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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돼지심장 이식 원숭이 195일 생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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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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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개코원숭이가 195일간 생존하는 데 성공했다. 종전 기록이었던 57일을 3배 이상 훌쩍 뛰어넘는 성과로 이종 장기 이식을 통한 난치병 치료와 생명 연장의 꿈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독일과 스웨덴 연구진은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이번 성과는 이종 간 심장 이식이 충분히 가능하며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독일 뮌헨대 의대와 스웨덴 스카네의대 등 공동연구진은 인간의 면역세포 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돼지 심장을 인간과 유사한 영장류인 개코원숭이에게 이식한 뒤 최고 195일간 생존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5일자(현지시간)에 게재됐다.

독일·스웨덴 연구진은 16마리 개코원숭이를 몇 그룹으로 나눈 뒤 유전자를 조작한 돼지 심장을 조건을 바꿔 가며 이식하는 실험을 했다. 과거에는 돼지 심장을 꺼내 보관할 때 차가운 용액에 담가 뒀는데 연구진은 차가워진 심장에 다시 혈액을 넣으면 심장조직이 손상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때문에 연구진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심장을 꺼낸 뒤 이식하기 전 '관류' 과정을 추가했다. 관류란 체내에서 꺼낸 동물 장기에 인공 혈액 등을 넣어 체외에서도 살아 있는 심장처럼 독립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과정을 말한다.

또 연구진은 개코원숭이 혈압을 돼지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심장 세포가 증식하는 것을 막는 억제제를 투여하는 작업을 새롭게 추가했다. 일반적으로 이종 장기 이식을 진행할 때는 면역거부반응(타인·타종의 장기가 이식되면 이를 침입자로 여겨 인체 면역 시스템이 공격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약물을 투여한다. 하지만 이 약물은 심장세포를 증식시키기도 한다. 심장세포가 늘어나면 이식된 심장이 비대해지고 원숭이가 장기간 생존하는 게 어려워진다. 연구진은 이 억제제를 심장 이식 후 바로 투여한 뒤 농도가 최소치로 유지되도록 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친 뒤 심장 이식을 받은 원숭이 중 1마리가 합병증에 걸렸고, 이 원숭이는 51일 뒤 안락사시켰다. 나머지 2마리는 3개월 동안 생존했고 다른 2마리는 안락사되기 전까지 6개월을 생존했다. 그리고 1마리는 195일 동안 건강하게 살았다.

크리스토프 노살라 독일심장센터 교수는 네이처에 쓴 기고에서 "이번 연구 덕분에 돼지 심장을 인간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현실화되는 데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됐다"며 "실제 인간을 대상으로 임상하기 전에 어떤 동물실험 결과가 필요한지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2000년 국제심장·폐이식협회는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원숭이 중 60%가 3개월 이상 생존하고 더 오랜 기간 생존 가능한 징후를 보였을 때 인간 심장 이식을 허락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노살라 교수는 "이번 연구는 이 기준을 만족하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은 더 많은 연구 데이터와 성공적인 실험 결과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심장 기능에 이상이 생겨 혈액을 온몸으로 보내는 데 문제가 있는 심부전증 환자의 경우 다른 사람의 심장을 이식받는 것 외에는 치료법이 없다. 유럽장기이식재단에 따르면 2030년까지 미국에서만 약 800만명의 심부전증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중 상당수는 심장 이식을 받지 못해 목숨을 잃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심장 이식을 원하는 환자는 많지만 공급이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1960년대부터 이종 장기 이식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종 장기 이식이란 동물의 각막이나 심장, 신장과 같은 장기를 다른 종의 동물이나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을 말한다. 1963년 미국 연구진이 돼지 신장을 침팬지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하면서 세계 각국이 이 분야 연구에 뛰어들었다. 투석기가 개발되기 전인 1960년대 죽음을 기다리던 환자에게 침팬지 신장을 이식해 9개월간 생존한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과학자들은 특히 사람과 생리해부학적으로 비슷한 돼지 장기나 조직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이미 중국에서는 돼지 각막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진행됐다. 한국 역시 내년 초 세계 최초로 돼지 췌도 세포를 당뇨병 환자에게 이식하는 임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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