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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변종모의 세계의 골목] 코끼리와 나, 처음 만나는 사이... 이리 살가워도 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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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게 아니라, 함께 걷는 것’…밀림 속 야생 코끼리를 만나는 시간
마을 끝 전망대에선 거대한 ‘숲의 바다’ 볼 수 있어

조선일보

’숲의 바다’, 그곳에 사는 코끼리를 만나기 위해 캄보디아 북쪽 몬돌끼리에 간다./사진 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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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방향을 잡은 것은 북쪽이었다. 그냥 북쪽. 앙코르와트의 유적도 아니고 톤레삽 호수도 아니다. 그냥 북쪽이라고 마음먹고 지명을 몇 번이나 확인해 가며 묻고 물었다. 어느 날 문득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이름. 숲의 바다. 바다로 가기 위해 다시 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 ‘매우 기쁘다’라는 뜻을 가진 도시, 센모노룸

몬돌끼리는 캄보디아의 밀림지대 동북부의 주 이름이다. 수도 프놈펜에서 버스를 타면 10시간 이상 달려야하는 곳이지만 거리상으로는 서울과 부산보다 가깝다. 그만큼 쉽지 않은 곳이다.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곳은 아니라 조금 부담이 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일단 모든 것은 도착하고 나서 판단할 문제다. 15인승 버스에 22명이 타고서 흔들리고 덜컹거리며 도착하는 동안 이미 예감했다.

이곳으로 향하는 모든 사람들이 숲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비좁은 공간을 이방인에게 조금이라도 편히 앉으라고 나눠주는 살가운 마음들. 아무리 넓혀도 서로의 어깨가 떨어지지 않는 우리는 모두가 같은 여행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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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프놈펜에서 버스를 타고 10시간 이상 달려야 만날 수 있는 몬돌끼리, 살가운 현지인들 덕분에 힘든 일정도 부담스럽지 않다./사진 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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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돌끼리주에서 여행자들이 비교적 쉽게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센모노룸(Senmonorom)이다. 몬돌끼리는 크메르어로 ‘만다라의 산’이라는 뜻을 가졌고, 센모노룸은 ‘매우 기쁘다’를 뜻한다. 세상에! 도시 이름이 매우 기쁘다라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베트남과 라오스를 끼고 깊숙하게 들어간 캄보디아의 푸른 정원. 한 때 캄보디아 밀림의 대부분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코끼리 보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다. 코끼리를 타고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밀림의 야생코끼리들을 보호하며 사람과 동물을 이어주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 야생 코끼리를 만나는 시간 "우리 이렇게 살가워도 될까"

작은 산을 따라서 빼곡하게 들어선 숲은 빈틈이 없다.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낮은 나무들이 이중삼중으로 얽혀있어 시원한 산 속 공기가 산소통처럼 밀폐되는 느낌이었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야생동물이 워낙 많아서 현지인들의 사고가 많이 나던 곳이라는 말에 발걸음이 살짝 느려졌다. 트래킹을 좋아하거나 산을 자주 찾는 사람들이라면 아주 쉬운 코스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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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밀림에 들어서면 코끼리들이 그림처럼 슬며시 등장한다./사진 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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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무리 산의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로 숨은 그림처럼 슬며시 나타나는 코끼리. 내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동물. 작은 집만 한 코끼리가 얌전하게 코를 흔든다. 이미 코끼리를 발견 했다면 서로가 도망갈 수도 없는 거리다.

거대한 녀석이 얌전하게 눈을 껌뻑이며 코를 내민다. 그마저 순한 아이 같다. 가이드가 준비한 사탕수수를 툭툭 잘라서 주면 순식간에 삼키고 언제 줬냐는 듯 다시 기다란 코로 악수를 청한다. 너와 나,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이리도 살가워도 되는 건지. 아무런 격식도 절차도 준비도 없이 만난 아무렇지 않은 관계가 있을 수 있다니. 가이드에 의하면 냄새에 예민한 동물이라 그 앞에서 화장하지 말고 향수 뿌리지 말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함부로 할 마음이 아니라면 누구든지 그 시간을 매우 기쁘게 보낼 수 있다. 그 숲에서는 그렇다. 코끼리는 우리에 가두거나 올라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은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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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한 아이처럼 사람들을 대하는 코끼리, 그저 바라보고, 먹을 것을 주고, 함께 걸으며 코끼리와 특별한 시간을 보낸다./사진 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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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그렇다. 말없이 다가가 어루만져 주며 대화하는 것. 먹을 것을 주거나 잠시 함께 걷는 것. 그리고 숲 속 냇가에서 함께 목욕을 하거나 각자의 영역에서 휴식하며 바라보는 것. 이것이 전부다.

◇ 숲이 바다를 이루는 진풍경, 도크로몸산의 전망대

센모노룸에서 지내는 동안 자주 그 숲속의 코끼리가 생각이 났다. 사방으로 펼쳐진 숲의 파노라마들을 볼 때마다 순진하게 껌뻑이던 눈과 커다랗게 팔랑거리던 귀와 슬며시 내밀던 코가 자꾸 생각이 나서 웃게 된다. 그래서 더욱 자주 숲을 걷게 된다. 센모노룸의 가장 인기 있는 전망대라 할 수 있는 곳. 마을 끝 도크로몸산(Dohkromom Mountain) 뒤, 숲의 바다(Sea Forest)다.

말 그대로 숲의 바다. 숲이 바다를 이루는 곳.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숲은 정말로 바다 같다. 끝없이 펼쳐진 부드러운 밀림의 곡선들이 물결이었다가, 구름들이 자리를 바꾸는 순간에는 파도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숲의 바다라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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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바라보는 밀림은 ‘숲의 바다’ 같다. 구름이 바뀌는 순간에는 파도처럼 보이기도 한다./사진 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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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이곳 캄보디아의 동북부에 장황하게 펼쳐져 있다. 그 숲 속에는 당신이 만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들이 기다린다.

PS 몬돌끼리에서 해야할 일들

센모노룸에 내리면 편의시설은 숙소 주변의 눈에 보이는 것이 거의 전부이기 때문에 걸어서 다닐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모든 것은 거의가 주변에 흩어져 있어서 투어에 참여하거나 툭툭을 하루 대절(30달러)해서 다니는 것이 현명하겠다. 코끼리를 만날 수 있는 당일 코스 1인당 40달러, 1박 2일 코스 75달러이다. 잠시 방문하는 여행자가 아니라면 오토바이를 빌려서 주변을 돌아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5월에서 12월 사이에 방문하게 된다면 우기철의 특혜를 완벽하게 누릴 수 있는 보스라폭포(Bousra Waterfall)를 꼭 가보자. 그리고 베트남 국경 쪽의 길도 매우 아름다우며 돌아오는 길에 닥담(Dakdam) 폭포까지 들린다면 좋겠다. 이 밖에도 이국적으로 펼쳐진 목초지대와 붉은 흙길의 초원과 밀림을 어느 방향으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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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모는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였다가 오래 여행자로 살고 있다. 지금도 여행자이며 미래에도 여행자일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서 한 번은 떠나게 될 것이니 우리는 모두 여행자인 셈이므로. 배부르지 않아도 행복했던 날들을 기억한다. 길 위에서 나누었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들을 생각하며, 그날처럼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등을 썼다.

[변종모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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