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30 (목)

민주당은 왜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을 서두를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더 친절한 기자들]

고용지표 악화에 마음 급한 정부·여당

양대노총 “친기업적 정책” 반대에도

재계 ‘반기업 정서 지닌 정권’ 우려

누그러뜨리는 ‘심리적 카드’ 활용

탄력근로제 확대 ‘연내 처리’ 벼르지만

건강권 보호, 임금보전 등 과제 산적

논의 시간도 부족해 2월 처리 전망도



지난 주말, 민주노총이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습니다. 탄력근로제 확대 추진 등 현 정부의 노동정책이 ‘친재벌’ ‘친기업’적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게 이유입니다. 민주노총은 “자본가 청부입법,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의 국회 일방 처리를 강력 저지할 것”이라며, 오는 21일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노동계의 또다른 한 축, 한국노총도 17일 서울 여의도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탄력근로제 확대 저지’ 투쟁에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양대 노총이 탄력근로제 확대 저지를 고리로 하나로 뭉치는 모양새입니다. 양대 노총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지지 기반이기도 합니다. 당 안에서도 “이러다가 노동계와 등져 지지율 추락을 겪었던 노무현 정부의 모습을 되풀이하는 거 아니냐. 2020년 총선을 어떻게 치르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주52시간 근로제 시행한지 고작 넉달인데…

탄력근로제는 일이 몰리는 시기에 노동시간을 늘리고, 그렇지 않을 때는 일을 줄여 단위 기간의 평균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연장근로 포함 52시간)에 맞추는 제도입니다. 현행 법은 5개의 특례업종(육상운송업, 수상운송업, 항공운송업, 기타 운송관련 서비스업, 보건업)에 대해, 노사가 합의할 경우 3개월 동안의 노동시간 평균이 주 52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탄력근로제 확대는 최저임금 인상 유예 및 지역별·업종별 차등 적용안과 함께 재계의 요구 사항이기도 합니다. 현재 정치권에선 기업의 현실적 여건을 감안해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1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업종별 실태조사 결과를 보고, 특례업종을 확대할지 여부도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이고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이 6개월로 늘어날 경우, 이론적으로는 6개월(26주) 동안 13주는 주 64시간, 13주는 주 40시간씩 일하는 게 가능해집니다. 정부의 과로사 판단 기준(12주 동안 업무시간이 주당 평균 60시간을 초과)을 훌쩍 넘기게 되는 셈이죠. 노동자의 초과 수당만 줄일 뿐, 실질적인 근로시간 단축이나 이를 통한 고용 확대 등 제도의 취지는 살릴 수 없다고 노조는 반발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부·여당은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을 추진하는 명분으로 당장 올 연말이면 주 52시간 근로시간 처벌 유예 기간이 끝난다는 점을 꼽고 있습니다. 현장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계도 기간이 끝나기 전에 대안을 만들겠다는 취지입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에 더해 “지난 2월 국회가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때 부칙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개선을 위한 방안을 추가로 논의하기로 했다”며 예정된 수순이라는 식의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홍 원내대표가 언급한 ‘부칙’은 ‘고용노동부는 2022년 12월31일까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개선을 위한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부칙은 일단 전체 기업을 대상으로 제도를 단계적으로 시행해보고, 발생하는 부작용을 점검해 제대를 개선하자는 취지인 셈입니다.

실제로 계도 기간 종료로, 주52시간 근로제를 지키지 않아 당장 내년 1월1일부터 처벌을 받게 되는 곳은 300인 이상 사업장 뿐입니다. 300인 이상 사업장이라고 해도 자동차 및 부품판매업과 연구개발업 등 기존의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21개 업종은 2019년 7월1일까지 주52시간 근로제 시행이 유예됩니다. 이에 더해, 50인 이상~30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2020년부터 법 적용을 받는 등 국내 기업 전체가 주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하게 되는 것은 2022년입니다. 한데, 주52시간제가 시행된 지는 고작 넉달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아직 시행해보지도 않은 제도를 손보겠다는 셈이지요. 정부·여당이 지나치게 속도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올해 (경제) 어려움이 내년에 금방 개선되지는 않을 전망입니다. 경제 활력을 찾는 게 시급합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이 발언에 정부·여당이 속도전을 벌이는 이유가 숨어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정부와 여당은 현 상황을 ‘경제 위기’로 진단하는 데는 선을 긋지만, 각종 고용·투자 등 경제지표 및 투자심리 악화 분위기에는 안테나를 곤두세우는 모양새입니다. 보수 언론은 “내년 1월 최저임금 10.9% 인상을 앞두고 중소기업들이 눈물겨운 감원에 나서고 있다”(조선일보 11월12일자 1면)고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특히 당 안팎에선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 및 생계형 소상공인의 불만 여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의 한 의원은 “경제는 심리”라며 “이 불안 심리를 잡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의원은 “기업들 사이엔 ‘집권세력이 반기업 정서에 젖어있다’는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생각을 바꿔놓지 못 하면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진보정권인 문재인 정부도 친기업적 정책을 할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죠. 재계를 안심시킬 ‘심리적 카드’로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방안이 선택됐다는 얘기기도 합니다. 최근 정부·여당 관계자들 입에서 ‘규제 완화를 통한 혁신 성장 추진’ 발언이 잦아지는 것도 것도 그 일환이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고용지표 악화에 마음은 급하고…노조도 양보해야 하는 거 아냐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는 최저임금 유예 및 지역별·업종별 차등 적용과 함께 재계의 오랜 요구 사안이기도 합니다. 내년 1월 최저임금은 10.9% 인상됩니다. 이는 되돌릴 수 없는 결정입니다. 홍남기 부총리 후보자가 이와 관련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악화)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면서도 “2020년 1만원 공약 달성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미 속도 조절이 됐다”고 일축한 것도 눈여겨 볼 대목입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최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저임금 차등을 위해 지역별, 업종별 구분을 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실현 가능성이 상당히 의문”이라고 말한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재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의 후퇴는 막아놨으니, 노동계도 한발 정도는 양보해야 하지 않겠냐는 배경이 담겨있다는 지적입니다. 지난 6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노조라고 해서 과거처럼 약자일 수는 없다. 민주노총이 상당한 사회적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발언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됩니다. 문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일자리 공약 만들기에 참여했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대선 당시 노동시간 단축 공약을 만들 때, 탄력적 근로제를 (지금보다) 확대하는 방안을 넣기로 노동계와도 다 얘기가 됐다. 그런데 노동시간 단축이란 큰 대의를 살리는 게 중요하니 그 문제는 나중에 논의하자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노동계도 탄력근로제 확대의 불가피성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이제 와 딴소리를 한다는 지청구입니다. 이 의원은 “게임 등을 만드는 중소 아이티(IT) 업체, 영상 제작업체 등에선, 탄력근로제가 확대되지 않고서는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는 아우성이 높다”며 “민주노총이 끝까지 이를 반대하다간 ‘대기업 노조 갑질’이란 비판을 들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탄력근로제 확대 연내 처리 외치지만…

정부 여당은 탄력근로제 적용 확대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연내 처리한다는 ‘목표’ 아래, 지난 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경제·사회 주체와 정부가 조속한 시일 내에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와 관련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달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경사노위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 민주노총 쪽의 대화 참여를 압박하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민주당 안에서도 노동자 쪽의 일방적 양보만을 요구하며 압박하는 방식에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들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한국노총 출신 이용득 의원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이를 저지하겠다고 밝힌 게 대표적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기업에서 탄력근로제를 확대하기 위해선 노사간 합의가 필수입니다. 민주노총으로 표현되는 대기업 노조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얘깁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정부·여당의 취지와는 달리 노조가 없는 영세 사업장에서만 탄력근로제가 확대돼 저임금 노동자들의 근로 여건만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의 실익보단 노동시간 단축이란 대의를 허무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탄력근로제 확대를 성급히 추진해 ‘우군’인 민주노총과의 관계만 망치는 게 아니냐는 당내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실 ‘물리적 시간’만을 계산해봐도 탄력근로제 확대안의 연내 처리는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 견해입니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에 따른 노동자 건강권 보호 방안과 임금 보전 방안, 개별사업장의 탄력근로제 도입 방안을 어떻게 정할지 풀어야 할 과제가 한 둘이 아닙니다. 설령 민주노총 등이 전향적으로 마음을 바꿔 경사노위에 참여한다고 해도 국회 환노위 논의를 위해 열흘 안에 관련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이마저 된다고 해도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한창인 지금 이를 논의할 시간이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홍영표 원내대표가 ‘2월 임시국회’ 처리 가능성을 비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 [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