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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어서 빨리 ‘홍기탁·박준호 없는 하늘’을 찍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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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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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에서 고공농성 중인 파인텍 해고노동자 홍기탁·박준호씨의 1년을 사진으로 기록한 박종식 기자입니다.

지난 7일 <한겨레> 1면에는 두 사람의 고공농성 1년을 담은 사진들이 실렸습니다. 매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장면을 찍은 49장의 굴뚝 사진이 가로세로로 쌓이니 예쁜 그림엽서처럼 보였습니다. 그 현실감 없는 사진들 속에서 홍기탁·박준호씨가 저의 카메라를 향해 손인사를 합니다. 혹한과 폭염, 내리치는 눈발, 쏟아지는 빗속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살아있음’을 알렸습니다.

카메라로 올려다보는 하늘에서 그들은 점의 크기로 줄어들어 있었습니다. 렌즈를 당기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그들이 어떤 날은 손을 높이 들어 저를 반겨줬고, 어떤 날엔 굴뚝 턱에 팔을 기댄 채 손인사를 했습니다. 추운 날에는 털모자를 쓰고 입김을 내뿜으며 굴뚝 위에 서기도 했습니다. 11월11일이면 굴뚝에 오른 지 꼭 365일째가 됩니다. 하루가 가고, 계절이 가고, 한 해가 가는 동안 그들만 ‘변함 없는 풍경’으로 여전히 굴뚝에 있습니다.

1년 전 두 사람은 왜 굴뚝에 올랐을까요? 홍기탁씨와 박준호씨는 각각 1995년과 2003년 경북 구미 한국합섬에 입사했습니다. 한국합섬은 2007년 5월 파산해 2010년 7월 스타플렉스에 인수됩니다. 스타케미칼로 이름을 바꾼 공장은 2011년 재가동했지만 2년 만에 공장 문을 닫고 철수합니다. 동료 차광호씨가 ‘먹튀’ 의혹을 제기하며 스타케미칼 굴뚝에서 408일 고공농성을 한 끝에 고용·노조·단체협약 보장 약속을 얻어냈습니다. 2016년 1월 그들을 고용하며 설립된 파인텍은 지난해 8월 공장에서 기계를 빼버렸습니다. 결국 지난해 11월12일 새벽 홍기탁·박준호씨는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모기업 스타플렉스 근처의 열병합발전소 굴뚝 사다리에 발을 올렸습니다.

홍기탁·박준호씨가 제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두 사람은 언론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했습니다. 그들은 고공농성에 들어가며 ‘민주노조 사수 3승계 이행! 노동악법 철폐! 헬조선 악의 축(독점재벌·국정원·자유한국당) 해체!’를 요구했습니다. 지난한 ‘해고의 시간’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싸움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그렇게 1년 동안 그들을 찍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어느새 목소리만 들어도 서로의 상태를 알 정도로 친해졌습니다. “목소리에 힘이 없으신데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따, 귀신이네. 월동준비하느라 천막 새로 치고 바닥도 정리하느라 하루 종일 몸을 움직였더니 힘드네. 박 동지는 별일 없죠?” 수백일의 시간은 저와 그들을 ‘동지’로 만들어줬습니다.

굴뚝에서 두 사람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규칙적인 생활을 합니다. 아침 7시, 제자리뛰기와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운동을 마친 뒤엔 뉴스를 확인합니다. 오전 10시, 굴뚝 아래에서 올려준 아침 겸 점심밥을 먹습니다. 식사 뒤엔 전력질주 제자리뛰기와 팔굽혀펴기, 앉았다 일어서기를 200개씩 합니다. 운동을 마치고 나면 책을 읽습니다. 오후 5시 저녁식사가 올라옵니다. 저녁을 먹고, 땅에서 열리는 문화제를 하늘에서 함께 하고, 오후에 읽던 책을 마저 읽으면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땅에서는 파인텍 ‘동지’ 차광호·김옥배·조정기씨가 굴뚝을 지키며 두 사람의 ‘착륙’을 앞당기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연대체인 ‘스타플렉스(파인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은 목동 스타플렉스 사무실과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파인텍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파인텍하루조합원’ 해시태그 달기 운동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스타플렉스는 그들의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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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시죠? 별일 없으시죠? 건강은 어떠세요? 회사 쪽 연락은 있었나요?” 카메라를 든 제가 굴뚝을 향해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늘 이런 질문뿐입니다. 그 뻔한 질문에 굴뚝에선 이렇게 답합니다. “여기 생활이 지옥같지 않냐고들 묻는데, 저희 눈에는 굴뚝 아래 많은 분들이 지옥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그들을 위험한 하늘에 올려보내고 무관심한 땅은 하늘만큼 위험합니다. 그 위험한 땅을 내려다보며 홍기탁·박준호씨는 날이 갈수록 위험해지고 있습니다. 어서 빨리 ‘두 사람 없는 하늘’을 찍고 싶습니다.

박종식 사진뉴스팀 기자 anaki@hani.co.kr

(*박종식 기자가 고공농성 1년을 기록한 사진들은 서울 서소문로 대한항공빌딩 1층 일우스페이스 <안녕> 전시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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