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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라이프] '세상의 누구도 외딴 섬이 아니다'…양평 대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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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산은 갈대의 낙원이었다.

산으로 가는 길녘의 강은 희뿌윰하니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무진기행(霧津紀行)'의 그 무진이 그랬을까. 강은 연신 안개를 피어올리고 있었고, 안개에 둘러싸인 나루터는 그저 고즈넉하니 강 언저리에 드러누워 또 다른 무진(霧津, 안개나루)을 그려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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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의 무진이 안개 저편에 끈적끈적한 욕망을 숨기고 있었다면, 북한강의 무진은 그저 평온했고, 다만 수줍은 교태가 느껴졌다. 제 속살이 부끄러운 처자의 부끄러움 가득한 시스루마냥 보일 듯 말 듯 강을, 산을, 또 세상을, 안개는 그 뿌연 치마폭에다 감추고 언뜻번뜻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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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가고는 있지만 산은 더욱 아득하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가고자 했던 양평의 대부산은 미처 강이 끝나기도 전인 어느 산자락,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애당초 안개는 강을 건너지도 벗어나지도 못하였던지라, 길과 안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란히 달리는 철길처럼 닿지도, 침범하지도 않았었다.

그렇게 달려 오래지 않아 닿은 곳, 대부산으로 향하는 길목인 배너미재(600m)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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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산(743m)은 경기도 가평군과 양평군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산이라고는 하지만 웬만한 지도에는 이름도 없는 산이란다. 다만 유명산을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봉우리인지라 유명산(有名山, 864m)과 더불어 회자되는 산이다. 그래서인지 유명산과 대부산은 실제 구별조차 쉽지 않다. 대부산의 억새평원을 걷자하면, 그곳이 또 유명산의 억새평원인 까닭이다. 두 봉우리 사이에 억새평원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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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산에게는 이름이 하나 더 있는데, 어비산(漁飛山)이다. 아주 오래전 옛날, 홍수 때가 되면 물고기들이 산을 넘는다고 해서 어비산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산에 배너미재라는 지명이 존재하는 것이다.

배너미재는 '배가 넘어 다니던 고개'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산에 무슨 물이 있고 배가 있어 배너미재인가 하겠지만, 우리나라의 여러 산중에는 배너미재란 이름을 달고 있는 고개가 여럿이다. 그 속내에는 큰물이 났던 그 옛날 어느 시절에는 이곳이 호수였다는 설화 하나쯤은 품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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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산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어느새 서리가 내려 잔뜩 언 표정으로 길의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계절은 벌써 겨울로 향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어쩌랴! 또 그때가 되었음인데. 가는 세월의 속내를 어찌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저 가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한 사람들은 침묵으로 산을 오를 뿐이다.

그래서일까. 산으로 오르는 초입의 나무들은 휑뎅그레하니 저 혼자 추위에 떨고 있다. 발밑에서 스러지는 낙엽들의 바스락대는 소리가 제법 크다. 땅 위로 떨어져 제 몸을 쉬고 있던 시간들이 제법 되었다는 의미일 게다. 시간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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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林道)의 길은 무던히도 산으로 향한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길만큼이나 무심한 표정으로 당장의 앞만을 바라보며 산을 오른다. 산행의 시작이 늘 그러하듯 걸음은 무겁고, 더디다. 길이 품은 풍경마저 잿빛인지라 길도, 산도, 사람도 고요하다.

그렇게 자신을 감싸던 풍성한 옷을 벗어던진 채 가난한 몸의 나무 사이로 길은 이어지고, 뼈만 남은 몰골의 앙상한 나무숲 속으로 걸어가는 그들이 마치 상어의 아가리 속으로 향하기라도 하는 양, 모골이 송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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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너지재에서 시작된 길이 1km쯤 이어질 무렵, 아! 그랬구나.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바로 이 풍경과 마주하기 위함이었음을 깨닫는다. 무심했던 길은 어느 순간, 사람들을 억새의 평원에 풀어놓는다. 아! 이곳이 억새의 낙원이었구나.

산마루가 온통 억새밭이다.

명성산의 억새가 차분하고 가지런한 잘 가꿔진 정원의 억새에 비유할 수 있다면 대부산의 억새는 거친 야생의 억새였다. 게다가 명성산의 억새밭이 오목한 산 정상 부근에 오롯이 모여 있는 모양새라면, 대부산의 억새는 온 산을 뒤덮고 있었다. 그러니 규모부터가 다르다. 산자락이 온통 억새밭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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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이라며 아파하던 시인을 '가도 가도 억새밭'인 길 위에서 문득 떠올린다. 자신에게 내려진 천형(天刑)에 아파하던 시인이 걸어가던 전라도길이 이 산으로 이어졌더라면 그는 '가도 가도 억새밭'인 이곳에서 그저 목 놓아 울었을 것이다. 길 위에서 잃어버린 발가락과 그나마 몇 개 남지 않은 발가락이, 소록도로 가야하는 천리 길이 아파 울고 또 울었을 것이다. 억새들의 너른 품안에서는 그래도 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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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산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에 울음을 우는 것은 억새였다. 잔바람에 소리죽여 그들은 서걱서걱 울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제 스스로 추는 춤사위에 흥이 겨워 소리죽여 웃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웃고 있었을 것이다.

단풍마저 사라진 이 산에서 그들은 왕이었다.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위세에 산은 잔뜩 웅크리고 있었고, 그들을 보러 온 사람들의 가벼운 탄성마저 오래가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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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려서 갈대고 억새라더니 그들은 그렇게 흔들리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정상이라는 성채(城寨)를 향해 오르고 또 오르고 있었다.

그들의 진군에는 기꺼이 어깨를 빌려주고, 손을 잡아주는 백만 대군의 전우들이 동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손에 손잡고, 어깨를 걸고 그 어떤 어려움이나 난관마저도 거뜬히 돌파할 것 같은 굳은 스크럼을 짜고, 그렇게 그들은 산을 맹렬히 점령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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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가 이 산을 점령하기 전 이곳은 화전민들이 불을 놓아 밭을 일구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1960년대 들어 화전민들이 떠난 후 이 땅은 한동안 고랭지 채소의 차지가 되었다가 20여 년 전 그들마저 떠나자, 기회를 엿보던 억새들이 어느 틈엔가 점령을 완성하고 말았던 것이다. 산을 타고 올라갔던 것인지, 아니면 산 정상에서 아래로 쏟아져 내려왔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산은 억새들의 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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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들의 군무(群舞)를 보며 그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그들만의 연대(連帶)였음을 깨닫게 된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더니 그들의 생존 전략이 그러했던 것이다. 결국 더불어 갈 때 그들은 멀리 갈 수 있었고, 기어이 산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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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존 던(John Donne)의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의 시구를 떠올리게 된다.

"세상의 누구도 외딴 섬이 아니다(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모든 사람은 대륙의 일부분(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가면, 유럽은 그만큼 작아진다.(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중략)

종은 당신을 위해 울린다.(it tolls for t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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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시가 내포하는 조종(弔鐘)의 의미야 생명력 가득한 억새에게 어울리겠냐마는 첫 구절만큼은 억새들의 기세를 설명해주는 표현으로는 적절해 보인다. 이 억새들 역시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혼자가 아니라는, 더불어 존재한다는 그들의 인식 내지 각성이 지금 이 대부산 억새들의 생존 방식이자 존재 이유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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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뒤늦게 마음에 두는 사자성어 중에 '천하무인(天下無人)'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 남이란 없다'는 말이다. 결국 '남이 없다'는 말은 '너'나 '내'가 아닌 '우리'라는 말이기도 하다.

세상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란 것은 어느 것 하나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단 며칠도 살 수 없는 것이 삶의 본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그 사실을 잊는다. '나' 라는 존재를 중심에 두고, 그 '나'와의 거리를 따지며, '나'와 '너(타인)'으로 구별하며 금을 긋고, '나' 아닌 누군가를 기어이 금 밖으로 밀어낸다. '내'가 아닌 모든 것은 그저 남일 뿐.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내 가족', '내 것'... 그렇게 '내'자가 붙은 것들만이 유일한 관심사요, 사랑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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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디 그런가. 떵떵거리며 사는, 잘 나간다고 뿌듯해 하는 그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존재하는 것임이 지극히 당연함에도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너무나도 자주, 잊고 산다.

같은 하늘을 이고, 함께 햇빛을 나누고, 또 함께 비를 맞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애써 외면한 채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신영복 선생의 "나의 아픔이 세상의 수많은 아픔의 한 조각임을 깨닫고, 나의 기쁨이 누군가의 기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리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준다."는 충고가 새삼 부끄러운 자화상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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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 가도 억새밭은 쉬이 제 끝을 보여줄 기색조차 없다. 아! 어디까지 이어져 있더란 말인가.

억새의 평원을 오르는 사람들이 차라리 단풍이요, 꽃이다. 울긋불긋한 그들이 단조로운 색조의 억새의 바다에서 단연 눈에 띄는 무늬가 된다. 억새가 스크럼을 풀고 내어준 길 위로 사람들이 가고 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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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오두막이 보인다. 아니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더란 말인가. 아니었다. 오두막은 영화의 세트장이었다. 영화 <관상>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영화에서 본 기억이 난다. 관상가인 내경(송강호 분)이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까지 머물던 오두막이 바로 이 오두막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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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은 관리의 손길에서 멀어진 탓인지 이 곳 저 곳이 부서지고 있었다. 대부산이자 유명산의 억새밭에서 나름 이야기꺼리이자 추억거리이며, 나름 이야기를 품은 상징물이 될 만도 한데 방치되고 있음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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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자, 억새들의 은빛 춤사위에 눈이 부시다.

또 떠나야하는 무리의 사람들은 다시 억새의 언덕을 오르고 내리기를 여러 번. 널따란 길 위에서 사람들은 이제야 억새의 바다에서 빠져나와 허우적거리지 않고 가만히 바라볼 여유를 가진다. 자박자박 산책하듯 걷는 걸음 속에서 억새들을 음미하고, 잔바람에도 휘청이고 마는 그들의 흔들림에 무심히 빠져들어도 좋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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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건너면 유명산 자락이다. 저 멀리 두둥실 떠오른 패러글라이딩이 아스라하다.

유명산이 유명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데에는 나름 사연이 담겨 있다. 1970년대의 어느 즈음 이 산을 오르던 등반대는 이 산에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토록 아름다운 산에 이름이 없다니... 애석해 하던 등반대는 즉석에서 당시 등반대의 유일한 여성대원이었던 진유명씨의 이름을 따서 이 산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유명(有名)산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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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처녀지를 개척하거나 힘겹게 고봉(高峰)을 정복한 이에게 헌사의 의미로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있으나, 유명산의 경우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경로로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유명산은 이후 양평읍지 등 여러 고문헌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찾게 되는데, 이 산의 본명은 마유산(馬遊山)이었다. 현재는 마유산과 유명산이라는 이름을 두고 갑론을박이 진행되는 모양이다.

하여튼, 마유산은 이름 그대로 말들이 뛰놀던 산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이 군마 사육장이었단다. 지금이야 억새로 뒤덮인 이 너른 평원이 예전에는 말들이 뛰놀며 전장으로 달려 나갈 꿈을 키우고 있었던 곳이었다니 '마걸(馬傑)은 간 데 없고, 산천도 의구하지' 않음이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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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또 발걸음을 재촉한다. 가야 할 목적지는 하늘을 뛰노는 패러글라이딩이 땅을 벗어나 도약을 꿈꾸는 활공장.

억새의 숲을 헤치며 나아가는 길이 예사롭지 않다. 억새 덤불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나뭇가지들이 앞 사람의 옷섶에 걸려 뒤따르는 이의 볼기짝을 후려친다. 어이쿠~ 뒷사람의 비명에 부주의한 몸놀림을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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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이의 모습이 선명하여지는 것이 활공장이 머지 않았나보다. 아득히 떠가는 그들에게서 새삼 새들의 자유를 발견한다. 신영복 선생에 따르면, '자유(自由)는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로 걸어가는 것'이라는데, 그렇다면... 그렇다면 나 역시 충분히 자유롭지 아니한가.

두 발로 세상을 이렇게 주유하고 있음이 바로, 자유 아니겠는가. 새들을 부러워해본 적도 없기에 그들의 자유를 알 길이야 없지만, 이만하면 나도 충분히 자유롭다고 자족해도 될 일이다. 천천히 걸으며, 걷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마다하지 않는 나를 깨닫고, 길이 몸을 통해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으며, 눈으로는 자연의 풍광을 맘껏 담을 수 있으니 어찌 자유롭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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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농부가 논밭에서 열매를 얻듯이, 걷는 이는 길 위에서 이런 저런 인연도, 그를 통한 배움도 얻으니 누구 부러워할 처지가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진짜 세상은 자기만의 눈과 귀를 열고 두 발로 직접 걸어 들어감으로써 발견하는 것임을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허세로 보이는가? 설령 그것이 허세라도 길 위에 서면 설명할 수 없는 자유로움이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서 바라보는 저 멀리에 남한강이 아득하다. 저 물은 얼마가지 않아 양수리의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만날 것이다.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여정은 그들의 예정된 운명이었다.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 속에서 사람은 성장하고, 물은 덩치를 키워 바다와 가까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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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리면, 여러 봉우리들이 첩첩의 산 너머 산의 파노라마를 형성한다. 좌측으로는 안테나를 머리에 인 용문산(1,157m)이 버티고 있고, 그 곁으로 나란히 우뚝 솟은 장군봉(1,045m)이며 여러 봉우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서를 다툰다.

그래서일까. 저 멀리 흐르는 남한강이 붉게 물드는 그 시간까지 이 전망 좋은 곳에서 가만히 머무르고만 싶어진다. 하지만 이마저도 욕심인 걸 헛웃음으로 인정하고 만다. 돌아가야 할 곳이 있고, 더불어 가야 할 그들이 있음을 잊지 않고 있음이다. 여행은 돌아옴으로써 완성된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 돌아옴은 어쩌면 손톱 반만큼은 넓어진 시야와 함께일 것이다.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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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공장을 벗어난 길은 하산(下山)의 길로 접어든다.

머지않은 곳에 소나무 두 그루가 고고하게 서 있다. 이 장소 역시 어디선가 본 듯하다. 아니 어디선가 들은 듯하다. 그랬다. 이곳이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생(감우성 분)과 공길(이준기 분)이 봉사놀이를 하다 서로에게서 연정을 느끼던 바로 그 장소였던 것이다. 영화의 감독은 이 장소를 들어 '동성끼리 있으면 동성애가 생기고 이성끼리 있으면 이성애가 생길 만한 곳이 여기다'라고 했다던데... 글쎄... 누군가와 더불어 노을이 지는 그때에 저 멀리 남한강이 물드는 모습을 바라본다면, 좋기는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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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면서 만난 굽어진 길을 보노라니 또 어느 영화가 생각난다. 청산도의 보리밭둑길에서 찍었다는 <서편제>의 대표적인 장면인 아비(유봉)와 딸(송화)이 북치고 노래하며 걸어 내려오던 그 밭둑길이 생각난 것이다. 청산도의 그 길도 영화가 준 그 느낌을 잃어버린 지 오래인지라, 또 다른 서편제가 만들어진다면 이곳 역시 적당해 보인다.

대부산과 유명산을 아우르는 이 너른 평원은 의외로 많은 영화의 장소들을 숨겨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러 편의 영화가 또 드라마가 이 산과 평원의 여러 곳에서 찍었노라고 동행이 귀띔을 한다. 허기야 보는 눈이야 매 일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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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을 서두르다 무심코 뒤돌아본 대부산이 아득하다. 마치 대나무로 엮어 만든 소쿠리를 엎어놓은 듯 편안해 보인다. 그 편안함이 차라리 이별의 모습으로는 적당하다. 보내는 이도 가는 이도 서로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내려가는 길도 억새가 지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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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산 트레깅의 흠이라면 산 아랫녘의 일부 구간에서는 산악오토바이와 길을 공유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소음과 질주는 잠시 동안이라고는 하지만, 산의 적막과 걷는 이의 흥취를 깨는 일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그나마 그들의 길과 사람의 길을 분리하려 애쓴 노력만큼은 인정해줘야 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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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하늘의 언저리가 붉어지려한다. 우리의 여정도 끝나간다. 억새들이 가는 이들을 억세게(?) 배웅한다. 때마침 노을을 따라 온 바람이 손이라도 한 번 흔들어주라고 무심한 억새를 슬며시 떼밀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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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산 가는 길

○ <승용차>
6번 국도를 타고 양평읍 쪽으로 가다 → 옥천면 고읍교차로에서 좌회전 → 옥천냉면마을 지나 직진 → 설매재 자연휴양림을 지나 → 배너미재 정상 (* 주차 공간은 부족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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