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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제천 화재참사 1년] ① 작년 겨울 잊지 못하는 유족·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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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 구조 의인 이양섭씨 "불길·연기 보고 심장 멎을 것만 같았다"

일부 유족들 정신적 충격으로 고향 떠나고 불면증·불안감 호소

[※ 편집자 주 = 지난해 말 충북 제천시에서 일어난 화재 참사가 오는 21일로 1년을 맞습니다. 당시 화마로 29명이 숨지고 40명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족들과 끔찍한 사고를 체험한 제천시민들은 지금도 각종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참사로 재난 대응 시스템의 문제점, 소방·안전 취약 요인 등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행정·소방 당국의 대처는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은 채 진행형입니다. 연합뉴스는 유족과 시민들의 고통, 소방당국 책임론, 안전의식의 현주소 등을 조명한 특집 기사 [제천 화재참사 1년] 3건을 송고합니다.]

(제천=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제천 화재 참사를 겪은 유족과 시민들은 지금도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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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화재 참사…남은 사람은 그리움·미안함만 가득
[연합뉴스 자료 사진]



참혹한 화재 현장에서 "살려달라"고 절규하던 희생자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는 데다 소중한 가족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일부 유족은 일상생활로 복귀하지 못할 정도로 큰 상처를 받았고 그들은 삶을 송두리째 잃었다.

화마가 번지는 위험 속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고 구출에 나서 최근 정부로부터 상을 받은 이양섭(53)씨는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던 당시 상황을 힘겹게 떠올렸다.

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9층짜리 스포츠센터 건물은 이미 화마에 휩싸여 있었다.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매캐한 검은 연기와 시뻘건 불길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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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화재 참사 의인 이양섭씨
(제천=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최근 정부로부터 의인으로 선정돼 포상을 받은 이양섭씨가 제천 화재 참사가 발생한 스포츠센터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2018.12.16



'사람이 안에 있어요. 살려주세요' 구조를 요청하는 다급한 목소리가 쉴 새 없이 그의 귀를 때렸다.

이씨는 제천에서 사다리차 업체를 15년째 운영하고 있다. 당시 사다리차를 사무실에 두고 나온 그는 다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만큼 불길이 빠르게 번지면서 건물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상황임을 직감한 그는 다른 작업 현장에서 복귀 중이던 아들을 불렀다.

이씨는 "아들이 도착하자마자 5t짜리 사다리차를 이용해 9층 난간에서 살려달라는 3명을 구조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내가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불이 난 스포츠센터를 지날 때면 괴롭고 기억하기도 싫다"며 몸서리쳤다.

이씨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한을환(63)씨는 지금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당시 헬스장에서 운동한 뒤 4층 사우나에 있다가 불이 난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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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혀버린 비상구 손길 흔적
[연합뉴스 자료 사진]



옷을 벗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불이 났다는 소리가 들려 불을 피하기 위해 곧바로 9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한씨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참사 당일 아비규환의 모습을 잊지 못해) 올여름까지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참사 이후 부상자 대표로 활동한 그는 "다친 사람 가운데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거나 목욕탕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김영조(42) 씨는 이날 참사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다애(당시 18)양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그는 "헬스장에 다녀오겠다"는 딸의 말이 마지막 작별인사가 될 줄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김씨는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건 딸이 '아빠 불났어. 헬스장에 불이 났어'라고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앞이 안 보인다', '문도 안 열린다'고 비명을 질렀다"며 당시 악몽을 힘겹게 떠올렸다.

그러면서 "평생 제천에서 살았지만, 이제는 이곳이 싫어 모든 걸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참사 이전 하소동 일대는 제천의 대표적 번화가 중 한 곳이었다.

대형마트 2곳을 비롯해 술집과 노래방, 식당, 유흥업소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참사 이후 경기는 꽁꽁 얼어붙었다. 지금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상인들의 이야기다.

하소동에서 음식점을 하는 한 상인은 "아직도 무거운 분위기가 거리 곳곳에 깔려있다"며 "과거 활기찼던 거리 분위기가 푹 가라앉았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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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화재 참사 추모비
[연합뉴스 자료 사진]



또 다른 음식점 주인은 "장사가 안돼 오랜 기간 비어있는 점포도 있다"고 걱정했다.

화재 참사 소식에 시민들도 크나큰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제천시 보건소는 참사 이후 지금까지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73명을 대상으로 684차례의 심리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 건수도 1천500여건에 이른다.

상담을 진행한 인득상 정신과 전문의는 "일부 유가족이나 생존자들은 치료 과정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등 화재에 따른 정신적 고통이 심각했다"며 "지금은 호전됐지만, 불안감을 호소하는 생존자들에 대한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시는 참사 1년을 맞아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자 오는 21일 희생자 추모비가 있는 하소동 생활체육 공원 내에서 유족 등 1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을 연다.

vodcas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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