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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학교도서관이 ‘북 카페’로 변신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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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교육] 왕용샘의 학교 도서관에서 생긴 일

요즘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과 진행하는 수업이 있습니다. ‘북 카페’ 수업입니다. 수업 모습을 지켜보면 ‘이게 수업인가’ 할 정도로 규칙이 없어 보입니다. 도서관에 누워 책 보는 친구, 서가에 기대어 읽는 친구, 책상에 앉아 보는 친구 등 독서하는 각자의 모습이 모두 다릅니다. 아이들 손에는 책과 과자, 음료도 들려 있습니다. 수업을 참관하는 다른 선생님이나 장학사가 있다면 저를 ‘심각한 눈’으로 쳐다볼 수도 있겠습니다.

북 카페 수업은 올해 2학기부터 시작했습니다. 수행평가, 교과 공부에 시간이 없다며 책을 못 읽는다는 학생들의 말에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함께하는 수업시간만큼은 모두가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책을 읽으세요’ ‘독서를 하면 모든 것이 좋습니다’ 보다는 학생들이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북 카페 수업은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정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맡기면 잘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내 걱정은 고이 접어 버렸습니다. 학생들은 30명이었고, 이들이 모인다면 저보다 더 나은 판단과 선택을 하리라 믿은 것이지요.

학기 초 북 카페 수업의 취지를 설명하고, 어떤 음료와 과자를 들여올지도 의견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음료와 과자는 공모사업을 통해 지원받았습니다.) 도서관에서 어떻게 하면 음료와 과자를 제공받아 책을 읽을 수 있을지, 많은 친구들이 좁은 학교도서관에 모여 책 읽을 때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규칙도 함께 정했습니다. 규칙은 모둠별로 떠오르는 내용을 정리해 발표하고, 모든 규칙을 칠판에 적고 전체 토론을 했습니다.

규칙을 정하는 중에 한 친구가 손을 들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독후감 써야 해요?” 저는 답변 대신 다니엘 페나크의 ‘독서 10계명’을 보여줬고, 각자 마음에 드는 규칙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규칙을 찾아 발표를 하고, 제가 말을 이었습니다. “의무적인 독후 활동 숙제는 없습니다. 이 수업의 취지는 평생 한 권도 책을 읽어보지 못한 친구, 시간이 없어 책을 읽지 못하는 친구 등을 위해 일주일에 한 시간씩 책 읽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지금은 ‘책 읽을 환경’을 여러분이 스스로 정하고,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학생들은 신이 나서 규칙을 정했고, 발표를 했습니다. ‘가끔 너무 피곤하면 자도 된다’는 규칙을 발표한 모둠도 있었지요. 그럴 때마다 토론 과정에서 ‘수업시간에 자는 것은 곤란하다’는 반대파도 있었습니다. 결국 ‘수업 시작 30분 뒤부터 피곤하면 졸아도 된다’는 ‘디테일한 규칙’으로 합의를 했습니다.

학생들과 세 번째 시간부터 학교도서관에서 수업을 했습니다. 책을 빌려 읽으면 음료와 과자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했지요. 사서교사 혼자 하려니 힘들었습니다. 학생들이 수업을 돕는 역할을 자처했고, 자발적으로 또는 반별로 2명∼6명까지 지원을 했습니다. 반별로 북 카페 규칙도 다르고 자원활동을 하는 학생 수도 다릅니다. 도움 주는 학생들에게 ‘봉사시간 인정이 안 된다’고 말했으나, 스스로 하고 싶다고 말을 하는 친구들이었습니다.

북 카페 수업은 이렇게 진행합니다. 수업 종이 울리면 각자 10분 정도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고릅니다. 모두가 책을 빌리면 저의 지난주 독서경험을 공유하기도 하고, 이 수업의 취지에 대해 짤막하게 매주 이야기합니다. 실제 학생들은 제가 소개한 책을 사서 읽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책을 읽게 됐다며 감사 인사를 받기도 합니다. 반대로 수업 30분이 지나면 조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새벽 2시까지 진행한 수행평가, 교과 공부 등으로 피곤해 보이기도 합니다. 반별로 규칙이 다르지만 ‘졸 수 있다’는 내용이 거의 다 포함돼 있어서 제가 깨울 수가 없습니다. 조는 친구들이 생기면 다음 시간에 북 카페 수업 취지에 대해서 ‘진하게’ 다시 설명하고 가벼운 음악도 틀어줍니다.

수업이 끝나면 쓰레기를 자발적으로 치우는 규칙이 있어 늘 깨끗합니다. 그럼에도 학교도서관에 과자 부스러기들은 어쩔 수 없이 생기게 되더군요. 수업이 끝날 때마다 구석구석을 쓸어봅니다. 수업 취지와 방법을 학생들이 만들어냈지만, 반복되는 상황이 오면 가끔 힘들어질 때도 있습니다. 학생들을 ‘불신’하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되는 것이지요. 이럴 때면 과자 부스러기와 함께 불신도 쓸어봅니다. 늘 믿어야겠지요?

황왕용 광양백운고등학교 사서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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