가에만 혜택이 쏠린다는 비판, 밀·보리 등 다른 작물 재배 농가와의 형평성 문제까지 고려해야 할 사안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문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올해 정부는 그(쌀 목표가격 정상화)와 함께 공익형으로 직불제를 개편해나가겠다”고 얘기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단순히 쌀 목표가격을 적정하게 산정하는 것을 넘어 △소규모 농가에는 경영 규모에 관계없이 일정한 금액 지급 △일정 규모 이상 농가에는 경영 규모에 따라 역진적으로 직불금 지급 △쌀 직불제와 밭 직불제를 통합해 재배 작물과 상관없이 동일한 금액 지급 △직불금 지급과 연계해 농지·공동체·환경·안전 등에 대한 의무를 농가에 부여하는 방안(농림축산식품부 설명) 등 직불제 전반을 손보겠다는 얘기지요. 정부와 여야, 농민단체 등의 이해가 두루 얽혀 있는 고차방정식 풀이가 시작된 셈입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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