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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강릉펜션 사망학생 추모행렬…"다 어른들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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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제 걸을 수 있어요
강원도 강릉 펜션 가스 누출 사고로 의식을 잃었던 7명 중 가장 상태가 호전된 도 모군(맨 왼쪽)이 20일 강릉아산병원 고압산소치료센터로 걸어가며 의료진과 악수하고 있다. 병원은 도군의 상태에 큰 변화가 없을 경우 21일 퇴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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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아라레이크 펜션 가스 누출로 사망한 세 학생에 대한 추모 행렬이 사고 이틀째인 20일까지 이어졌다.

이날 서울 은평구 대성고등학교 뒤편 체육관에는 3명을 기리는 합동 분향소가 차려졌다. 19일부터 이틀째 휴교 상태인 대성고 주변은 본래 한산했으나 오전 9시부터 분향소 설치 작업에 들어가느라 상조업체 관계자 등 많은 사람이 분주히 오갔다. 하지만 세 학생에 대한 애도 분위기 때문에 학교 주변은 전반적으로 조용했다.

학교 근처 한 상인은 "다 어른들 잘못"이라며 "분향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따 가 보려 한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분향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늦게 시작되는 바람에 9시 전부터 학교를 찾은 학생 10여 명은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분향이 본격 시작된 오전 11시에서 정오 사이에는 대성고 학생 50~60명이 분향소로 들어섰고 이후에는 학부모 방문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두 명은 의식이 돌아왔다던데" "다 살아야 되는데" 등 입원해 있는 학생들을 걱정하는 대화를 나눴다.

전날 빈소가 마련된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에도 학생들 발길이 이어졌다. 오전 9시부터 대성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지하 1층과 지하 2층 빈소를 각각 찾기 시작했다. 짧은 조문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은 빈소 앞에 서서 눈물을 훔쳤다. 세 학생의 입관은 오후 3시 30분부터 5시 사이에 이뤄졌다.

이날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오후에 조문을 와 "유족들이 '다시는 젊은 아이들 희생이 없게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강릉아산병원에 입원 중인 학생 5명과 원주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2명은 대부분 상황이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8일 의식을 회복해 19일 일반병실로 옮겨진 도 모군은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호전돼 이르면 21일 퇴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강희동 강릉아산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4명 중 2명을 오늘 일반병실로 옮겼다"며 "기존에 일반병실에 있던 1명은 특별한 상황이 없으면 내일 귀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중환자실에 있는 나머지 2명도 부르면 눈을 뜰 정도로 상태가 호전된 상태다. 사고대책본부장인 김한근 강릉시장은 이날 오전 브리핑을 통해 "원주에 있는 학생들도 조금씩 호전돼 가고 있다"며 "갑자기 상태가 나빠질 수도 있어 의료진이 조심스러워하고 있지만 미약하게나마 호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식을 차린 학생들은 친구들 사망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다"고 전했다.

사고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경찰 수사도 이어졌다. 전날 보일러 본체에서 어긋난 연통이 사고 원인이라 파악한 경찰은 이날 연통이 왜 분리됐는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설치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를 조사하는 한편 경찰은 사고 펜션에 보일러를 설치한 업체의 무자격 시공 여부도 조사 중이다. 해당 시공업체는 강릉시에 가스시공업체로 등록돼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무자격 시공에 따른 부실시공을 포함해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 대책에 대해서는 여전히 허술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9일 △전국 2만6578개 농어촌민박 등 모든 농촌 관광시설에 대한 전수조사 △농어촌민박 가스시설 점검 등을 골자로 하는 대책을 내놨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농어촌민박시설을 대상으로 식품위생·숙박위생·소방안전 등을 점검해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가스안전은 별도 지침으로만 지정해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어 강제성이 없다. 점검 방식도 담당 공무원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업주에게 '잘 지키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에 그친다.

이번 대책에도 과태료 등 제재는 여전히 빠져 있다. 실제 점검을 나서는 담당 공무원들은 "인력도 달리고 가스안전 분야 등은 현장 공무원들의 전문성만으로는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호소하고 있어 이번에도 급조한 '날림 대책'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가스안전과 함께 지침으로만 지정돼 있는 항목 중 숙박객 안전과 직결된 것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더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콘크리트 구조체의 균열·박리·누수·철근 노출' '체험 프로그램 관련 안전장비 상태' 등은 공무원들이 점검을 나가 파악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전문성이 없는 인력들을 데리고 전수조사를 하느라 조사하는 민박 개수만 늘어나게 되면 점검이 오히려 더 안 될 가능성이 있다"며 "실효성 없는 대책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지적했다.

[강인선 기자 / 안수진 기자 / 문가영 기자 / 강릉 =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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