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리로 떠나는 중국 산둥성 여행
하늘로 통하는 길, ‘태산’
7000여 돌계단 ‘고난의 등정’
그래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건
그만큼 갈망이 크기 때문이리라
7000여개의 돌계단이 아득하게 이어지는 태산. 사람들은 계단을 한발 한발 오를 때마다 자신의 소원을 읊으며 이뤄지기를 염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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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동성= 글·사진 한초롱 기자] 인천에서 중국 산동성(山東省·샨둥청) 위해(威海·웨이하이)까지는 카페리로 장장 14시간이다. 오후 7시에 출발하면 다음날 오전 9시에 도착한다. 긴 여정이 마냥 지루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카페리는 크고, 그 안에서 할 일은 많다. 카페테리아·영화관·편의점·노래방·면세점 등 즐길거리가 풍성하다. 길이 196.13m, 폭 27m의 카페리는 언제 배가 출발했는지 모를 정도로 흔들림이 적어 멀미가 심한 사람도 즐기는 데 지장이 없다.
산둥성 위해시에 위치한 반구 모양의 만복도. 이 위에 오르면 만가지 복이 온다는 설이 전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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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 가지 복이 와요… 만복도
페리 시설을 한껏 만끽하기 위해 5시경에 일찌감치 배에 탔는데 선내를 둘러보는 사이 어느새 저녁 시간이 성큼 다가와 있다. 식당 창가에 자리 잡으니, 잔잔한 물살 위로 발갛게 떨어지는 서해 일몰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행들과 식사하며 담소를 나누다 보니, 밤이 어둑하게 내려앉는다. ‘펑펑’ 폭죽 소리가 들린다. 밖을 내다보니, 바다 한복판에서 불꽃 쇼가 열렸다. 새까만 하늘 위를 수놓는 황홀한 불빛을 넋을 놓고 본다. 야단법석한 작은 축제를 즐기고 객실로 들어와 책 한 권을 꺼내 읽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어느새 산동성이 코앞이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찾은 곳은 위해의 상징인 ‘행복문’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45m 높이의 조형물은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만들었다. 과거 한적한 어촌이었던 위해는 뱃길이 열린 후 산동성의 주요 무역도시로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위해 시민에게 바다를 품은 행복문은 진실로 행복을 가져다주는 문이었을 것이다. 행복문 뒤편에는 복을 기리는 글자가 빼곡히 새겨진 반구 모양의 만복도가 있다. 이 위에 오르면 만 가지 복이 온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같은 복이라도 서체는 모두 다르다. 사람마다 행복의 형태가 다양하듯.
위해시 화하성 문화곡에 적힌 ‘왕희지 난정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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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지문’을 뒤로 하고 위해 서부의 ‘화하성’으로 향했다. 동방 고전문화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다. 화하성 내 인공계곡 ‘문화곡’에 들어서면 인물의 고장 산동성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석벽마다 이 고장 출신 문인들의 글이 빼곡하다. 서성 왕희지 동상 뒤로 그가 거나하게 술에 취해 적었다는 ‘난정서’가 적혀 있다. 이 글에는 갈지(之)자가 24자가 있다. 특이하게도 자획의 변화로 한 자도 똑같은 게 없다. 왕희지가 술에서 깬 후 수십 번을 다시 써도 이때 쓴 글에 미치지 못해 ‘당시 신의 도움이 있었다’며 난정서를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좀 더 걷노라면 송나라 여류사인 이청조의 글이 보인다. 그녀는 금나라의 침략으로 나라와 집, 가정을 잃은 슬픔을 글로 승화했다. 당대 문인들의 빼어난 서체는 그 후로도 한참을 이어진다. 유교의 창시자 공자, 손자병법의 손자·손범 등이 모두 산동성 출신이다.
7000여개의 돌계단이 아득하게 이어지는 태산. 중국 사람들은 계단을 한발 한발 오를 때마다 자신의 소원을 읊으며 이뤄지기를 염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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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구나”
산동성 중부 태안에는 해발 1545m의 ‘태산’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 사람들은 태산을 ‘오악지존’이라 부르며, 천하제일 명산으로 꼽았다. 요·순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진시황 등 역대 72명의 황제가 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공자가 읊은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구나’, 두보가 남긴 ‘정상에 올라 묵산의 작음을 굽어보노라’라는 감상은 태산의 웅장함과 위엄을 잘 드러낸다. 유교·불교·도교 등 신앙이 공존한 태산은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산의 입구인 일천문부터 정상인 옥황정까지는 7412개 돌계단이 놓여 있다. 특히 중천문에서 남천문까지 3.5km 거리의 ‘십팔반’은 힘들기로 악명이 자자하다. 절벽 사이로 폭이 좁고 가파른 계단이 18번 구비 돌아 이어진다. 지팡이 동원도 모자라 네발로 기어 올라가야 할 정도로 혹독하다. 황제가 제를 지내기 위해 오른 ‘황제의 길’이라고 알려져 많은 이들이 이 길을 택하고 있다. 만약 체력이 약하거나 등산에 익숙지 않다면 셔틀버스와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단 남천문부터 옥황정까지는 반드시 제 발로 올라야 한다. 고대황제가 봉선제를 지낸 신성한 산을 남의 발만 빌려 오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십팔반 이후의 길은 상대적으로 완만해 잰걸음으로 20여 분, 풍경을 둘러보며 쉬엄쉬엄 가도 1시간이면 족하다.
태산 석벽에 적힌 ‘해대계목’ 하늘과 태산이 한눈에 보인다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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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로 통하는 유일한 산( 山)
중국 사람들은 태산을 인간이 하늘과 맞닿은 유일한 문이라 여겼다. 일천문을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의 시작이라 했다. 남천문을 속세와 신의 세상을 가리는 경계로 보았다. 고대 사람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태산을 찾아 소원을 빌고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그것은 지금에 와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네들은 한발 한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잘돼라’ ‘이뤄져라’ 하고 마음속 깊이 소망을 읊는다.
옥황정 정상에 올라 두보처럼 뭇 산의 작음을 굽어보려 했더니 그보다 먼저 눈에 밟힌 것은 숱한 사람들의 소망과 염원이다. 편한 셔틀버스, 케이블카를 마다하고 굳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는 것은 그만큼 마음속 갈망이 크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태산이 생각보다 낮다고, 왜 하늘과 맞닿은 산이라 불리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들 한다. 하지만 문명의 힘을 빌리지 않고 7000여 개의 가파른 계단을 직접 제 발로 올라본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말을 할 수 없으리라. 갈망이 클수록 가파르고 험난한 산, 그럼에도 오르게 되는 산, 태산의 진면목을 살짝이나마 엿본 기분이다.
조선시대 서예가 양사언은 태산을 보고 이런 말을 남겼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그 말을 인용해 한 줄 감상을 남긴다. ‘태산이 높다하되 간절함 아래 뫼이로다’
태산 석벽에 적힌 ‘해대계목’ 하늘과 태산이 한눈에 보인다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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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가는길=인천~청도, 인천~위해까지 위동항운의 카페리 뉴골든브릿지(New Golden Bridge) 5·7호가 매주 3회씩 왕복 운행한다.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14~17시간이 걸린다. 야간에 이동해 불필요한 숙박비 지출을 줄이고 오전에 도착함에 따라 효율적인 일정 구성이 가능하다. 비행기와는 달리 운신의 폭이 자유롭고 불꽃놀이, 마술쇼, 승무원 공연, 칵테일 파티 등 즐길거리가 많아 단체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사전에 중국 비자를 챙기지 못한 여행객은 현지에 도착한 후 터미널에서 단수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먹거리=청도의 칭다오 맥주박물관에서는 술의 역사와 제조공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관람객에게 제공되는 갓 제조한 맥주는 깊고 진한 풍미와 목구멍을 톡 쏘는 짜릿한 맛이 일품이다.
피차이위엔 꼬치거리에선 불가사리부터 성게·취두부까지 중국의 특색 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도전의식이 투철하다면 지네·전갈 등 곤충꼬치를 추천한다. 관절에 좋아 어르신들이 주로 찾는다. 곤충꼬치 집 맞은편에는 유향거라는 만둣집이 있다. 소룡포 안에는 육즙이 가득해 한입에 넣었다가는 자칫 입안이 델 수 있다. 작게 구멍을 내 육즙을 마신 뒤 간장을 넣어 만두피와 소를 즐긴다.
산둥성 청주 고성. 중국 상고시대 9주 중 하나였던 청주 시내를 복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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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가볼곳
· 샘의 도시 제남 ‘대명호’
제남 한복판에 있는 천연호수다.뭇샘이 모여 이뤄진 호수로, 호수 바닥은 물이 새지 않는 화성암으로 구성돼 장마에도 불지 않고, 가뭄에도 줄지 않는다. 꼬불꼬불한 산책로, 옥띠 같은 냇물과 다양한 다리들, 우거진 수풀, 사방에서 모여든 새들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과 같다.
· ‘새들의 낙원’ 동영 황하 습지
중국에서는 황하를 어머니 강이라고 부른다.황하 하구는 누런 강물, 파란 바다, 흩날리는 갈대꽃으로 오색찬란하다. 백조·두루미 등 367종에 달하는 조류가 번식·서식해 ‘철새의 낙원’으로도 불린다. 아침이면 황하입해구의 일출, 저녁이면 긴 강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 과거 속으로… ‘청주 고성’
중국 상고시대 9주 중 하나였던 청주 시내를 복원했다. 우원가·소덕가 등의 옛 골목을 거닐며 우원·천주교회·부재문 등 수십 개의 역사·문화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다. 단순 복원에 그치지 않고 재현된 건물에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거리의 가게들 역시 실제로 영업을 하고 있다.
산둥성 청주 고성. 중국 상고시대 9주 중 하나였던 청주 시내를 복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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