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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제로페이 '제로 이용'…첫날 자영업자도 손님도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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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운영자 결제 방법 숙지 안돼

알바 배치했지만 교육 일정 지연

제로페이존 영등포역 매장 중

이용 가능한 곳은 커피숍 한 곳

기자가 첫 손님, POS 연동 안돼

중앙일보

20일 시행 시작된 제로페이 길거리 매장 광고. 광고 설치는 끝났지만 실제 이용은 거의 되지 않고 있다.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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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설치 좀 해줘. 젊은 사람들이 해줘야지 어떡해?”

20일 오전 서울시가 ‘제로페이존’으로 선정한 영등포역 지하상가. 모자 매장을 운영하는 김원기(60)씨는 기자가 제로페이가 되는지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상점 안에 제로페이가 된다는 안내문과 QR코드가 부착돼 있었지만 김씨는 사용 방법을 몰랐다. 기자라고 밝히자 그는 “‘알바생’이 와서 해준다고 해서 기다리는데 아직 오지 않았다”고 답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영등포역 지하상가 등 시범존의 제로페이 가입률은 85%지만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매장을 찾기는 힘들었다. 지하상가의 계단과 벽면 곳곳에 ‘제로페이존’ 광고로 도배된 상황이 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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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영등포역 지하상가 매장에 부착된 제로페이 QR 코드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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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약으로 구체화한 공공페이 서비스 ‘제로페이’가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울시 소상공인의 가맹점 등록정보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간편결제 참여 기관에 제공, 수수료가 ‘제로’가 되도록 정산을 돕기 위한 정책이다. 서울시는 공공페이를 도입해 가맹점별로 이용할 수 있는 결제 플랫폼이 제각각이고 플랫폼별로 각기 다른 QR을 비치해야 하는 불편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소상공인 업체 66만6000여곳 중 2만여곳이 제로페이 가맹신청을 했다.

하지만 시행 첫날 여기저기서 준비 부족으로 인한 문제점이 보였다. 영등포역 지하상가 상인들은 “어제(19일)부터 시에서 QR코드를 배부했다”고 전했다. 지하상가 매장 291곳 중 상당수가 QR 코드를 붙였지만, 실제 결제 가능한 곳은 카페 한곳 뿐이었다. 서울시에서 ‘제로페이 서포터즈’ 100여명을 교육해 현장에 투입했지만,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아 각 매장 방문이 지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제로페이 서포터즈 박모(30)씨는“하루 다섯 곳을 들러야 하는데 사장님이 계시지 않는 경우도 있어 일정대로 안내하지 못하고 있다”며 “소상공인 중 나이 많으신 사장님은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지 않아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영등포역 지하상가에서 유일하게 제로페이 이용 가능한 커피점을 찾아 첫 이용자가 돼 보았다. 서울시는 국민은행 등 은행 앱 11개와 간편결제 앱 4개 등 총 15개 앱에서 제로페이를 이용할 수 있다고 안내했지만 이날은 페이코에서만 제대로 작동했다. 결제와 동시에 매장 점포판매시스템(POS)으로 연동되는 다른 페이 서비스나 신용카드와는 달리 판매자가 금액을 직접 입력해야 한다는 점도 불편해 보였다.

카페 사장 김윤미(40)씨는 “카드 수수료를 떼지 않는 점은 좋지만, 금액을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 점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POS와 연동이 되지 않으면 매매 제품 정보 확인이 어렵다. 또 환불과 교환이 불가능하다. 재고가 많은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재고 관리에도 차질이 생긴다. 이날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제로페이 확산 결의 대회를 연 서울시는“내년 3월까지 이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안내했다.

또 다른 제로페이존인 서울 강남터미널 지하상가(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도 사정은 비슷했다. 지난달 중순부터 상인으로부터 가입 신청받기 시작했지만 20일 오후 기준 620개 매장 중 결제 가능한 곳은 3곳에 그쳤다. 신청은 590곳에서 했지만 이날 오전에서야 QR코드 400여개가 배송됐다.

제로페이 이용자는 찾을 수 없었다. 상가 내 QR코드를 부착한 의류 매장을 지키고 있던 나한빈씨는 “알리페이 등은 외국인이 주로 쓰고 카드에 익숙한 한국인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며 “수수료가 없으면 상인한테 좋긴 한데 (이걸로는 불충분하고) 소비자 마음을 흔들어야지 소비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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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강남터미널 지하상가 제로페이 광고 사이로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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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반응은 무관심에 가까웠다. 제로페이에 대해 잘 모르거나 설명을 들은 뒤에도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걱정을 드러냈다. 제로페이에 대해 처음 듣는다는 한 20대 여성은 설명을 들은 뒤 “핸드폰을 켜서 이용하는 게 불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오산에서 쇼핑을 왔다는 또 다른 여성(19)은 “개인정보 관리가 허술하다고 느껴서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제로페이 이용 확산 유인책으로 신용카드ㆍ체크카드보다 높은 소득공제율(40%)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문화·체육시설 이용 시 할인 혜택도 준다. 하지만 다양한 할인 혜택과 누적 포인트를 무기로 한 신용카드와 경쟁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소비자의 선의에 기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과도한 인센티브를 줄 경우 형평성 논란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영선ㆍ김정민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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