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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佛 노란조끼 시위대, 총까지 탈취… 전쟁터같은 샹젤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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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3000여명 투석전·방화, 130여명 부상·410여명 체포

"턱에 돌을 맞아 고통스러운 순간 왼손에 또 돌을 맞았다. 손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샹젤리제 거리는 뜯어낸 보도블록과 부서진 집기류로 가득했다. (시위대가) 쇠구슬까지 던졌다." 프랑스 경찰관 알렉상드르(32)는 지난 24일 유류세(稅) 인상에 반대하는 '노란 조끼' 시위대에 맞선 경험을 일간 르파리지앵에 털어놨다. 그는 "그렇게 난폭한 장면은 처음 봤다"고 했다.

지난달 17일부터 유류세 인상 등에 불만을 품고 프랑스 전역에서 본격화한 '노란 조끼' 시위가 갈수록 폭력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1일(현지 시각)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3000여 명의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치고 보도블록을 뜯어 투석전을 벌이고 주변 상점 유리창을 마구잡이로 부쉈다. 길가의 차량 수십 대를 불태웠고, 일부는 경찰차에서 소총을 훔쳐 갔다. 개선문에 "노란 조끼가 승리한다"는 스프레이 낙서를 한 시위대도 있었다. 경찰도 최루탄과 물대포로 대응하면서 시가전을 방불케 했다. 1일 하루에만 프랑스 전역에서 13만6000명이 시위에 참가했으며, 전쟁터와 흡사한 파리 샹젤리제 일대에서는 133명이 다치고 412명이 체포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일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 일대 피해 현장을 찾아 "폭력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크롱은 이어 관계부처 장관 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앞서 마크롱은 지난달 24일 "시위대는 수치스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했고, 이틀 뒤에는 "샹젤리제의 전투 장면이 해외 미디어에 등장하는 상황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과격한 시위로 국가 이미지 실추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비상사태 선포도 검토 중이다.

유럽 각국에서 시위가 다반사이지만 폭력적 양상으로 번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과격 폭력 시위가 자주 벌어진다. 프랑스에서는 올해만 해도 지난 5월 노동절을 맞아 거리로 나선 시위대가 파리 13구 일대 상점들을 공격해 초토화했다. 대학생들은 68혁명 50주년을 맞아 학교 기물을 부수고 강의실을 폐쇄해 학사를 마비시켰다.

왜 유독 프랑스에서 폭력 시위가 잦을까. 프랑스인들은 "민중의 힘으로 왕정을 무너뜨린 대혁명 전통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 평민 수천 명이 루이 16세의 폭정(暴政)을 상징하는 바스티유 감옥을 부수는 폭동 형식으로 시작됐다. 이를 계기로 절대 권력자인 루이 16세를 단두대에서 처형하며 공화정을 탄생시켰다. 프랑스인들은 폭력 시위로 역사를 바꾸는 주인공이 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런 시위의 DNA가 프랑스인들의 핏속에 흐르고 있다. 프랑스 국가(國歌)인 대혁명 당시의 노래 '라 마르세예즈' 가사에도 그런 전통이 담겨 있다. "그들이 우리 아들들과 아내들의 목을 베기 위해 바로 앞에 왔다" "그들의 피로 밭을 적시자"는 대목이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는 근대화 과정에서 프랑스처럼 무력을 쓴 민중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대혁명 때의 이런 경험은 1968년 유럽을 휩쓴 사회 변혁 운동 '68혁명' 때도 반영되었다. 다른 서구 국가에서는 대체로 평화 시위가 벌어졌지만 프랑스에서는 투석전을 벌이는 폭력적 양태로 진행됐다.

이런 전통이 내려오면서 프랑스식 시위는 남을 불편하게 만들어 원하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파하려는 특성이 있다. 구호를 외치는 정도의 시위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란 조끼' 시위도 차량으로 도로를 막아 다른 사람들의 통행을 저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 6월 공기업 개혁에 반대하는 공공 부문 노조원들은 엘리제궁에 들어가는 가스관을 막아버렸다. 30대 회사원 미카엘 마스씨는 "프랑스는 시위 폭력에 관대하고 일부에서는 이를 미화하는 경향마저 있다"고 했다.

프랑스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잦다 보니 그 안에 숨어 소수의 과격 시위꾼이 활개 치기 좋다는 지적도 있다. 2000년 이후 프랑스에서는 20만명 이상 참가한 매머드급 시위만 20차례가 넘는다.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 내무장관은 "1일 샹젤리제 거리 시위에서 난폭한 1500명이 폭력 시위를 벌여 세계적 관광지 파리를 전쟁터처럼 만들었다"고 했다. 프랑스 방송들은 검은색 복장으로 집회에 나타나는 반정부 세력 '블랙 블록(black bloc)'이 '노란 조끼' 시위에도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일간 르피가로는 "극우와 극좌 진영 양쪽에서 모두 폭력을 자주 행사하는 전문 시위대가 '노란 조끼' 시위를 계기로 활개를 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포토]폭력에 얼룩진 파리, 노란조끼 시위대…"그렇게 난폭한 장면은 처음"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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