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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초중고 실명공개' 후폭풍…학생·학부모 "학교 비리, 빙산의 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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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세종=문영재 기자] ["드러나지 않은 사례 더 많을 것" 불신 팽배…"정부 대책 실효성 미지수"]

머니투데이

전국의 초·중·고교 감사결과가 실명으로 처음 공개된 이후 학생과 학부모, 시민단체 등은 "빙산의 일각이 드러난 것일 뿐"이라며 내신에 대한 불신을 숨기지 않았다. 입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시험지 유출이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부적정 기재가 다수 확인됐기 때문이다.

18일 교육부에 따르면 17개 시도교육청이 2015~2018년 진행한 감사 내용을 종합·분석한 결과 전국 감사대상 학교 1만392곳 가운데 비위 3만1216건이 적발됐다. 2015년 이후 시험지 유출이 적발된 고교는 숙명여고를 포함해 모두 13곳으로 드러났다.

◇'빙산의 일각'=올해는 서울 숙명여고와 대광고, 부산 과학고, 광주 대동고, 전남 문태고·한영고 등에서 시험지 유출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 공개된 13건의 시험지 유출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학생과 교사, 배움터 지킴이, 행정직원 등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 시험 문제를 훔쳐보거나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등 방법도 다양했다.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부적정 기재로 적발된 중·고교도 15곳으로 파악됐다. 2015년에는 경기 분당 대진고에서 교무부장이 딸의 학생부를 조작했다가 파면된 사례도 있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이번 감사결과 실명 공개에 대해 '빙산의 일각'이라며 실제 드러나지 않은 사례는 더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소재 한 중학교 학생은 "학교에 제 때 등교하지 않고 잠깐 왔다가 가는 친구도 선생님은 출석한 것으로 인정한다"며 "아마 다른 학교에서도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2 학생 자녀를 둔 정모(48)씨는 "초중고 비리가 사립 비리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며 "공정과 정직을 가르쳐야 할 학교에서 크고 작은 부정들이 일상화된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상황이 심각한 수준인데도 지금까지 일을 키운 교육당국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학부모 오모(51)씨는 "초·중·고교의 비리가 이 정도 일줄은 몰랐다"며 "그동안 쉬쉬하며 사태를 방치한 교육부와 시도교육청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비판했다.

◇"정부 대책 실효성 미지수"=교육계에서는 정부가 종합세트처럼 학교 비리를 막을 대책을 내놨지만 근본적인 비리 척결과는 거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교육계 관계자는 "(이번 대책은) 시험문제 유출이나 학생부 부적정 기재 등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며 "예컨대 정부는 '상피제'를 도입하면 모든게 해결될 것처럼 얘기하는데 친인척이나 지인 자녀를 봐 줄 경우 어찌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대전의 학부모 백모(38)씨는 "현직 교사가 진학 지도와 입시를 도와주는 이른바 '연구회'라는 이름의 활동을 하기도 한다"며 "교사 학생 학무모의 네트워크가 지역사회에서 상당히 돈독한데 상피제로 해결될 지는 미지수"라고 설명했다. 폐쇄회로(CC) TV설치도 교사와 학생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생활하는만큼 보안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임성호 종로하늘교육 대표도 "이번 대책도 결국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원점으로 회귀(비리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대입체계 한계 시그널…입시 틀 새롭게 바꿔야"=이종배 공정사회국민모임 대표는 "정시 수능은 출제자를 격리까지 하는데 수시 비중이 80%에 달하는 학교 내신은 출제자(교사)들의 외부 접촉을 제대로 차단하지 못하면서 비리가 발생한다"며 "취지는 퇴색했고 부작용만 남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고려해서라도 수시 비중을 대폭 낮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서는 시도교육청에서 특별감사를 늘린다고 밝혔지만 기본적으로 선출직인 교육감들이 표를 의식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조성철 한국교총은 대변인은 "시험지 유출 등 학생평가와 관련한 성적비리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교육악이라는 점에서 교육자로서의 책임감과 교직윤리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사 스스로 자정활동을 벌이고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공감을 얻어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입시 압박 때문에 시험지를 훔치고 부정을 저지르는 것은 현행 대입 체계가 한계에 다달았다는 시그널이라며 대입의 틀 자체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감사결과에 대한 실명 공개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경기 소재 한 고교 교사는 "사소한 잘못을 갖고 학교와 교사가 공격받을 빌미를 제공했다"며 "단순히 건수만 보고 대부분의 학교, 교사에게 심각한 비리가 만연한 것처럼 확대해석을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세종=문영재 기자 jw0404s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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