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치앙마이 이펭축제 참가자가 콤로이를 날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 사진=양유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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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사이로 풍등이 떠오른다. 한 여성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손에서 풍등을 놓는다. 어떤 커플은 키스를 하고선 풍등을 강 위로 띄워보낸다. 한 남자는 많이 해봤다는 듯 순식간에 휙 손을 놓는다. 엄마가 불을 다 붙일 때까지 풍등의 끝을 잡고 있던 남매는 동생이 먼저 손을 놓자 누나가 당황해하며 따라 놓는다. 그 옆에선 한 가족이 둥글게 모여 일제히 풍등을 하늘로 날린다.
어떤 풍등은 저공비행을 해 지켜보던 사람들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한다. 사람들 머리 위로 낮게 날던 풍등이 서서히 하늘로 방향을 잡자 박수와 탄성이 쏟아진다. 또 다른 풍등은 나무에 걸릴 듯하더니 곧 나뭇가지를 피해 하늘길을 찾는다. 하지만 불운한 어떤 풍등은 나무에 걸려 연료가 다 탈 때까지 꼼짝못하기도 한다. 또 한 풍등은 날지 못하고 강물에 떨어져버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풍등은 무사히 하늘로 올라간다. 보름달과 경쟁하듯 밝게 하늘에 떠 있다.
하늘로 날아가는 풍등을 바라보는 이들의 표정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이 순간만큼은 모두들 어린아이가 된 듯 천진난만한 웃음이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근심, 걱정, 질병, 미움 다 가져가고 지금처럼 밝은 미소로 살게 해달라는 이들의 소원이 저 하늘 위에 둥둥 떠 있다. 수만 개에 달하는 붉은 빛방울로 하늘은 장관을 이룬다.
지난 22일 치앙마이 하늘을 수놓은 콤로이들. 이날 쏘아올려진 콤로이는 수만 개에 달한다. / 사진=양유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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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치앙마이 이펭축제의 한 참가자가 소원을 적은 콤로이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다. / 사진=양유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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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치앙마이 나와랏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밤하늘에 풍등이 빛방울처럼 떠다니고 있다. / 사진=양유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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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치앙마이 버킷리스트
해마다 11월 보름이 되면 태국 치앙마이의 하늘은 수만 개의 풍등(콤로이)이 내뿜는 빛으로 아름답게 물든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푼젤'(2010)에 환상적으로 묘사된 바로 그 광경이다. 시내 중심가인 타페게이트 인근에선 각양각색의 민속 옷차림을 한 참가자들의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치앙마이를 세로로 가로지르는 핑강에는 작은 연꽃 모양에 초와 향을 매단 접시(크라통) 수만 개가 떠내려간다. 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꼽히는 이 행사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행사가 벌어지는 올드시티 안팎의 호텔 방은 일찌감치 동나고, 그랩 택시 가격은 수 배로 껑충 뛴다.
하늘로 콤로이를 날리는 행사는 이펭 축제, 강에 크라통을 띄우는 의식은 로이크라통 축제의 일부다. 로이크라통은 3일간 태국 전역에서, 이펭 축제는 란나 왕조가 있던 북부 지방에서 열린다. 란나 왕국의 수도였던 치앙마이에선 같은 기간 두 행사를 동시에 볼 수 있다.
이펭 축제의 '이(Yi)'는 북부 태국어로 숫자 2, '펭(Peng)'은 보름달이 뜬 날을 뜻한다. 따라서 이펭은 란나식 음력으로 두 번째 보름달이 뜬 날인데, 이는 태국식 음력으로는 열두 번째 보름달이다. 이 날이 다가오면 집 정원, 사원, 거리 등 태국 곳곳은 등불 장식으로 밝게 빛난다.
지난 22일 치앙마이의 한 사원에 로이크라통 및 이펭축제를 알리는 형형색색 콤파이가 걸려 있다. / 사진=양유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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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치앙마이 올드시티에서 전통춤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 사진=양유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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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관광청은 매년 10월 로이크라통과 이펭 축제 행사일정을 발표한다. 올해는 11월 21부터 3일간 축제가 열렸다. 풍등 날리기와 로이크라통 외에 도시 곳곳에서 민속춤 퍼레이드, 미인대회, 라이브 뮤직쇼, 종교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지니 축제에 참가하고자 마음 먹었다면 출발 전 태국 관광청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거리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손에 크라통과 콤로이를 들고 핑강을 향해 걷고 있었다. 필자도 노점에서 크라통과 콤로이를 하나씩 사들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움직인 탓에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 채 인파에 휩쓸려 가까스로 핑강으로 갈 수 있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촛불집회나 월드컵 거리 응원전에 참여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이날 시내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수십만 명에 달할 듯하다. 치앙마이 인구가 15만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도시 전체가 외지인들로 가득 찬 셈이다.
지난 23일 치앙마이 나와랏 다리에서 이펭축제 참가자들이 콤로이를 날리기 전 소원을 빌고 있다. / 사진=양유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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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액운을 하늘로 날려보내는 풍등
태국인들은 왜 풍등을 하늘로 날리는 걸까? 이 행사에는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다함께 모여 고통과 질병 등 액운을 떠나보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13세기 란나 왕국 시절부터 내려오는 풍습이지만, 지금처럼 풍등을 동시에 날리는 대규모 행사는 21세기 들어 새로 시작된 이벤트다. 한때 미얀마 국경에 테러공격이 발생하며 축제가 위기를 맞은 적도 있지만 최근 정치적 안정과 더불어 축제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밤하늘을 수놓은 감성적인 풍등 사진이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공유되면서 이펭 축제는 태국의 중요한 관광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행사 기간 중 콤로이는 노점이나 상가에서 판매하는데 가격은 25~50바트(800~1700원) 정도다. 콤로이는 쌀로 만든 얇은 종이를 대나무나 철 프레임에 고정시키고 가운데 태울 수 있는 연료를 부착해 만든다. 불을 붙이면 뜨거운 공기가 종이 안에 갇혀 팽창하고 이 힘으로 하늘로 솟아오른다.
지난 23일 치앙마이 나와랏 다리에서 풍등을 날리러 온 참가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 사진=양유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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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 풍등을 동시에 날리는 공식 행사가 열리는 곳은 매조대학 뒤편에 위치한 안나 두탄카 사원이다. 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에선 전통 공연과 함께 콤로이 날리기 행사가 펼쳐지는데 5000~1만바트(17만~34만원)의 높은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매우 빠르게 매진될 정도로 인기다.
또 치앙마이 동쪽의 도이 사켓 온천, 북쪽의 노던 스터디 센터, 카우보이 아미 라이딩 클럽 등에서도 대규모 풍등 날리기가 포함된 유료 문화 행사가 펼쳐진다. 이 지역들은 대중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치앙마이 시내에서 다함께 이동해 귀환하는 방식으로 투어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 티켓 가격은 2500~5000바트(9만~17만원) 정도로 여기에는 교통비용과 저녁 식사까지 포함된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태국 정부는 허락된 곳에서만 콤로이를 날리도록 시간과 장소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행사기간 3일 중 첫날을 제외한 이틀 동안 저녁 7시부터 다음날 밤 1시까지만 비행이 허락된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6만바트(약 2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방콕에선 콤로이를 날리는 행위가 아예 금지돼 있다.
지난 22일 로이크라통 축제가 한창인 치앙마이 핑강에 크라통이 떠내려가고 있다. / 사진=양유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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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여신에게 감사드리는 로이크라통
축제 기간 하늘에 콤로이가 떠 있다면 강에는 크라통이 떠다닌다. 로이크라통이라는 말 자체가 크라통(Krathon)을 띄운다(Loy)는 뜻이다. 로이크라통의 유래는 13세기 수코타이 왕국 시대 궁녀가 물놀이를 즐기던 데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다.
크라통을 강물에 띄우는 것은 그동안 살면서 겪었던 온갖 미움, 분노 등 나쁜 기억을 떠내려 보낸다는 뜻이다. 과거 지은 죄의 상징으로 손톱, 머리카락을 잘라 띄워 보내기도 한다. 태국인들은 이 예식을 통해 물의 여신 프라 매 콩카(Phra Mae Khongkha)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믿는다.
강물에 크라통을 띄우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의할 점이 있다. 크라통을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기 때문에 태국 정부는 2017년부터 스티로폼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여전히 스티로폼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어 태국 정부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올해 태국 정부는 로이크라통 축제 다음날 차오프라야강에서 84만개의 크라통을 수거했는데 이 가운데 5.3%가 스티로폼으로 만든 것이었다고 발표했다.
지난 23일 치앙마이 아이언 다리에서 축제 참가자가 폭죽에 불을 붙이고 있다. / 사진=양유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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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치앙마이 아이언 다리에서 한 관광객이 밤하늘에 뜬 풍등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양유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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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밤 늦게까지 계속된다. 나와랏 다리에서 하늘에 뜬 풍등과 강물에 비친 불빛을 배경으로 추억 만들기에 여념 없는 사람들은 떠날 줄 모르고 축제를 만끽하고 있다. 길 한편에선 축제를 위해 장기자랑을 준비한 아이들이 신나게 노래 부르고 춤 추며 흥을 북돋운다.
필자도 인파에 섞여 크라통을 정성스럽게 핑강에 떠내려 보내며 소원을 빌었다. 물의 여신에게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님의 명복을 빌었다. 그리고 콤라이에 불을 붙였다. 가운데 연료가 있는 부분은 라이터로 한참을 태워야 겨우 불이 붙는다. 연료가 타오르자 종이 내부가 뜨거워졌다. 가장자리 철골 부분을 두 손으로 잡고 내부가 충분히 달아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올해 액운들을 이 풍등에 담아 보내니 부디 가져가소서." 짧은 순간 하늘을 향해 소원을 빈 뒤 두 손을 놓았다. 마술처럼 콤라이가 둥둥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하늘 높은 곳으로 빨려 올라갔다. 곧 하늘 위에 떠 있는 수만 개의 콤라이들에 섞여 필자가 쏘아올린 풍등이 어떤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나쁜 일들, 증오, 미움, 질병, 근심 같은 것들을 떠나보내기 위한 종이 상자가 저 높은 곳에서 활활 타오르며 떠 있다. 내 손에 있을 땐 내 것이었지만 이젠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다. 문득 세상 모든 일이 풍등 날리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손에서 놓는 순간 나는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글·사진/양유창 기자]
▷태국 치앙마이 여행 정보
통화: 바트(THB) 1바트=약 34원
항공: 대한항공·제주항공 치앙마이 직항 5시간30분 소요. 타이항공·에어아시아 등 방콕 경유 총 7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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