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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전문가의 세계 - 이명현의 별별 천문학] (26) 아인슈타인 예측 이후 ‘중력파’ 11개 찾아…별의 진화 연구 큰 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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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드러내는 중력파

경향신문

블랙홀 두 개가 충돌하는 장면 상상도. 미국의 레이저간섭계중력파연구소(LIGO)는 2015년 9월14일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하며 합쳐지는 과정에서 최초의 중력파를 발견했다. 중력파의 발견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과학적 의미가 크다. LIGO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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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물결처럼 출렁거리는 현상

그동안 일반상대성이론 머물러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세상에 내놓은 지 100년이 넘었다. 그 세월 동안 일반상대성이론은 온갖 실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영영 이론으로만 머물 것 같은 예측들도 하나씩 관측을 통해서 그 실체가 밝혀져왔다. 그중 하나가 중력파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질량을 갖고 있는 물체가 있으면 그 주변 공간이 휘어진다. 휘어지는 정도와 형태는 그 물체의 질량과 물질 분포에 따른다. 질량이 큰 물체는 주변 공간을 더 가파르게 휘어놓는다. 곡률이 크다고 표현한다. 물체가 속도가 변하는 가속 운동을 하면 주변 공간도 영향을 받는다. 공간이 그냥 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물체의 상태가 변한 만큼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중력파의 형태로 방출된다. 주변 공간이 마치 물결처럼 출렁한다는 말이다. 물결은 물이라는 매체가 밀려오는 파동에 의해 출렁거리는 현상이다. 중력파는 공간 자체가 출렁거리는 현상이다. 중력파는 어디서든 존재한다. 달리는 자동차도 중력파를 발생시킨다. 그 여파로 주변 공간이 출렁거리고, 그 출렁거림이 물결처럼 온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물체 주변에서 발생한 공간 자체의 출렁거림이 물결처럼 이어져 나가는 현상이 바로 중력파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하는 바였다. 일반상대성이론이 맞는다면 천체로부터 오는 중력파도 반드시 존재해야 할 것이다. 천체로부터 오는 중력파를 측정하려는 시도가 이어졌지만 100년 동안 큰 성과가 없었다.

2015년 LIGO 관측소에서 포착

첫 신호 ‘GW150914’ 이름 붙여

전자기파 의존 간접 관측 벗어나

중력 영역서 블랙홀 관측 길 열려


중력파는 아인슈타인이 그 존재를 예측한 지 100년이 지나서야 처음 관측되었다. 레이저간섭계중력파연구소(LIGO)의 관측소에서 중력파가 포착된 것이었다. 국제적인 중력파 연구자들이 힘을 합쳐서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는데, LIGO도 그 노력의 산물 중 하나다. 마침 LIGO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고 관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관측소 근처를 지나가는 공간의 출렁임을 포착한 것이다. ‘GW150914’로 이름 붙인 최초의 중력파 신호는 LIGO의 미국 핸포드 관측소와 리빙스턴 관측소에서 2015년 9월14일 9시50분45초에 포착되었다. 이들 관측소 사이의 거리 차이에 따른 파형의 변화까지 정확하게 같은 중력파원임을 밝혀주고 있었다. 분석 결과 포착된 신호가 실제 상황임이 확실해졌고, 2016년 2월11일자 ‘Physical Review Letters’라는 과학저널에 그 결과가 발표되었다. 논문의 제목은 ‘Observation of Gravitational Waves from a Binary Black Hole Merger’였다. ‘합쳐지고 있는 두 개의 블랙홀로부터 온 중력파 관측’ 정도의 뜻이다. 중력파를 실제로 관측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아인슈타인이 옳았고 일반상대성이론이 건재함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과학자들은 13억광년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충돌한 두 개의 블랙홀이 만들어낸 중력파가 지구 근처를 지나가다가 포착된 것도 알아냈다. 블랙홀의 질량이 각각 태양 질량의 36배와 29배라는 것도 밝혀냈다. 두 블랙홀이 합쳐진 후에는 회전하는 블랙홀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질량은 태양 질량의 62배인 것으로 계산되었다. 합쳐지기 전과 후의 질량 차이에 해당하는 태양 질량의 3배 정도되는 질량이 중력파로 변환되었다. 그 공간의 출렁임이 지구까지 13억년을 몰려와서 관측된 것이다. 이때 발생한 중력파의 세기는 우주에서 관측 가능한 모든 별들의 빛의 세기보다도 10배나 큰 것으로도 밝혀졌다.

중력파의 발견은 또 다른 의미에서 중요하다. 블랙홀은 빛을 내뿜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를 전자기파, 즉 빛을 관측하는 도구를 사용해서 직접 관측할 수 없다. 블랙홀 주변의 물질이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사건을 관측함으로써 그 존재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블랙홀 주변의 천체의 속도 같은 역학적 물리량을 관측함으로써 그 존재를 파악하기도 한다. 중력파의 발견은 전자기파에 의존한 간접적인 관측이 아니라 중력 영역에서 직접 블랙홀을 관측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블랙홀 주변에 빛을 내는 천체가 없더라도 블랙홀들 사이의 역학적인 움직임 때문에 발생한 중력파를 통해서 직접 블랙홀을 관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기파의 관측 독점 시대에서 새로운 영역인 중력파의 관측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새로운 관측의 창이 열리고 도구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블랙홀 연구 자체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동안 요원했던 블랙홀의 질량 분포라든지 비율 같은 통계 연구가 곧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기초적인 연구는 블랙홀의 생성에 대한 연구를 가속시킬 것이다. 이는 별의 생성과 진화에 관한 연구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블랙홀뿐 아니라 중성자별 같은 콤팩트한 천체들의 연구에도 같은 의미에서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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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루이지애나주 리빙스턴에 설치된 레이저간섭계중력파연구소(LIGO).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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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중력파 신호가 포착된 이후 비슷한 시기에 포착된 두 번째 중력파가 그 존재를 드러냈다. 태양 질량의 14배와 8배인 두개의 블랙홀이 합쳐져서 태양 질량의 21배인 하나의 블랙홀이 되면서 만들어낸 중력파를 관측한 것이었다. 역시 회전하는 블랙홀로 안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중력파가 발견되면서 중력파 천문학의 시대가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LIGO가 첫 관측을 시작하자마자 2015년 9월14일, 10월12일 그리고 12월26일에 중력파를 관측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운도 좋았다. LIGO는 2차 관측을 시작하자마자 2017년 1월4일에도 중력파인 GW170104를 검출했다. LIGO가 미국 중력파 연구자들의 관측 장비라면 Virgo는 유럽의 중력파망원경 시스템이다. Virgo는 중력파 관측 대열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17년 8월14일에 중력파 GW170814를 찾아냈다. 약 18억광년 떨어진 곳에서 블랙홀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중력파였다. 2017년 노벨물리학상의 화살은 중력파를 가리키고 있었다. 물리학자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중력파가 그해 노벨물리학상의 주인공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예상대로 LIGO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만드는 데 기여한 세 명의 물리학자인 킵 손, 라이너 와이스 그리고 배리 배리시에게 그해 노벨물리학상이 돌아갔다.

2017년엔 ‘중성자별 간 충돌’ 후

발생한 중력파 신호 첫 포착도


2017년 8월17일에 발견된 중력파 GW170817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그 전의 중력파 이벤트가 모두 블랙홀들이 합쳐지면서 발생한 것이라면 GW170817은 중성자별 두 개가 합쳐지면서 발생한 중력파이기 때문이다. 중성자별의 충돌에 의한 중력파를 처음으로 포착한 것이었다. LIGO와 Virgo에서 관측된 중력파 GW170817은 중성자별들 사이의 충돌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중력파에서뿐 아니라 전자기파에서도 관측이 가능했다. 페르미우주망원경과 인티그랄우주망원경에 포착된 감마선 폭발 현상인 GRB 170817A는 GW170817과 같은 기원을 갖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뿐 아니라 7개 국가의 70개에 이르는 관측소에서 GW170817을 대상으로 각기 다른 관측을 수행했다. 그야말로 멀티 메신저 천문학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중성자별들이 합쳐지면서 발생한 중력파를 처음 포착한 것도 중요하지만 중력파와 전자기파에서 동시 관측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특히 그동안 이론적으로만 제안되었던 중성자별이 충돌하면서 생기는 킬로노바 현상을 직접 관측했다는 데 또 다른 의의가 있다.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중력파 GW170817의 발견과 이어진 전자기파 영역에서의 관측을 그해 최고의 과학적 업적으로 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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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파를 발견한 LIGO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만든 공로로 2017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MIT의 라이너 바이스 교수(왼쪽)와 칼텍의 킵 손 교수.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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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LIGO와 Virgo 연구팀이 공동으로 두 편의 논문을 온라인에 발표했다. ‘GWTC-1: A Gravitational-Wave Transient Catalog of Compact Binary Mergers Observed by LIGO and Virgo during the First and Second Observing Runs’에서는 LIGO와 Virgo 관측을 통해서 새롭게 발견한 4개의 중력파를 포함해서 현재까지 포착된 11개(블랙홀 충돌 10개와 중성자별 충돌 1개) 중력파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정리해서 보고하고 있다. 또 다른 논문인 ‘Binary Black Hole Population Properties Inferred from the First and Second Observing Runs of Advanced LIGO and Advanced Virgo’에서는 10개의 블랙홀 충돌에 의한 중력파 이벤트를 분석해서 블랙홀 쌍의 분포와 회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새로운 블랙홀 충돌에 의한 중력파가 4개나 더 발견되었다는 것이 중요하지만 함께 기억할 만한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그동안 중력파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LIGO와 Virgo가 동시에 관측을 하면서 중력파의 위치를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중력파 GW170818 같은 경우 지금까지 발견된 중력파 중 가장 정확하게 그 위치를 파악한 경우이다. 여전히 그 분해능은 달의 겉보기 크기의 195배에 달하여 부정확하지만 이 기록은 계속 좋아질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보고된 중력파 GW170729는 지금까지 포착된 것들 중 가장 먼 곳에서 발생한 중력파로 기록되었다. 가장 무거운 블랙홀로도 기록에 올랐다. GW170729는 태양 질량보다 51배 무거운 블랙홀과 34배 무거운 블랙홀이 합쳐지면서 하나의 블랙홀이 만들어지면서 발생한 중력파였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비록 10개의 블랙홀 충돌 이벤트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이들의 질량, 거리, 회전 분포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블랙홀 충돌에 의한 중력파 현상은 계속 발견될 것이다. 관측 자료가 더 축적된다면 더 자세하고 정확한 블랙홀 쌍의 물리량들의 분포가 밝혀질 것이다. 이는 곧 블랙홀의 생성과 진화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고 나아가서 별의 생성과 진화와 운명에 대한 사실을 밝히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될 것이다. 중성자별들이 합쳐지면서 발생한 중력파의 발견도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블랙홀과는 달리 중성자별들의 충돌 과정에서는 여러 파장에서 전자기파가 발생한다. 이를 통해서 중성자별들에 대한 다면적인 정보를 모을 수 있다. 별의 진화에 관한 획기적인 진전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중력파 천문학은 이제 막 그 문을 열었다. 중력파 천문학의 시대가 열리면서 동시에 더 광범위하게 멀티 메신저 천문학의 시대도 활짝 열렸다. 새로운 발견은 이어질 것이고, 그 결과는 우주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의 확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필자 이명현

경향신문

초등학생 때부터 천문 잡지 애독자였고, 고등학교 때 유리알을 갈아서 직접 망원경을 만들었다.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네덜란드 캅테인 천문학연구소 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 등을 지냈다. 외계 지성체를 탐색하는 세티(SETI)연구소 한국 책임자이기도 하다. <이명현의 별 헤는 밤> <스페이스> <빅 히스토리 1>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과학책방 ‘갈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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