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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이제, 어머니와 제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게 돼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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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건의 엄지장갑’ 펴낸 ‘느낌표 소년’ 원종건씨

온정 덕에 어머니 시력 회복…‘벙어리 대신 엄지장갑 캠페인’도

공익사업팀 ‘설리번’ 만들어 활동…‘수화통역사 예약앱’ 개발 중

경향신문

지난 13일 벙어리장갑 대신 엄지장갑이라는 말을 쓰자는 ‘엄지장갑 프로젝트’를 제안한 원종건씨(오른쪽)와 청각도우미견 ‘축복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박진숙씨가 엄지장갑을 낀 채 환하게 웃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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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카페에서 원종건씨(25)와 어머니 박진숙씨(56)를 만났다. 모자의 사연은 2005년 MBC <느낌표>에 소개돼 많은 이들을 울렸다. 심장병을 갖고 태어난 원씨의 여동생은 태어나자마자 스웨덴으로 입양됐다. 이듬해에는 아버지가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시청각장애인인 어머니 박씨는 노숙생활을 하며 어렵게 아들을 키웠다. 방송의 도움으로 각막이식수술을 받고 시력을 되찾은 박씨가 열두살 아들에게 건넨 첫마디는 “우리도 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자”였다.

당시의 그 ‘느낌표 소년’이 최근 책을 냈다. <원종건의 엄지장갑 이야기>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가 해왔던 ‘더 좋은 일’을 소개하고 있다. ‘엄지장갑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원씨는 대학 졸업을 앞둔 2016년 대학 친구들과 함께 시각장애인 헬렌 켈러의 스승 이름을 딴 공익사업팀 ‘설리번’을 만들고, 장애인 비하의 뜻이 담긴 벙어리장갑 대신 엄지장갑이라는 단어를 쓰자는 캠페인을 제안해 사회적 공감을 이끌어냈다. 현재 이베이코리아 홍보팀에서 소셜임팩트 업무를 맡은 그는 아직도 대학 친구들과 설리번 활동을 이어오면서 ‘1일1수화’ ‘이어프로젝트(귀를 뜻하는 영어단어 ear와 사람과 사람을 잇다는 의미의 합성어)’ 등 다양한 공익사업을 벌이고 있다.

원씨는 엄지장갑 캠페인의 성과에 대해 “더디지만 사회가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씨는 “ ‘엄지장갑을 끼고 주루하는 ○○○ 선수’같이 스포츠 뉴스에서부터 확 바뀌는 걸 보고 놀랐다”면서 “인터넷에서도 엄지장갑 키워드로 광고가 붙는 걸 보면 엄지장갑을 검색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가 청각장애인이어서 벙어리장갑이라는 말조차 평생 하지 못했다는 댓글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그분이 이번 겨울에는 아버지께 엄지장갑을 선물해 드려야겠다고 하셨는데 뿌듯했죠.”

원씨는 ‘1일1수화’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도 운영해오고 있다. 수화를 가르쳐주는 동영상 콘텐츠가 하루에 하나씩 올라온다. 내년부터 개편되는 ‘1일1수화’에는 JTBC <효리네 민박>에서 청각장애 사실을 고백해 유명해진 모델 정담이씨가 출연할 예정이다.

“담이씨처럼 후천적으로 청각장애를 갖게 된 분들은 수화를 배워야 해요. 물론 ‘한국수어사전’이라고 검색하면 수화를 알려주는 동영상이 있긴 한데, 요즘 세대들에게는 ‘프렌들리’하지 않죠. 수화를 배우고자 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해요.”

‘이어프로젝트’는 설리번팀이 개발에 착수한 청각장애인의 ‘수화통역사 예약 앱’을 말한다. 어머니 박씨가 수화통역사를 예약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원씨가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쓰는 시대에 앱 하나 없는 걸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고 했다. 서울시 수화통역사 예약시스템만 해도 25개 구청별로 분리돼 있어, 설리번팀은 이를 하나로 통합하는 예약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원씨는 “앱으로 택시를 부르는 손님과 기사가 바로 매칭되지 않느냐”면서도 “아직 장애인 서비스는 20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씨는 “선행이란 주고 싶은 걸 주는 게 아니라 받고 싶은 걸 주는 것”이라면서 “그러려면 뭐가 필요한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측면에서 장애를 가진 어머니를 둔 저는 복받은 사람”이라며 “장애인이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머니와 저에게는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준 고마운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이제는 우리 모자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게 돼 감사하죠. 어머니와 제 꿈은 앞으로도 더 좋은 일을 하는 것이고, 그 꿈을 향해 부단히 노력할 겁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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