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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화제의 법조인] "임금체불 처벌 강화 효력없어… 한 기관서 원스톱 환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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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욱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임금채권 넘겨받아 사업자 소송
변제금 돌려받는 시스템 만들면 근로자의 불편 줄일 수 있을 것


파이낸셜뉴스

"정부가 지난 10년 동안 임금체불을 줄이기 위해 여러 제도를 도입했으나 실효성이 전혀 없다는 게 통계상으로 확인됐다." 이승욱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로 대표되는 과거 정부의 임금체불 방지 대책에 대해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라고 진단했다. 대표적으로 고용노동부는 고액·상습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한 명단을 공개하고, 종합신용정보집중기관에 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제도를 2012년 8월 도입했다. 사업주의 인적사항이 노출될 뿐만 아니라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의 대출이 제한되고, 정부 사업에 참여할 수 없는 등 사업상 불이익을 주는 강력한 제재 장치를 뒀다.

■"과거 정부, 실패한 정책"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임금체불 현황을 보면 제도가 시행된 2012년 말 임금체불 금액은 1조1772억원이었으나 2013년 말 1조1930억원으로 오히려 늘었다. 이후 2014년 말 1조3195억원, 2015년 말 1조2993억원, 2016년 말 1조4286억원, 2017년 말 1조3811억원으로 제도 도입 전보다 악화된 상황이 유지되고 있다.

이 교수는 "정부나 정치권, 노동계에서는 임금체불 규모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처벌 강화'를 들고 있지만, 그 동안의 조치들을 보면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현재도 우리나라처럼 임금체불에 대해 강하게 처벌하는 나라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과의 비교를 통해 처벌 강화 '무용론'에 대해 설명했다. 일본의 인구와 국내총생산(GDP)은 한국보다 3배가 많은 반면 임금체불 규모는 한국이 10배 더 크다. GDP 대비로는 한국의 임금체불 규모가 일본의 30배에 달하는 셈이다. 그러나 처벌의 상한선은 정반대다.

"임금체불에 대해 우리나라처럼 강하게 처벌하는 국가는 없다. 임금 체불 사업주에 대해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2년 이하의 징역,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매기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징역형은 없고, 30만엔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이렇게 강력한 제재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임금체불 규모가 줄어들지 않는 주된 원인으로는 사업주의 의식 수준을 꼬집었다. 이 교수는 "회사가 망해서 임금을 못 준다면 이해할 수 있으나 통계를 보면 사업을 운영하면서 임금을 체불하는 규모가 90%에 이른다"며 "사용자들은 사업을 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채무 가운데 임금을 제일 마지막에 갚는 경향이 있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은 많으니 급여 지급은 미루고, 다른 채무부터 갚는 것이라고 밖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임금체불은 선진국·후진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특이한 현상"이라며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특유한 현상을 고려한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추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인 해결 방향으로 사업주 처벌 강화가 아닌 근로자가 체불임금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받아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한다고 제시했다. 참조할 만한 방안으로는 민사소송에 중점을 둔 미국의 사례를 들었다.

■"원스톱 시스템 마련돼야"

이 교수는 "미국 뉴욕주는 임금체불을 임금절도로 보고, 2011년부터 '임금절도예방법'(Wage Theft Prevention Act)을 시행하고 있다. 미지급임금액의 2배 배상이 원칙이고, 재산을 빼돌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체불 사업주의 재산목록제공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며 "캘리포니아주는 우리나라 노동부 근로기준국장에 해당하는 근로기준집행국장이 체불 사업주에 대해 압류 조치는 물론 사업중단명령도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임금체불 피해를 구제받기 위해 근로자가 직접 시간과 비용을 들여 여러 기관을 거쳐야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민형사상 문제를 하나의 기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시스템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 교수는 "별도의 기구가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에게 미지급임금을 지급하는 대신 임금채권을 넘겨받아 사용자를 상대로 소송을 내 변제금을 돌려받는 시스템을 만들면 근로자의 불편을 줄일 수 있다"며 "사용자가 누리는 불법적 이익을 환수하면서 근로자를 보호하는 효과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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