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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양심'과 '군복무'는 얼마나 진실해야 하나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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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지난 6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촉발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도입 논란이 연말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체복무자의 복무 기간과 분야, 대체복무자를 선발하는 기관 등을 놓고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 정치권 등이 다양한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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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에 대한 최종 검토를 진행중이다. 연합뉴스


주무부처인 국방부는 두 차례의 공청회를 거쳐 최종 검토단계인 대체복무 1안과 2안을 1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공개했다. 1안은 복무기간 36개월(육군 기준 2배), 합숙시설이 있는 교정 분야에서 복무하고 국방부 산하에 심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이다. 2안은 복무기간 27개월(육군 기준 1.5배), 복무기관은 소방 등으로 다양화되며 심사위원회는 국방부가 아닌 기관에 설치하는 안이다. 현재로서는 1안이 정부안으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국방부는 이달 안에 대체복무 정부안을 발표, 입법예고 절차를 거쳐 2020년 1월1일부터 시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대체복무를 둘러싼 논란이 그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안이 어떻게 나오든 지지를 받기는 쉽지 않다. 어느 누구에게도 박수를 받을 수 없는 게 국방부의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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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장병들이 2013년 10월 1일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미 국방부 제공


◆새로운 복병, 복무기간 조정

시민사회단체는 36개월 동안 교정시설에서 복무하는 국방부의 대체복무 1안에 대해 징벌적 성격을 띠는 제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등은 지난달 1일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 공동논평에서 “현역 복무 기준 1.5배를 넘는 대체복무는 징벌이라는 점에서는 국제사회의 합의가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도 1.5배 이상의 대체복무 기간은 인권침해라고 권고해왔다”며 “정부의 대체복무안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판결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국방 의무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대체복무제는 합숙 형태로 36개월 이상으로 하고 관리는 국방부에서 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 꾸준히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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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들이 교관의 지도 하에 심폐소생술을 익히고 있다. 해병대 제공


여기에 복무 기간을 일정 범위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1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 포함되면서 대체복무 기간을 둘러싼 논란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행 병역법 19조와 42조는 현역과 사회복무요원 등의 복무기간을 일정 범위 내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역은 6개월 이내, 사회복무요원과 산업기능요원 등은 1년 범위 내에서 국무회의 심의 및 대통령 승인을 거쳐 조정이 가능하다.

조정 조항이 포함된 기존 병역법 체계를 대체복무 1안에 적용하면 대체복무 기간은 24개월까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하는 27개월보다 짧다. 대체복무 2안에 적용하면 공군(22개월) 복무기간보다 짧아질 수 있다. “제도를 시행해보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은 뒤에 복무기간 조정 조항을 넣어도 되는 것 아니냐” “제도 시행 후 시행령으로 만들 수 있는데 벌써부터 그런 조항을 만드느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병역법 체계와 비슷하게 만든 것으로 지난달부터 언급했던 사항”이라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사회복무요원과 대체복무는 현역 복무와 연동되는 부분이 있어 기존 병역법 체계를 가져다 쓴 것”이라며 “(대체복무기간) 조정이 이뤄지려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대체복무제가 정착돼 병역회피에 악용될 가능성이 없어졌다는 판단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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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이 119대원의 환자 후송을 돕고 있다. 병무청 제공


◆메우기 힘든 간극…접점 찾는 노력 필요

대체복무제를 요구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은 개인이 누려야 할 양심의 자유와 기본권을 강조한다. 반면 대체복무제에 반대하거나 복무기간을 길게 설정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역병이나 사회복무요원 등을 포함하는 병역의무와의 형평성, 병역회피로 악용될 소지를 차단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인권’과 ‘안보’라는, 양측 모두 진실성을 강조하는 가치에 판단 기준을 두다보니 접점을 찾기 힘들다.

지난 13일 국방부가 주관한 대체복무제 2차 공청회에서는 이같은 관점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났다.

법무법인 지향의 김수정 변호사는 “(국방부는) 현역병의 2배 정도로 긴 복무기간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양심이 증명되고 병역기피를 막는 수단이 될 것이며, 형평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양심의 증명을 가혹한 제도를 받아들이느냐로 판단하는 것은 인권에 반하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반면 법무법인 로고스의 임천영 변호사는 “군인은 엄격한 규율과 열악한 복무환경에서 생명과 신체가 늘 위협받는다”며 대체복무 기간은 육군 병사의 최소 두 배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점진적인 해결책을 도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방부가 추진중인 대체복무제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구현하는 것보다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쓰지 않고 시행할 수 있는 관료적 조치에 가깝다. ‘병역기피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한다’는 기본방향을 정해놓았을 정도로 병역의 테두리 안에서 대체복무제를 만들다보니 사회복지나 의료 등 공공 서비스 부분은 복무분야에서 고려되지 않는 상황이다. 대체복무제를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회적 불신과 병역의무를 이행한 청년들의 반발 등 국민정서를 감안해야 한다. 국민 다수가 지지하지 않는 정책은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힘을 잃기 때문이다. 군 입장에서는 병역제도의 근간을 뒤흔들수 있는 요소를 대폭 수용하기 힘들다. 정부가 추진중인 대체복무제를 받아들인 뒤 국민적 신뢰를 축적, 점진적으로 복무기간을 줄이고 복무분야를 확대해 국제 인권기준에 맞춰가는 방안이 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방부도 대체복무제 정부안에 제도 정착 후 복무기간을 최대 1년까지 조정하면서 복무분야를 확대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법률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뢰제거나 군수지원 등 군 관련 업무를 배제한 만큼 대체복무 심사의 독립성과 투명성이 보장된다면 36개월간 교정시설서 근무하는 정부안도 대체복무제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체복무제는 병역을 거부하는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제도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총을 들지 않고도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민주주의 역사와 전통을 갖춘 선진국에서는 익숙한 제도일 수 있으나 처음 도입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제도 정착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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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들이 농촌에서 비닐하우스 설치작업을 돕고 있다. 국방부 제공


남북 화해 시대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병역의무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비판하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개념 자체에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병역의무보다 개인의 양심이 우선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법률을 만드는 것은 국민적 이해와 관심, 공감이 필요하다.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했던 국민들의 이해가 없다면 대체복무제는 설 자리가 없다. 양심의 진실성 못지않게 병역의무에 대한 헌신도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정서다. 국방부가 대체복무 개념을 엄격하게 설정하려 하는 것도 이같은 국민정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체복무 시행 후 보완’의 필요성에 무게가 쏠리는 대목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고 국민들에게 병역의무의 ‘헌신’과 동등하게 인정받는다면 대체복무제는 공공의 이익을 수호하면서 군사적 색채가 옅어지는 형태로 자연스레 변화할 수 있다. 급히 먹는 밥은 체하는 법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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