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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의문의 죽음 추적하는 젊은 여성 법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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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언내추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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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관계자나 드라마 팬들이 슬슬 올해 최고의 작품 리스트를 꼽아보는 시기가 왔다. 일본의 경우, 누가 리스트를 작성하든 상위권에 들어갈 확률이 제일 높은 드라마는 <언내추럴>(Unnatural)일 것이다. 연초 <티비에스>(TBS)에서 방영한 이 작품은 제96회 일본 드라마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작가상, 여우주연상 등 6관왕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여러 관련 시상식을 휩쓸며 2018년 최고의 일본 드라마 중 하나임을 입증하는 중이다.

<언내추럴>은 ‘언내추럴 데스’ 즉 자연스럽지 않은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는 미스터리 메디컬 드라마다. 법의학 드라마는 국내에서도 최근에 리부트된 <오시엔>(OCN)의 <신의 퀴즈> 시리즈나 김은희 작가가 극본을 쓴 <에스비에스>(SBS)의 <싸인> 등의 흥행과 호평 이후, 메디컬 드라마의 한 분야로 자리 잡은 장르다. 의문의 사인을 분석하는 플롯의 특성상 사회적 이슈를 반영하는 경우도 많고, 수사극의 성격도 지녀 마니아층이 꽤 두텁다. 다만, 시신을 세세하게 부검하는 과정 때문에 잔혹 드라마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언내추럴>이 인상적인 점은 부검 과정에서 시신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신 죽은 이의 생전 사연과 가족, 연인, 동료 등 남은 주변인들의 이야기에 더 초점을 맞춘다. 기술의 발달로 갈수록 재연이 정교해지는 수술이나 부검 장면을 볼거리로 내세우는 메디컬 드라마 장르의 최근 흐름을 거슬러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에 철저하게 집중한 연출이다. 진지한 주제의식과 미스터리, 휴먼드라마, 사회극적인 요소를 잘 결합한 탄탄한 이야기가 자극적인 볼거리 없이도 이 작품에 충분한 재미와 깊이를 더한다.

남성 중심적인 메디컬 드라마 장르에서 여성 중심의 서사를 선보였다는 것도 호평 요소다. 연출, 작가 모두 여성인 <언내추럴>은 법의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주인공 미스미 미코토(이시하라 사토미)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곳곳에서 마주치는 성차별을 절묘하게 연결시킨다. 법의학은 ‘죽은 자들을 위한 학문’이라는 편견을, 폄하당하는 젊은 여성 법의학자의 능력으로 극복해나가는 전개는 통쾌하고 감동적이다.

각각의 에피소드에도 묵직한 사회적 이슈가 잘 녹아 들어가 있다. 첫 회 도입부에서 지역별 부검률을 언급하는 장면부터 법의학을 통해 사회 현실을 해부하는 이 작품의 시선이 잘 드러난다. 부검률 17%의 도쿄 23구와 2%도 되지 않는 최악의 지역을 비교하는 짧은 대화 안에 수도권 집중 현상과 지역 격차의 문제가 겹친다. 감염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환기한 메르스 바이러스 사망자의 에피소드, 노동 환경의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한 과로 사고 사망자의 에피소드, 동반자살이란 단어가 이기적인 살인을 왜곡하는 말임을 지적한 자살자 에피소드 등 매회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예리한 성찰이 교차한다. 보면 볼수록 올해 최고의 일본 드라마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수작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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