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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인터뷰]“1997년 위기 복기하고, 화두 던지는 영화”…<국가부도의 날> 최국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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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를 잘 모르는 젊은 친구들은 영화를 본 뒤 궁금해 검색해보고, IMF를 겪은 분들은 당시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기도 한다. 다양한 반응을 보면 뿌듯하다. 저는 딱히 메시지를 주는 영화라고는 생각 안 하고, 1997년 위기를 다 같이 복기해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화두를 던지는 영화라 생각한다. 영화가 의도한 것과 부합하는 반응이 다양하게 나와서 기분이 좋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연출한 감독 최국희(42)는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국가부도의 날>은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 금융맨 윤정학(유아인), 중소기업 사장 갑수(허진호) 세 사람의 시선으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신청 직전 일주일을 그린 영화다. 지난 9일까지 누적 관객 272만명을 동원하며 개봉한 지 12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도박 볼링을 소재로 한 영화 <스플릿>(2016)으로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은 최 감독은 지난해 초 <국가부도의 날> 시나리오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기존에 없던 소재라 새로웠다”며 “가슴 뜨듯하게 하는 분노도 읽혔다. 덕분에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재미있었다. 약간은 어려운 영화가 될 것 같았지만, 저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는 작가 엄성민의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영상원 시나리오과 전문사 과정 졸업작품이다. 최 감독은 “취재를 굉장히 열심히 한 걸로 알고 있다”며 “영화 속 갑수(허준호)처럼 (엄 작가) 아버지도 고생하신 기억을 갖고 있어 시나리오에 녹였다고 했다. 결정적 계기는 1997년 당시 비공식 대책팀이 있었다는 기사 한 줄이었다. 나머지는 실제가 아니라 상상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최 감독은 이어 “인물과 설정 등 큰 틀은 시나리오대로이고, 대사는 배우들이랑 이야기하면서 조금 바뀐 부분이 있다”며 “다만 초고는 현재에서 1997년을 회상하는 구조였고, 초고보다 재벌 3세의 비중을 조금 늘렸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이 영화가 ‘가상의 이야기’임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한국은행 ‘총재’를 ‘총장’으로, ‘재정경제원’을 ‘재정국’ 등으로 직책·직함을 조금씩 바꿨다. 그는 “협상의 구체적인 과정은 우리가 알 수 없었다”며 “IMF가 협상 과정에서 제시한 조건을 제외하면 등장인물 등 전부 다 가상의 이야기다. 특정 인물을 연상시키고 떠올리게 하는 것이 싫어 그런 장치를 썼다”고 말했다. 다만 외환 위기 상황을 상부에 알리기 위해 만든 한국은행의 보고서는 실제로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최 감독은 “실제 한국은행에 있는 분 말씀으로 ‘상부에 되게 많은 보고서를 올렸다’고 하더라”며 “열람이 불가하다고 해 못했는데, 그 보고서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영화 후반부 대책팀이 IMF팀과 비공식으로 협의하는 장면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 그는 “아무래도 뱅상 카셀 등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비공식 협의 장면은 카셀의 체류 기간이 정해져 있어 주어진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찍어야 했다”고 말했다. IMF 총재를 연기한 카셀은 프랑스 출신으로, <제이슨 본> <블랙 스완> <오션스 트웰브> 등 다양한 할리우드 영화에도 출연한 바 있다. 한국영화에 첫 출연한 카셀은 촬영을 위해 국내에 일주일가량 체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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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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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세 사람 중 시현에 가장 많은 무게를 둔다. 최 감독은 “시현은 당시 있었을법하거나 실제로 있었으면 좋았을 인물”이라며 “시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돼야 관객들이 이야기에 올라탈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정학과 재정국 차관 박대영(조우진)에 대해서는 “정학은 개인의 욕망을 추구하면서 나라 망하는 것을 걱정하기도 하는 참 복잡한 캐릭터로, 대다수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박 차관은 악역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친미 시장주의자로, 그런 신념들이 국민의 안위보다 앞서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영화 마지막 시현의 내레이션은 담담하게 인물을 비추는 영화 전반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받는다. 최 감독은 “엔딩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위기는 반복되지만 사람들이 깨 있는 한 제2, 제3의 한시현이 존재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레이션을 빼서 보기도 했는데, 내레이션이 없으면 밋밋해 보일 수 있었다. 넣는 게 20년 후를 보여주는 의미를 확실히 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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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IMF 구제 금융 신청이 발표될 때 최 감독은 군에 복역 중이었다. 그는 “1998년 4월에 제대했다. 사실 군대 내에서는 체감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제대하고 사회에 와보니 많이 바뀌어 있었다. 학교·집안·친구들 분위기도 뉴스 분위기도 많이 달라져 있더라. 군대에 있다 나와서 그 차이를 더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1995년 한국외대 아랍어과에 입학한 최 감독은 교양 수업 중 영상 매체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군대 가기 전 한 학기를 다녔다. 수업은 거의 안 들었다.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수업이 있었다. 하다 보니 재밌더라. 매체가 주는 힘이 위대하다고 느꼈다. 사실 공부하기 싫어서 시작한 건데, 영상 매체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군에서 영화를 하기로 결심한 그는 영어를 공부했고, 전역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위스콘신주립대에서 영화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극장전> 등 연출부 생활을 했다. 그러다 한예종 영상원(전문사)에 들어갔고, <스플릿>으로 장편 데뷔했다. <스플릿>은 지난해 우디네 극동영화제에서 관객상,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판타지아 영화제 베스트 데뷔상을 받았다.

그는 느와르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최 감독은 “저는 느와르라는 장르를 넓은 범위로 본다”며 “느와르의 본질은 선택지 없는 상황이 주어졌을 때 인물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꼭 총이나 폭력·조폭(조직폭력배)이 안 나와도, 막힌 골목에서 압박하는 영화는 일종의 느와르라고 본다. 이런 면에서 <스플릿>도 느와르, <국가부도의 날>도 느와르로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최 감독에게 지금 한국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저는 이 영화 시나리오를 받기 전까지 경제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던 사람이었다. 이 영화가 하고 싶어 경제를 벼락치기로 공부했다. 전문가들도 예상을 잘 못하는 것을 제가 어떻게 하겠나. 그래도 이제는 예전처럼 경제뉴스를 등한시하지 않고, 열심히 읽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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