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달마산과 두륜산이 품은 절집·암자 여정
땅끝마을 해남으로 가는 여정은 멀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풍경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두륜산 대흥사, 달마산 도솔암(사진), 미황사, 일지암 등은 이맘때 차분하게 둘러보기 좋은 곳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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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새벽이 어둠을 밀어내는 아침, 산사로 드는 길엔 알싸한 추위가 얼굴을 감싸고 지나갑니다. 헝클어진 머릿속도 맑게 헹궈줄 것 같은 상쾌함에 온몸이 찌르르 울립니다. 숲길을 걸어갑니다. 한없이 깊고 아늑한 길을 걷습니다. 단풍나무, 고로쇠나무가 뒤엉켜 자란 터널을 이룬 숲길은 현세가 아닌 피안에 이르는 길인지도 모릅니다. 그 길 끝에서 고즈넉한 산사가 앉아 있습니다. 해남 두륜산 대흥사로 가는 길은 이 땅에 남겨진 '절로 가는 길' 가운데 단연 손꼽는 길입니다. 한 시인이 '옥구슬 굴리는 듯한 물소리를 곱게 달래며 아홉 구비 구교(매표소에서 대둔사까지 9개의 다리를 건넌다)를 다 밟아도 피안교(彼岸橋)에 이르면 걸어온 뒷길 다시 한 번 돌아볼 일 부디 잊지 말자'고 읊을 만큼 마음에 남는 길입니다. 대흥사에서 산길을 올라 닿는 일지암은 다성(茶聖)이라 불린 초의선사가 머물며 차 문화를 꽃 피운 곳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하늘 높이 치솟은 달마산 뽀족바위 속의 작은 암자 도솔암은 이국적이고도 신비스럽습니다. 마당앞으로 금강산을 옮겨 놓은 듯 한 바위 봉우리들의 위용이 대단하고 다도해의 그림같은 풍경이 절경입니다. 그 아래 절집 미황사는 달마산 기암절벽을 고스란히 병풍으로 삼고 있습니다.
해남 절집, 암자기행의 시작은 두륜산(709m)의 구중궁궐 같은 품에 안긴 대흥사다. 사연도 많고, 볼거리도 많다. 서산대사가 입적하면서 가사와 발우를 대흥사에 전하면서 13분의 대종사를 배출한 큰 절집의 면모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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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옷으로 갈아입은 숲 터널은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지만 차분함 기운도 간직하고 있다. 매표소에서 시작된 숲길은 피안교에서 맺음 한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눈여겨볼 것이 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소개된 유선여관과 소리나무다. 유선여관은 '서편제' 촬영지로 유명하다.
일주문과 피안교를 지나면 대흥사 경내에 이른다. 해탈문을 들어서면 노승봉, 가련봉, 두륜봉 등 기암을 둘러친 봉우리가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대웅보전에는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의 이야기가 담긴 대웅보전과 무량수각 현판이, 천불전에는 6년 동안 옥돌로 만든 천불이 바다 건너 일본에 갔다가 되돌아 온 일화가 간직되어 있다.
표충사는 절집에 자리 잡은 유교식 사당으로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활약한 서산대사 휴정과 함께 사명당 유정, 뇌묵당 처영 스님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표충사 편액은 정조가 직접 써서 내려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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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에서 산길로 발을 옮긴다. 대흥사가 배출한 선승 초의선사(1786-1866)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대흥사에서 산길로 40분 거리에 있는 일지암은 다성이라 불린 초의선사가 머물며 차 문화를 꽃 피운 곳이다. 초의는 전남 무안 출신으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지나던 스님이 구해준 것이 인연이 되어 불가에 입문했다. 승려이면서도 유학, 도교 등 다방면의 지식을 섭렵하며 문장과 그림에도 뛰어났다. 스승으로 모셨던 다산 정약용, 두터운 우정을 나눈 추사 김정희 등과 폭넓게 교류했다. 이들과 사귐에 있어 차의 향기가 함께 했음은 물론이다. 초의는 햇차를 만들 때마다 추사와 다산에게 보냈고 추사와 다산은 고마움으로 글씨나 시를 써 보냈다.
일지암은 여러 겹의 주춧돌을 쌓고 그 아래 연못을 만든 초의다합, 대롱을 따라 흐르는 유천, 찻잎을 다루던 맷돌, 찻물을 끓이던 부뚜막, 초의선사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다선삼매에 들던 돌평상, 초가 뒤편의 대밭과 차밭 등이 어울려 이곳이 차의 성지였음을 느끼게 한다. 일지암의 툇마루에 앉아 땀을 식히노라면 40년 간 차와 함께 선(禪)을 일구던 초의선사의 소탈한 모습이 떠오른다.
해남의 진산인 두륜산을 편하게 즐기는 방법도 있다. 대흥사 입구의 두륜산케이블카는 두륜산과 다도해의 비경을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케이블카 정상에 도착하면 고계봉 인근 전망대까지 목재산책로가 이어진다. 2층의 전망대에 오르면 북동쪽으로는 영암 월출산, 광주 무등산 등 호남을 대표하는 명산이 펼쳐지고 서남쪽으로는 다도해의 장관이 내려다보인다. 특히 맑은 날이면 바다 건너 제주도의 한라산까지 육안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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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해남까지 발걸음을 했다면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과 도솔암을 빼놓을 수 없다. 날카로운 기암절벽을 품고 기세등등하게 서 있는 달마산은 동국여지승람에 '달마대사의 법신이 늘 상주하는 곳'으로 적고 있다. 이 달마산에는 우리 땅의 암자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자리에 세워진 도솔암이 있다. 대흥사의 암자다.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 절벽 꼭대기에 세워진 모습이 신선이 머무는 무릉도원을 닮았다.
달마산 도솔봉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다. 마봉리 마련마을에서 올라가는 찻길은 좁고 험한 임도다. 도솔봉주차장에 차를 두고 공룡의 등줄기 같은 암봉 능선을 15분쯤 따라가면 암자를 만난다.
암자로 드는 길은 황홀하다. 오른쪽은 완도와 남해가 왼쪽은 진도와 서해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 사이사이 다도해도 아름답다. 크고 작은 바위 봉우리는 모두 수석을 조각해 촘촘히 세워놓은 불상 같다.
도솔암은 천자 길이의 돌기둥을 세워 그 위에 암자를 지은 것처럼 아찔하다. 낭떠러지 같은 벼랑의 봉우리 끝에다가 어찌 저런 암자를 세웠는지 놀랍다. 아슬아슬한 암봉을 축대로 막아 전각을 세우고 손바닥 만 한 마당을 들였다. 밖에서 암자를 보면 절벽 위에 앉은 모습에 현기증이 나지만 돌담으로 둘러싸인 마당에 서면 오히려 안락하고 편안하다.
땅끝마을에서 마주한 아름다운 일몰 (관광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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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앞으로 금강산을 옮겨 놓은 듯한 바위 봉우리들의 위용이 대단하다. 도솔암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해남에서도 최고로 친다. 도솔암 좌측의 기암과 어불도, 진도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붉은 기운이 아름다워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맘때 찾아보기 좋다. 도솔암과 가까운 대죽리 해변은 어불도로 떨어지는 일몰, 땅끝마을의 땅끝전망대와 전망대휴게소에서는 일출과 일몰도 동시에 볼 수 있다.
달마산의 기암 아래 자리 잡은 미황사는 풍경이 아름다운 절집이다. 단청이 바랜 고색창연한 대웅보전과 뒤편으로 병풍처럼 둘러선 달마산 기암절벽의 풍경을 으뜸으로 손꼽는다.
해남=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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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가는길=서해안고속도로 목포톨게이트를 지나 죽림분기점에서 서영암나들목 방면으로 나가 2번 국도를 따라 가다 남해고속도로로 진입. 강진무위사 나들목으로 나가 남성전 삼거리에서 우회전. 월산교차로에서 진도ㆍ완도ㆍ해남 방면으로 나간다. 해남읍 못 미쳐 평동교차로에서 해남ㆍ대흥사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절집이다. 대흥사에서 달마산 도솔암까지는 자동차로 30여분 걸린다.
△먹거리=치유밥상을 내는 해남식당, 해물탕을 전문으로 하는 용궁해물탕, 연잎밥을 내놓는 달마선다원, 떡갈비 정식을 내는 천일식당, 지은 지 100년이 넘는 한옥에서 영업하는 땅끝 기와집 등이 소문났다.
△볼거리=땅끝과 고산 윤선도 유적지, 우항리 공룡화석지(위 사진), 고천암호 철새도래지, 우수영관광단지 등이 있다.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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