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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더럽고 냄새나는 화장실, 저리 비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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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교육] 학교화장실 개선 현장을 가다

‘학교 화장실은 냄새나고 더러운 곳’

익숙한 고정관념 깨며 리모델링해

학교 울타리 안에 있는 ‘화장실’도

교육·문화 공간의 일부라는 인식 높아져

맞춤형 세면대, 밝은 콘셉트 디자인까지

양치율 올라가고 학교폭력은 줄어들어



한겨레

아이들에게 학교 화장실 청소는 ‘나머지 공부’급으로 꺼려지는 활동이다. 특히 공립 초등학교에는 낙후한 화장실이 많아, 겨울만 되면 수도가 얼고 이곳저곳 고장 나는 등 화장실은 교사들에게도 환영받는 공간이 아니다.

음침하고 냄새나는 오래된 화장실은 ‘불량’ 학생들의 모임 공간이면서도, 자연스레 학교폭력이 떠오르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런 학교 화장실들이 최근 ‘완소’(완전 소중)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올해부터 2021년까지 4년 동안 지저분하고 불편했던 초·중·고 학교 화장실을 완전히 없앤다.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가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한 ‘학교 화장실 개선 사업’ 1단계가 교육 현장에서 호평받으며 올해부터 본격적인 2단계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시와 시교육청은 1692억원의 예산을 마련해 668개교 화장실을 4년에 걸쳐 추가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꾸미고 꿈꾸는 학교화장실, 함께 꿈’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학교 속 ‘열외 공간’으로 여겨지던 화장실의 ‘파격적인 변신’은 학생들의 정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서울송중초등학교, 서울성수초등학교, 서울녹번초등학교를 비롯해 서울명일중학교 등 다양한 학교들이 ‘화장실 개선사업 매직’을 맛봤다. 학교 울타리 안에 있는 공간 가운데 가장 ‘학교 같지 않은 공간’이었던 화장실, 어떻게 변화한 걸까? 그리고 화장실 변화가 교육 환경에 어떤 긍정적인 의미를 가져온 걸까?

한겨레

세면대부터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야죠

학교 화장실을 마냥 예쁘게만 만드는 게 아니라, 아이들 의견을 듣고 반영하며 디자인을 정하니 교실 못지않은 문화공간이 됐다. 서울마포초등학교는 아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화장실 공간을 바꾸기 위해 ‘화장실 태스크포스(TF)’ 전담팀까지 만들었다. 학부모, 학생, 교사, 디자이너가 모여 변기와 세면대 등 시설을 ‘아이들 맞춤형’으로 바꾸고, 학령별 취향에 맞게 색깔을 결정했다.

무엇보다 세면대 높이를 조절해 아이들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찬희(마포초 5학년)군은 “내가 1~2학년이었을 때 세면대가 너무 높아 옷이 잘 젖었다. 그런데 지금은 학년에 따라 높이가 적절해서 손 씻기에도 편하고 습관도 잘 들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서울송중초등학교와 서울성수초등학교, 서울녹번초등학교 역시 ‘햇살’ 콘셉트 아래 화장실 공간을 밝게 개선했다. 어둡고 추웠던 학교 화장실이 불편해, 학교 안에서 ‘볼일’ 보기가 힘들어 내내 참다가 변비에 걸리던 아이들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해당 사업을 담당하는 권범기 주무관은 “부모세대가 떠올리는 학교는 ‘공부하는 교실’ 그 자체이지만, 아이들에게 학교는 ‘공부뿐 아니라 청결·위생 등 교양과 문화를 배우고 익히는 공간’”이라며, “학교 화장실이 ‘더러움, 냄새’ 등 오래된 고정관념을 깨고 공중위생과 도덕을 접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학생 5~6명이 한 번에 이를 닦을 수 있도록 긴 세면대를 설치하면서 전국에서 가장 낮던 서울 학생들의 양치율이 두 배 뛰었다. 아이들에게 익숙한 양변기 비율을 높이는 한편, 양치대를 증설해 학교 위생과 아이들 건강까지 챙기게 된 것이다. 서울시 평생교육국은 “지저분하고 불편한 초·중·고교 화장실을 완전히 퇴출할 예정”이라며 “학교 화장실 개선 2단계 사업을 시작하면서 15년 이상 된 노후 화장실을 집중적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전했다. 권 주무관은 “서울시 1300여 개 초·중·고교의 절반에 달하는 668개교 화장실을 2021년까지 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개선할 예정”이라며 “화장실 개선 외에 학생들의 양치율 및 손 씻기 비율을 높여나갈 예정이다. 오는 2021년까지 매년 100개교에 양치대를 추가 설치하고, 현재 67.6%인 양치율을 70%까지 높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학교서 ‘볼일’ 보는 게 즐거워졌어요

“초등학교 때도 그렇고 ‘학교 화장실’은 맨날 찬물만 나오고 냄새가 심했어요. 어두컴컴하고 무서워서 혼자서 가기 꺼려질 때도 많았고요.”

이슬아(명일중 3학년)양은 학교 화장실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털어놨다. 4개 반 100여명이 넘는 학생들이 이용하는 4층 ‘구석진’ 화장실에는 양변기가 1개뿐이었고, 화장지도 자주 떨어졌다. 변기 1개당 적정 학생 수는 11명인데, 일부 학교는 변기 한 개를 40~50명 가까이가 이용할 정도로 시설이 열악한 상황이었다.

짧은 쉬는 시간을 이용해 다른 층 화장실에라도 가보면, 이양과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로 화장실은 늘 붐볐다. 수업 시간이 즐겁고 공부가 재미있어도, 화장실만 생각하면 불편함, 불만족스러움이 떠올랐다. 그런데 최근에는 ‘공포의 화장실’이 ‘아늑한 공간’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서울명일중은 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가 진행한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에서 학교 부문 최고상을 받기도 했다. 학교 화장실 개선 사업을 통해 이뤄낸 성과다.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던 공간에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파우더룸, 탈의실까지 생기는 등 아이들의 ‘취향 저격’ 공간이 된 것이다. 특히 탈의실과 대변기 출입문을 헷갈리지 않도록 상징 그림을 문에 그려넣어 아이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천장에는 루바(원목소재로 제작한 친환경 마감재)를 설치해 안심할 수 있는 탈의실 환경을 만들었다. 이양은 “‘학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교실뿐이었다. 그런데 화장실 환경이 ‘쉼과 여유의 공간’으로 바뀌고 난 뒤에는 수업시간뿐 아니라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도 문화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장소가 됐다”고 전했다. “공간이 주는 마음의 여유를 알게 됐어요. 화장실이 악취 나는 ‘기피장소’가 아닌, 한숨 돌릴 수 있는 쾌적한 문화공간이 된 거죠.”

김지윤 <함께하는 교육> 기자 kimjy1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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