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철근·콘크리트 벗고 이야기·인문학을 입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임형남,노은주 소장의 가온건축 20주년 '건축의 즐거움'展

대표작 20채 사연 '20폭 병풍'에 담아

수채·수묵화-레고모형으로 감수성 깨워

"좋은땅·사람과 교감·교류 가장 즐거워"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보통은 콘크리트와 철근, 나무 또는 유리로 집을 짓는다. 하지만 이들은 좀 다르다. 이야기와 인문학으로 집을 짓는다.

지난 1998년 가온건축을 연 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 소장이다. 이들의 20년 작업들을 정리한 전시 ‘건축의 즐거움’이 오는 28일까지 서울 마포구 이건하우스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도면과 모형, 사진으로 채운 보통의 건축전과는 사뭇 다르다. “좋은 땅을 만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교감하고 교류하는 시간인 ‘만남의 즐거움’이 건축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이들이 가온건축의 대표작 20채의 사연을 20폭 병풍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임 소장이 직접 그리고 적었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충남 금산 외곽에 자리 잡은 ‘금산주택’은 이들에게 국제적 명성까지 안겨준 집이다. 거주면적 13평, 마루 8평의 소박한 집은 “교육자인 집주인과 책들과 학생들과 동료 선생님들을 위한 집”이며 “서양식 목구조를 한국 건축의 공간에 녹여낸 집”이다. 건축가들은 이 집의 여러 조건이 이황의 ‘도산서당’을 떠올리게 했기에 진악산을 바라보며 동서로 긴, 일(一)자형의 작지만 큰 생각을 담은 집을 권했고 해외 건축전문잡지의 주목을 받았다.

‘루치아의 뜰’은 1964년 충남 공주의 한 가장이 아내와 다섯 아이를 위해 손수 지었으나 살던 이가 죽고 떠나는 바람에 수년간 폐허처럼 방치됐던 집을 철거 후 다시 지은 것이다. “우리는 열 평에 불과한, 너무 오래 입어 너덜거리는 겨울 스웨터처럼 낡은 집을 되살리는 계획을 했다. 우선 철거를 시작했다. 뜯어낸 재료는 다듬어서 새롭게 썼다. 부분부분 삭아서 내려앉았던 툇마루는 작은 탁자와 선반으로 다시 태어났다. 장독대의 깨진 항아리는 마당 흙을 담아 작은 꽃을 피우는 화분으로 거듭났다.···사람은 유한하지만 자연은 영원하다. 우리는 집이 원하는대로 조금 손을 댔고 집은 되살아났다.”

경기도 여주의 ‘고회재’는 말년의 추사 김정희가 최고의 모임은 가족이 둘러앉은 자리라고 한 ‘대팽고회(大烹高會)’에서 이름을 땄다. 건축주는 떨어져 사는 3대의 가족이 모이기 수월한 거리를 찾다보니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집을 짓게 됐고, 그 상황을 두루 반영한 건축가는 세 채 같은 한 채를 지었다. 평생 사회운동을 하며 사나 60대의 부부가 80대의 부모를 모시고 살기 위해 거창에 지은 ‘그림자가 쉬는 집’은 “집 자체가 휴식의 의미가 될 만한 집”이며 “자연으로부터 위로 받는 따뜻하고 마음 편한 집”이다. 서울 한구석, 차도 못 들어가는 골목길 안쪽 20평 남짓한 땅에 작더라도 마당과 정원이 있는 집을 원한다는 건축주를 위해 한층 최대 7평, 연면적 14평에 불과한 집을 요리조리 구성했고 계절마다 모습 바뀌는 정원까지 갖춘 ‘들꽃처럼 피어나는 집’이 탄생했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삶의 지표는 ‘평이한 삶과 고매한 생각’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달에서도 보일 정도로 큰 신전 같은 거대한 집이 아니라 ‘생각이 담긴 집’이거든요.”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함양군 마천의 ‘간청재’는 서울을 떠나 산속에 살기로 한 씩씩한 부부가 “땅에 어울리는 ‘우리나라의 집’을 짓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누마루를 달았고, “큰 산을 앞에 두고 있는 경관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규모는 작으나 큰 경관을 가진 집”으로 만들었다. 존경과 행복으로 집을 지어달라는 부부도 있었고, 20여년 전 아버지가 짓다가 돌아가신 낡은 창고에 신혼집을 만들고자 찾아온 딸 부부도 있었다. 바빌론 왕이 향수병에 걸린 왕비를 위해 사막 한가운데 공중정원을 만들었듯 정취잃은 홍대앞에 오아시스 같은 ‘아미티스 가든’을 만들기도 했다.

충남 아산의 ‘까사리네아’에서는 건축가가 왜 이토록 그림을 그리는지 그 철학이 담겨 있다. “땅을 그리는 행위는 땅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며 “땅을 그리고 주변의 풍경을 그리고 풀과 나무, 빛과 그림자들을 그리다 보면 그 땅이 원하는 집의 바탕이 될 ‘선’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까사리네아는 선(線)의 집이라는 뜻이다. 최근작인 제따나와 선원은 “사성제와 팔정도를 개념으로 집을 짓자”고 한 건축주의 뜻이 그대로 담긴 사찰이다.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실천하듯 벽돌 30만 장으로 건물을 지었고 과거방식인 불교 교리가 현대의 생활습관에 그대로 스몄다.

집 지을 땅을 그린 스케치와 모형, 서울의 다양한 풍경을 그린 수채화와 수묵화가 감수성을 깨운다. 레고로 만든 ‘금산주택’과 건축가의 취미가 몇 년째 축적된 전각 등을 만날 수 있다. 삼각 지붕의 집 모양으로 철제 구조물을 설치해 전시한 것 또한 독특하다. 결국 우리의 모든 활동이 집과 그 주변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함축한 듯하다.

작은 땅에 집짓기를 20년이나 해 온 이들인지라 ‘즐거움’이란 한 단어에 보람과 가치와 의미와 추억과 배움 등을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집이 꼭 아파트일 필요도 없고, 그 집이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되며 도심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집이란 무엇인가, 그 근본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전시다. 전시 기념으로 제작된 주택 팝업카드·머그컵·티셔츠 등의 판매 수익금은 집 잃은 난민들을 위해 기부된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사진제공=가온건축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