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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정동칼럼]메두사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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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큰 사회적 파장을 가져온 사건들 중 하나로 서지현 검사의 미투 선언을 돌아본다. 이 사건은 검찰의 성불평등과 폭력적 관행을 폭로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런 문제제기가 얼마나 뿌리 깊은 조직적·대중적 저항에 부딪히는지를 보여주고, 평등한 사회를 향한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의미가 더 크다.

경향신문

그의 고발이 큰 반향과 공감을 불러일으켰지만 서 검사는 최근 인터뷰에서, 검찰 조사단은 공소시효가 지나 사실상 수사를 할 수 없는 추행 사건에 집중했고, 애초의 문제제기 후 자신에게 가해졌던 부당한 인사조치에 대한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상화된 추행도 문제였지만, 서 검사가 말하는 사건의 핵심은 남성 권위와 성폭력적 문화에 반발하는 구성원에 대한 조직적 억압과 응징이다. 그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검찰조직을 흔드는 일종의 ‘꽃뱀’이라는 공격을 수없이 당한 듯하다. 그럼에도 검찰과 법무부의 미온적 대응을 꿋꿋이 비판해 온 그는 최근 안태근과 국가를 상대로 강제추행과 직권남용에 따른 보복인사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배상 요구가 ‘꽃뱀’ 논란을 악화시킬 것을 알지만 피해자들이 적법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한다.

서 검사는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에 ‘꽃뱀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올렸다. 성폭력 사건에 무고 비율이 40%가 넘는다는 가짜뉴스에 직업적 전문성으로 맞선 것이다. 2016년 대검찰청 통계에서 성폭력 사건들 중 24.8%가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됐는데 은밀히 일어나는 사건의 특성상 ‘증거 불충분’으로 인해 혐의 입증이 어렵다는 판결에 이르는 것이며, 고소가 허위로 입증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그는 15년차 검사로서 강변한다.

‘꽃뱀’이라는 오명은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당하는 가장 흔하고 괴로운 2차 피해이다. 피해자 대다수가 꽃뱀 운운하는 댓글, 소문에 시달린다. 꽃뱀 서사는 가해자 및 다수 대중의 남성중심적 시각으로 사건을 왜곡하여 피해 여성을 침묵시키고 그의 자존감을 파괴하는 무기로 보편화되었다. ‘꽃뱀’ 공격으로 가해자는 피해자 서사를 가로채,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우고 피해자를 도리어 징벌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권력자의 과오를 피해자에게 전가하여 권력관계를 철저히 가해자 중심으로 유지하려 하는 이 비겁한 논리는,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가해자가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의 표출이기도 하다.

서구 문화에서도 머리카락이 뱀인 메두사는 여성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을 의미한다. 신화 속 메두사가 언제나 괴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는, 아름다운 메두사를 탐하던 포세이돈이 아테나의 신전에서 메두사를 강간하고, 이에 분노한 아테나가 메두사를 괴물로 만든다. 포세이돈이 아닌 메두사가 징벌의 대상이 된다는 점은 익숙한 서사구조 아닌가? 피해자임에도 벌을 받은 메두사는 바라보는 남자를 돌로 만드는 운명에 처한다. 남성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남성을 무력화하는 괴물이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메두사 신화로 남성의 거세불안을 설명한 사실은 유명하다.

메두사는 아테나의 청동방패를 빌려 저주를 피한 페르세우스에게 참수당한다. 이로써 메두사 신화는 남성의 욕망을 자극하고 권위를 위협하는 여성에 대한 불안을, 또 그런 여성에 대한 남성의 처벌과 응징을 표상하게 되었다. 참정권을 요구하는 여성들이나 양차 대전 후 사회참여를 거세게 요구했던 여성들은 괴물 메두사에 비유되곤 했다. 남성 특권을 위협하는 여성에 대한 적대감을 메두사 이미지로 치환해 온 역사에서 메두사가 성폭력 피해자였다는 사실은 잊혀졌다.

서 검사는 며칠 전에도 ‘꽃뱀이란 무엇인가2-꽃뱀의 늪’이라는 글을 올렸다. “돈 많고 사치하면 돈 좋아하니 꽃뱀/ 돈 없고 초라하면 돈 필요하니 꽃뱀/ 예쁘면 예뻐서 남자들 정신 못차리게 꼬셨으니 꽃뱀/ 안 예쁘면 안 예쁜데 성폭력 당하려고 남자 꼬셨으니 꽃뱀/ 능력과 지위 있으면 그 자리까지 가려고 몸로비했을거니 꽃뱀/ 능력과 지위 없으면 가진 건 몸뿐이라 몸로비했을거니 꽃뱀…” 그는 정말 꽃뱀 소리를 지겹게도 들었나 보다. 하지만 그런 공격은 침묵 대신 그를 시(詩)의 경지로 이끄는 모양이다.

국제투명성기구 한국본부는 12월9일 반부패의날을 맞이하여, 투명사회상 수상자 중 한 명으로 서지현 검사를 선정했다. 오래 지속되어야 할 변화를 그가 재촉했다는 점에 대한 작은 인정이다. 메두사가 흘린 피에서는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가 솟아났고, 메두사는 수많은 시인들과 페미니스트들의 영감으로 다시 태어났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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