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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강릉펜션처럼 단독주택 곳곳 불법 보일러, 아파트도 사고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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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연통 분리 등으로 49명 사상자 발생

이 중 74%가 강릉 펜션처럼 배기관 분리로 사고

중앙일보

강릉 사고 펜션 보일러 모습. 보일러에 시공표지판이 붙어 있지만 정보는 기록돼 있지 않아 불법으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 강릉소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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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마친 고교생 10명이 숨지거나 다친 강원도 강릉시 저동 펜션 가스보일러가 불법으로 설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가스보일러에 붙어 있어야 할 시공표지판에 시공자 이름 등 정보가 적혀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가스보일러는 시공하면 노란색 시공표지판에 시공자 명칭 또는 상호, 시공자 등록번호, 사무소 소재지, 시공관리자 성명 등을 적어야 한다. 그러나 시공표지판이 없거나 정보가 적혀 있지 않다면 무자격자가 불법으로 설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가스 안전교육원에 따르면 가스보일러는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가스시설시공업 3종 이상의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 건설업 등록자만이 설치와 시공을 할 수 있다. 연통을 보일러와 고정하고 외부로 빼내는 과정에서 틈이 생길 경우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무자격자가 시공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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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한 단독주택에 설치된 보일러. 이곳에도 시공표지판 등이 없다. 위성욱 기자


문제는 강릉 펜션 이외에도 시공표지판이 붙지 않거나 정보가 적혀 있지 않은 가스보일러들이 곳곳에 많다는 점이다. 실제 본지 취재팀이 20일 강릉과 경남 창원의 단독주택 5곳을 무작위로 확인한 결과 가스보일러에 모두 시공표지판이 없거나 정보가 적혀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취재팀과 함께 현장 점검을 나간 정우성 경남도 안전점검단 주무관은 “단독주택의 경우 상당수가 (무자격자가 설치해) 시공표지판이 없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명예교수는 “(강릉 펜션처럼) 보일러는 배기관과 연결되는 부위가 얼마나 정확하게 연결하느냐가 안전 포인트다”며 “(무자격자 설치로 가스가 외부로 누출 안 되게) 밀폐나 지지가 제대로 안 되면 고드름 등 외부충격을 이겨내지 못해 배기관 분리 등의 사고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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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10년 이상 된 한 아파트에 설치된 보일러 아래 시공표지판에 정보도 적혀 있고, 위 오른쪽에 경보기도 설치돼 있다. 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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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팀이 이날 창원 등의 아파트 2곳을 둘러본 결과 단독주택과 달리 시공표지판이 붙어 있고 정보도 제대로 적혀 있었다. 그러나 아파트나 빌라 등 공동주택의 보일러도 제대로 시공을 하지 않거나 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위험에 노출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가스안전공사의 ‘가스 사고 연감’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최근 5년간 가스보일러(도시가스와 LPG)로 인한 사고는 총 23건이 발생해 4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중 17건(74%)이 강릉 펜션 사건처럼 배기관 이탈 등으로 일산화탄소가 제대로 배출되지 못해 발생한 사고였다. 49명의 사상자 중 48명이 일산화탄소 중독돼 피해를 보았다. 대부분 아파트와 빌라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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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30년 이상된 아파트에 설치된 보일러. 시공표지판에 정보가 적혀 있지만 가스 경보기 등은 없다. 위성욱 기자




지난 2017년 12월 5일 오후 2시20분쯤 대구 동구 한 빌라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일가족 5명 중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쳤다. 가스보일러 배기관이 이탈돼 일산화탄소가 실내에 퍼진 것이 원인이었다. 이들 가족은 며칠 전 두통 등으로 병원을 찾기도 했지만, 일산화탄소가 누출되고 있다는 의심은 못 했다. 일산화탄소는 무색무취해 일반인이 감지하기 쉽지 않아서다. 지난 2015년 12월 9일 오후 3시 59분쯤에는 전북 군산시 나운동의 한 아파트에서 2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 이 집도 가스보일러와 배기관이 연결되는 부위가 적절히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스보일러 작동 시 반복적인 폭발이 일어나면서 배기관이 이탈됐다는 것이 가스안전공사 측의 설명이다. 2014년 12월 22일 오전 9시22분쯤에는 경남 의령군 부림면 신반리 한 빌라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쳤다. 이곳도 가스보일러의 배기관이 이탈해 일산화탄소가 방과 거실 등으로 유입돼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독주택과 비교하면 기준이 더 엄격한 공동주택도 안전지대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대안이 없는 건 아니다. 전문가들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면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날 취재팀이 창원 의창구 용호동의 30년 이상 된 아파트 한곳과 10년이 넘은 또 다른 아파트를 둘러봤다. 두 곳 다 시공표지판이 보일러에 붙어 있고 연결부위 등도 틈이 없었다. 그러나 10년 이상 된 아파트에는 가스경보기가 있었지만 30년 이상 된 아파트에는 없었다. 2006년 이후 지어진 5층 이상의 아파트에만 경보기가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돼 있어서다. 단독주택도 경보기 설치 의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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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한 아파트에 설치된 보일러 배기관 모습. 틈이 보이는 것 같지만 현장 점검을 나간 경남도 안전점검단은 누출 위험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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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주무관은 “평상시 보일러가 설치된 베란다의 양쪽 창문을 조금씩이라도 열어 환기하는 습관만 들여도 위험이 그만큼 줄어든다”며 “월 1회에 걸쳐 가스 밸브뿐 아니라 보일러와 연통이 연결되는 부분도 비누 거품을 이용해 검사 하는 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일산화탄소 경보기가 80% 설치돼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보일러를 사들여 설치하는 가정집에도 경보기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고 말했다.

창원·강릉·대구=위성욱·박진호·최종권·백경서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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