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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병역거부 근거로서 ‘진실한 양심’의 판단 기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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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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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1일 대법원 대법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 선고를 지켜봤던 김민경 기자입니다.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병역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 법원 출입기자로서 대법원의 이런 판결을 직접 듣고 기사를 쓸 수 있어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2001년 <한겨레21>의 첫 문제 제기 뒤 <한겨레>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무죄’라고 꾸준히 기사를 써왔습니다. 이제 이런 기사를 더는 쓰지 않아도 돼서 정말 기쁩니다.

물론 완전히 끝난 건 아닙니다. 합리적인 대체복무제가 도입돼야 비로소 이 문제의 마침표가 찍힐 겁니다. 최근 정부가 교정시설에 36개월(현역 복무의 2배)을 합숙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게 알려지며 “또 다른 징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무 기간이나 분야를 정하는 것만큼이나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올바른 심사 기준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병역거부의 전제가 되는 ‘진실한 양심’은 과연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양심 심사’의 어려움은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반대의견에서도 지적됐습니다.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반대의견에서 “진정한 양심의 존부에 대한 객관적인 재현이나 증명은 물론, 과학적·합리적인 반증이나 탄핵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심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수많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양심이냐 감옥이냐’의 양자택일로 내모는 위헌적 상황 역시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고민 탓인지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판결에서 양심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양심을 직접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으므로, 양심과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 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과 동일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복역하는 사례가 반복되었다는 등의 사정은 적극적인 고려요소가 될 수 있다.” “피고인의 가정환경, 성장 과정, 학교생활, 사회경험 등 전반적인 삶의 모습도 아울러 살펴볼 필요가 있다” 등.

어떠신가요? 대법원의 고민은 느껴지지만, “지나치게 자세한 기준을 제시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좁게 인정하거나 이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실제 지난 7월 나온 한 판결은 ‘양심 심사’의 자의성과 관련한 의문을 던지기에 충분했습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조상민 판사는 “폭력을 확대 재생산하는 군대에 입영할 수 없다”는 피고인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조 판사는 피고인이 집시법을 위반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폭력에 반대한다는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진심 어린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만약 파병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되면, 정당방위 차원의 몸싸움을 했다면, 총쏘기 게임을 한 적이 있다면, 그에게는 진실한 양심이 없는 걸까요?

저는 양심 심사의 어려움을 해결할 힌트가 헌법재판소 결정문에 녹아 있다고 봅니다. 당시 ‘반대의견’을 낸 안창호·조용호 헌법재판관은 “심사과정에서 판단 자료가 부족하다거나 판단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또는 양심의 형성이 상당 기간에 걸쳐 형성된 게 아니라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게 된다면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의미가 없어진다. 또 양심적 병역거부의 심사가 지나치게 엄격하게 진행되면 이는 또 다른 양심의 자유 침해라는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우려가 현실화하지 않으려면 판단 자료 부재나 판단의 어려움, 양심 형성 기간의 짧음 등은 양심 인정의 근거가 되어선 안 되고 지나치게 엄격한 심사도 피해야 합니다.

동국대 비교법문화연구원의 심민석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열린 서울지방변호사회 심포지엄에서 “심사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신청자격을 다양화해 심사절차의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대만은 종교적 사유 외에 가정 문제, 전문기술자격, 자원봉사자격 등이 있으면 대체복무를 신청할 수 있고, 주로 서면심사를 거쳐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모두 인정한다고 합니다. 양심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기준을 되레 완화한 것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 다수의견의 보충의견 중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인정은) 우리 공동체에서 다를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며, 이로써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를 법정을 넘어 대체복무제를 논의하는 정부와 국회도 무겁게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김민경 법조팀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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