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소주로드
제주 지역 대표 소주인 ‘한라산’ 공장을 직접 둘러보고 소주 시음까지 할 수 있는 ‘소주 투어’가 제주 여행의 새로운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북쪽으로는 한라산, 서쪽으로는 비양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옥상 정원에서 투어 참가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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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배~!" 잔 부딪칠 일 많아지는 연말연시. 송년회, 신년회 자리마다 빠지지 않는 주(酒)인공이 있다. 한국인의 국민 술 소주다. 초록색 병에 담긴 무색 무취의 술이지만 입맛 따라 취향 따라 즐기는 소주는 제각각. 알코올 도수만큼 각 지역 소주가 입맛과 취향을 가르기도 한다. 대체 뭐가 다르길래. 그래서 떠났다. '소주로드'. 전국의 소주를 직접 만나러 가는 길, 업그레이드 '전국 소주 지도'도 챙겼다.
'혼자옵서예' 제주 소주 투어
언제 가도 설레는 여행지 중 하나가 제주도다. 아름다운 풍경만큼 제주의 먹거리도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흑돼지구이와 신선한 고등어회, 제철 맞은 대방어…. 여기에 '한라산' 소주를 빼놓기 아쉽다. 한라산은 제주를 대표하는 지역 소주. 제주 사람들은 이때 꼭 '하얀 것, 노지 것'으로 먹으라고 귀띔한다. 투명한 병에 담긴 알코올 도수 21도짜리 '한라산 오리지널'은 상온에 두고 먹어야 그 진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란다. 제주도 음식과 궁합 좋은 한라산 소주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한라산은 지난달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에 새 공장을 짓고 공장 투어를 시작했다. 제주 서부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한라산 소주 투어는 요즘 인기 코스다. 매주 금~일요일 하루 4회(오후 1시·2시·3시·4시) 진행하며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내년 1월까지 무료. 공장에선 바다 건너 비양도가, 반대편으로는 한라산이 보인다. 제주도만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서 있는 현대식 공장 앞에 1985년에 지었다는 옛 공장의 벽면 하나가 그대로 남아 있다. 1950년 설립돼 4대에 걸쳐 70년 가까이 이었다는 역사가 눈앞에 스쳐간다.
투어는 공장 2층에서 시작된다. 제주도의 하늘과 바다를 모티브 삼아 파란색으로 꾸며진 공간이 눈에 띈다. 이날 투어 참가자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 가이드가 안내하는 대로 한라산 소주의 과거부터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관과 소주 제조 과정을 인터랙티브 요소로 꾸민 공간, 예술적으로 꾸민 물 전시관 등을 둘러보게 된다. 작업 중인 공장 내부도 직접 볼 수 있다. 자동화된 시설에서 소주를 병에 넣는 과정과 외부에서 수거한 공병이 세척되는 과정 등을 지켜보았다.
투어가 끝나면 카페처럼 꾸며진 3층 시음장에서 간단한 안주거리와 함께 한라산 소주를 시음하게 된다. 참가자들은 한라산 소주로 칵테일도 직접 제조할 수 있는데 저마다 색색의 소주 칵테일을 만들고 인증샷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서울 방배동에서 왔다는 명해슬(24)씨는 "소주 공장이라서 '아재' 같은 느낌일 줄 알았는데 감각적으로 꾸며놓아 젊은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많았고 소주도 와인처럼 고급스럽게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라산 이현아 마케팅팀장은 "제주도에서도 한라산 소주는 '올드하다'는 인식이 강해 신공장을 지을 때부터 투어 코스를 만들고 젊은 감각과 제주도만의 감성을 강조하기 위해 디자인에 공을 들였다"고 했다.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5층 옥상 정원이다. 바다를 마주한 공장 옥상의 탁 트인 전망 속에 비양도와 한림항, 협재 일대가 다 들어 있다. 한라산 소주와 공장, 제주 이미지를 활용해 만든 디자인 상품들을 만날 수 있는 3층 기프트숍도 놓치면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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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함께 떠나는 세계 여행
경상남도를 대표하는 소주는 '좋은데이'다. 2006년 무학이 내놓은 좋은데이의 알코올 도수는 16.9도. 같은 해 참이슬 프레시가 19.8도로 20도 벽을 깼지만 훨씬 더 파격적인 저도주의 등장이었다. 부드러운 소주로 각광받은 좋은데이는 경남을 넘어 부산과 수도권 진출에도 성공했다. 좋은데이를 만드는 과정도 직접 볼 수 있다. 무학 본사와 창원1공장이 있는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 굿데이뮤지엄을 방문하면 된다. 매주 월~금요일 하루 3회(오전 10시, 오후 2·4시) 해설사와 함께하는 견학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한다.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 30분까지 자유 관람도 가능하다.
견학 프로그램은 생산동과 굿데이뮤지엄을 둘러보는 코스로 이뤄져 있다. 창원1공장에선 좋은데이와 화이트 소주를 생산하는데 하루 40만~50만병이 출하된다. 관람로를 따라 자동화 시설에서 소주를 병에 넣고 포장·검수하는 과정과 공병 세척 과정 등을 볼 수 있었다. 굿데이뮤지엄은 아시아·유럽·아프리카·오세아니아·아메리카까지 120여 나라 주류 3500여 점이 전시된 1734㎡ 규모의 세계 주류 박물관으로 2015년 문 열었다. 부산에서 온 김지현(47)씨는 "아시아에서 시작해 남아메리카까지 대륙별, 나라별로 술과 함께 세계 여행을 하는 기분"이라며 "소주뿐 아니라 맥주, 와인, 위스키, 코냑 등 다양한 술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어 유익했다"고 했다. 알코올 도수가 90%나 되는 폴란드의 스피리더스, 프랑스의 10대 코냑, 코끼리가 먹고 취했다는 마룰라로 만든 아마룰라 등 진귀한 술도 눈길을 끈다.
세계 여행이 끝나면 우리나라 소주의 역사와 1970년대 마산 풍경을 느낄 수 있는 재현 전시관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옛 무학 양조장과 대포집, 점방 등을 당시 소품을 활용해 실감나게 꾸몄는데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가장 즐거워하는 공간이다. 견학이 끝나면 갓 튀겨낸 팝콘과 함께 과일 탄산주인 톡소다(5%)도 즐길 수 있다. 무학 홍보팀 조세봉 대리는 "창원이 매력적 관광지는 아니지만 소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일부러 멀리서도 찾아온다"며 "소주를 즐기는 젊은 층이 많아지면서 20~30대 방문객도 늘고 있다"고 했다.
부산의 대선주조 기장 공장과 롯데주류 강릉 공장, 대전 맥키스컴퍼니, 제주 제주소주에서도 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제주소주는 6월부터 11월까지 공장 옆 공터에 코스모스 밭이 펼쳐져 때를 맞추면 좋다. 견학은 각 사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무료.
카페처럼 꾸민 제주 ‘한라산소주’의 시음장. 소주도 시음하고 직접 칵테일을 만들어볼 수 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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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세계 주류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창원 ‘무학’ 굿데이뮤지엄./강정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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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밤’ 소주와 제주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이닝 포차 ‘푸른밤살롱’/신세계푸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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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한잔에 여행 감성까지
소주 투어를 위해 꼭 멀리 떠날 필요는 없다. 서울 도심에서도 제주 소주와 함께 제주 여행을 떠난 듯 낭만을 느낄 수 있다. 지난달 서울 논현동 일렉트로마트 5층에 문을 연 다이닝 포차 푸른밤살롱이 대안이다. 제주의 '푸른밤' 소주와 제주 하면 떠오르는 신선한 회, 흑돼지를 활용한 요리, '한라산 백록담 케이크' 등을 선보인다. 푸른밤은 지난해 이마트가 제주소주를 인수해 출시한 소주로 짧은밤(16.9%)과 긴밤(20.1%) 2종이 있다. 푸른밤이라는 소주 이름처럼 은은한 푸른빛의 조명과 시간마다 색이 변하는 천장등으로 실내 분위기를 낭만적으로 연출했다. 매장과 연결된 옥상 정원엔 제주 밤하늘과 별을 형상화한 조명, 대형 초승달을 설치해 포토존으로도 인기다.
전국의 소주를 한자리에 모은 소주 전문점도 있다. 서울 이태원동의 소주랩은 전국 11개 업체의 희석식 소주를 모두 만나볼 수 있는 곳. 증류식 소주와 전통주도 갖췄다. 박종호(34) 공동대표는 "소주는 종류가 다양해도 한자리에서 모두 맛보기가 쉽지 않다"며 "소주를 먹기 위해 현지까지 가는 불편함을 덜고 소주가 주인공인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했다. 와인 전문점처럼 소주를 전시하는 공간도 만들었다. 빼곡히 전시된 소주를 직접 보며 고르는 손님들의 재미도 쏠쏠하다. 대구가 고향인 직장인 신현욱(31)씨는 "고향이 다른 친구들끼리 자기 지역 소주를 함께 시음하며 '소주(자)부심'을 과시하기도 하고 오묘하게 다른 소주 맛을 비교하다 보면, 전국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며 웃었다.
[제주·창원=강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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