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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4050’ 영웅 퀸은 어떻게 ‘2030’의 챔피언이 되었나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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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광장문화에 열광하는 시민들, ‘떼창’으로 흥 분출

젊은 관객들, 요즘 음악과 다른 멜로디에 반하고

사회적 좌절감 위로하는 성공 스토리에 동일시


한겨레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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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불러온 퀸 열풍이 이 정도로 뜨거울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영화가 개봉(10월31일)한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바람이 잦아들기는커녕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영화는 지난 2일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음악영화 국내 흥행 신기록을 세웠고요, <문화방송>이 이날 긴급 편성한 ‘라이브 에이드’ 공연 실황 방송은 일요일 밤 치고는 이례적으로 높은 4.1%(전국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시간을 되돌려가며 짚어볼까 합니다.

제가 영화를 처음 본 건 지난 10월24일 언론시사회에서였습니다. 기대가 너무 컸는지 아쉬움도 작지 않았습니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성공가도를 달리던 주인공이 위기를 맞았다가 마지막에 극적으로 갈등을 해소한다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구성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극적 효과를 위해 일부 사실을 비튼 대목도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보는 내내 가슴이 뛰었습니다. 영화 내내 흐른 퀸의 음악이 정말 좋았거든요. 특히 자선공연 ‘라이브 에이드’ 무대를 그대로 재현한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이런 장점들이 단점을 덮고도 남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대들이 퀸을 잘 몰라 걱정이에요.” 영화 홍보 담당자의 말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영화가 쉽고 대중적으로 나왔으니 잘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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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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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첫날 <보헤미안 랩소디>는 관객수에서 한국영화 <완벽한 타인>에 뒤진 2위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이들의 에스엔에스(SNS) 입소문에 힘입어 점차 관객이 늘기 시작하더니 기어이 개봉 4주차에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여기에는 같은 영화를 여러 차례 보는 엔(N)차 관람은 물론, 11월6일부터 일부 극장에서 시작한 ‘싱어롱’ 상영의 힘도 크다고 봅니다. 영화를 보면서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관람 문화가 시작된 거죠.

11월7일 싱어롱 상영 현장에 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환호하고 박수 치고 노래를 부를 줄 몰랐습니다. 1985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으로 날아간 줄 알았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담아 쓴 기사가 ‘33년 전 퀸 공연장으로…엄마도 딸도 “위 아 더 챔피언~”’(<한겨레> 11월9일치 18면)입니다. 에스엔에스로 만난 지인들끼리 극장을 통째로 빌려 ‘떼창’을 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지난달 19일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축제라도 온 것 같았습니다. “퀸과 영화도 좋지만, 무엇보다 일상에서 벗어나 해방구를 즐기고 싶었다”는 대답이 많았습니다. 이날 현장은 ‘프레디가 들을 수 있게 떼창하자 “에~오!”’(<한겨레> 11월26일치 22면) 기사로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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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저녁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떼창 단체관람 참가자들이 뒤풀이 자리에서 코스프레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아정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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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해방구’라는 말에 주목합니다. 사람들은 극장에서 노래하고 소리 지르면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고 눌러뒀던 흥을 분출하는 듯했습니다.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우리 시민들이 얼마나 대차게 놀았는지를요. 이는 이후 광장문화로 이어졌고, 시민들은 때마다 판을 벌여 열정을 분출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그럴 일이 별로 없었죠. 그걸 <보헤미안 랩소디>가 건드려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 스포츠 응원가로 쓰인 노래 ‘위 아 더 챔피언스’를 관객들이 가장 크게 따라 부른다는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모두가 떼창을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확실한 건 영화를 본 모두가 퀸의 음악에 푹 빠졌다는 사실입니다. 퀸의 전성기는 1970~80년대입니다. 그 시절 음악에 빠졌던 청(소)년들은 이제 40~50대가 됐습니다. 먹고살기 바쁘고 감수성도 무뎌져 음악을 멀리한 지 오래인 이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그랬던 이들이 극장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한때 뜨겁게 좋아했던 퀸의 명곡들 덕에 봉인돼 있던 ‘청년의 마음’이 다시 깨어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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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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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홍보 담당자가 “퀸을 잘 모른다”고 걱정했던 젊은 세대는 어땠을까요? 20~30대가 전체 관객의 60% 가까이 이를 정도로 이들은 ‘퀸앓이’에 빠졌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리던 그 좋은 노래들이 다 퀸이었어?” 하고 놀라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퀸 음악은 무엇보다 멜로디가 좋습니다. 당시 평론계는 일관된 색깔이 부족하다며 박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지만, 다양한 스타일의 퀸 음악을 하나로 꿰는 공통점은 한번만 들어도 꽂히는 대중적 멜로디죠. 요즘엔 멜로디보다 비트와 무드(분위기)를 중시하는 이디엠(EDM)과 힙합이 대세입니다. 이런 음악을 주로 접하던 20~30대가 퀸 음악의 매력적인 멜로디에 새삼 눈을 뜬 거죠. 멜로디 위주의 1990년대 음악을 틀어주는 복고풍 클럽에 젊은 층이 몰리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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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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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만이 아닙니다. 젊은 층은 이주민이자 성소수자인 프레디 머큐리가 겪은 차별과 고통,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서사에 공감과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20~30대의 정치·경제·사회적 좌절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현재 적절한 카타르시스나 더 나아가 자기만의 성공 스토리를 필요로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영화에 급격하게 자기 동일화 하는 이유로 보인다. 게다가 20대에게 퀸과 프레디 머큐리는 거의 ‘신상(품)’이다.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상품에 열광하는 법이다. 대부분의 신상들은 쓰기 쉽고 편하게 돼있는데, 이 영화가 딱 그렇다.”

한 영화가 이상 열풍을 일으키는 데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저의 분석도 하나의 추측일 것입니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건, 많은 이들이 이번 경험을 통해 좋은 음악, 좋은 문화 콘텐츠를 발견하고 즐기는 기쁨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최신 트렌드를 좇는 20~30대든, 평소 문화에 별 관심 없던 40~50대든, 잘 몰랐거나 잊고 있던 나만의 취향을 찾아 뭔가를 즐긴다는 건 큰 행복을 주니까요. 퀸 말고 이젠 뭘 또 찾아보시겠습니까?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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