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시공, 허위 신고 했는데도 서울시는 허가 내줘
서울 시내 30년 이상된 노후건물만 25만동 넘어
대부분 민간 소유라 안전진단 사각지대서 방치돼
"노후 건물 내부 들여다보는 작업 서둘러야"
13일 서울 강남구에 따르면 시공사인 남광토건이 1991년 준공 검사를 받을 때 제출한 도면에는 지하 7층부터 지상 1층까지 원형 기둥을, 그 위층에는 사각 기둥을 세운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이번에 균열이 발견된 지상 2층 기둥도 원형인 것으로 드러났다. 준공 때 제출한 도면과 실제가 달랐다. 뿐만 아니라 89년 7월 건축 허가를 받을 때 제출한 설계 도면과 준공 도면도 다르다. 건축 허가를 받을 때는 건물 전층(15층)에 사각 기둥을 넣겠다고 했지만 사각 기둥을 대폭 줄여 준공 허가를 받았다. 건축 도중 설계 변경을 했다는 뜻이다.
균열이 발견된 서울 강남구 대종빌딩의 2층 원형 기둥. [사진 강남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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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강남구 관계자는 "3층 이상은 도면대로 사각기둥이 설치됐다"고 말했다. 지하 7층~지상 2층은 설계 도면과 준공 도면이 다르고, 지상 2층은 준공 도면과 실제 시공이 다르다는 뜻이다. 두 가지가 겹친 2층의 원형 기둥에서 균열이 발생했다. 이 건물 준공검사는 서울시 주택국에서 맡았다. 당시엔 '11층 이상, 연면적 3000평 이상' 건물의 준공 검사 권한은 서울시에 있었다. 지금은 51층 이상만 서울시가 한다.
도면과 시공이 다른 것과 관련, 서울시 한일기 건축관리팀장은 "어떤 과정을 거쳐 허가가 났는지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남광토건 황대순 경영기획팀 부장은 "30년 가까이 지난 건물이라 당시 사정을 아는 직원이 없다. 당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퇴사 직원들을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13일 오전 강남구 관계자가 대종빌딩에 시설물 사용금지 알림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박태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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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한복판 건물이 붕괴 위험 진단을 받으면서 다른 건물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13일 대종빌딩 인근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인 김소연(22·여) 씨는 "매일 오가면서 보는 멀쩡한 건물이 속으로는 무너질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상태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대종빌딩보다 낡은 건물이 많아 두려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의 건축물 4채 가운데 한 채는 40년 이상 지난 노후 건축물인 것으로 조사됐다(2015년 기준). 전체 건축물(63만9412동) 가운데 16만 동(25%)이 40년 넘었고, 30년 이상은 25만3705동(39.7%)에 달한다. 대부분이 민간 소유여서 안전관리를 제대로 받지 않는다. 민간 건물은 건물주에게 안전 관리 책임이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공시설물은 지자체가 안전 관리를 해서 덜 위험하지만 민간 노후 건축물은 관리에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털어놨다.
서울 강남구 대종빌딩에 붙은 시설물 사용 금지 안내문. [박태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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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건물 중 15층 이하가 특히 위험하다. 16층 이상 또는 연면적 3만㎡ 이상 건축물은 제1종이나 제2종 시설물로 분류돼 정기 안전점검과 정밀 진단을 받지만 15층 이하는 그렇지 않다. 소유주가 안전 점검을 하는데, 다분히 형식적이다. 대종빌딩은 올해 2월 자체적으로 육안 점검을 해서 그 결과를 구청에 제출했고, 3월 구청이 육안 점검했지만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
함 교수는 "80~90년대 준공된 대표적인 건물이 삼풍백화점"이라며 "당시엔 불법 증축, 부실 시공이 만연했다. 이 건물을 전수 조사해 보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희·박형수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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