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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취재파일] 시설공단이 밝힌 'KTX 강릉선' 사고 원인…계속되는 '남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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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강릉에서 서울로 향하던 KTX 열차가 탈선해 14명이 다쳤습니다. 지난해 12월 22일 개통한 강릉선에서 채 1년도 안 돼 사고가 난 것입니다. 사고 직후부터 '남 탓'이 계속됐습니다. 코레일은 "시설이 잘못 건설됐다"며 시설공단 탓을 했습니다. 국토부는 "1년 동안 정상 운행했던 만큼 시설 자체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며 운영을 맡은 코레일 탓을 했습니다.

2005년 철도 '상하분리' 이후 철도 위(上)를 뜻하는 운영은 코레일이, 철도 아래(下) 시설 건설은 시설공단이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설 이후 시설의 유지와 보수는 코레일이 합니다. 코레일은 시설 건설에, 상하분리를 고집하는 국토부와 시설공단은 코레일의 책임을 물은 것입니다. 이 와중에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기온 급강하로 선로에 문제가 생겼을 수 있다"며 추위 탓을 했는데 결국 사고는 날씨와는 무관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퇴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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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설공단 조사 결과…"어처구니없는 제작 업체의 실수"

시설공단은 내부 조사를 거쳐 이번 사고의 원인을 결론 내렸습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철민 의원에 밝힌 내용입니다. 사고 현장에는 두 개의 선로전환기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차량기지 쪽에 설치된 21A와 서울 방향 선로에 설치된 21B입니다. 선로전환기는 말 그대로 선로를 바꿔주는 역할을 하는데 선로가 확실히 밀착되지 않는 등 이유로 오류가 생깁니다. 오류가 났을 때 경보는 연동장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로전환기와 연동장치는 전선 같은 케이블로 연결돼 있는데 이 사이에 '분선반'이 있습니다.

이번 사고는 이 분선반에서 일어났다는 게 시설공단의 분석입니다. 21A의 선로전환기 케이블이 21B 연동장치와 연결돼 있었고 21B 선로전환기도 반대로 꽂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분선반 설계는 두 업체가 맡았습니다. 한 업체는 선로전환기에서 분선반까지 연결을 맡았고, 다른 업체는 분선반에서 연동장치를 이었습니다. 공단은 이 두 업체가 분선반 제작 도면을 잘못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인데 두 업체가 책임질 일이라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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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되는 '남 탓'…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강릉선은 작년 6월부터 개통 승인을 위해 여러 기관으로부터 사전 점검을 받았습니다. 코레일, 시설공단, 교통안전공단과 수많은 감리업체들이 참여했습니다. 먼저 지난해 6월 1일부터 27일까지 18일 간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 직원 35명이 '사전점검'을 했습니다. 7월 31일부터 11월 13일까지는 '시설물 검증'을 했습니다. 역시 코레일과 시설공단 직원이 함께 했습니다. 3단계 검증 작업은 '영업시운전'이었습니다. 10월 31일부터 개통 전날인 12월 21일까지 이뤄졌습니다. 교통안전공단은 이를 토대로 '종합시험운행 평가'를 했습니다.

무려 6개월 동안 4차례의 검증 절차가 이뤄졌지만 '분선반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걸러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고가 날 때까지 말 그대로 '운 좋게' 운행한 셈입니다. 문제는 여전히 책임 소재를 두고 남 탓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종 승인을 맡은 교통안전공단은 "코레일과 시설공단의 점검 결과를 문서 검증 작업 위주로 평가하기 때문에 공단은 이런 실수를 밝혀낼 수 없는 구조"라고 책임을 돌렸습니다. 시설공단은 민간 감리업체와 함께 감리를 맡았지만 감독과 관리의 책임을 지기보다는 제작 업체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입니다. 사고의 시발점인 선로전환기의 오류를 밝혀야 할 코레일은 시설 건설부터 문제였단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모두의 책임이라서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사전 점검 기간 동안의 검사가 오류를 가정하지 않은 채 진행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이번 사고는 선로전환기에 오류가 생겨 이를 경보하는 과정에서 일어났습니다. 사전 점검 과정에서 일부러 선로전환기에 오류를 만들어 연동장치에 제대로 표시가 되는지를 따져봤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코레일은 2년에 한 번씩 하는 '연동검사'를 통해서 '분선반 연결 오류'를 잡아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철도 전문가는 "이 검사 역시 오류 상황을 가정해 검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연결 오류를 밝혀낸다는 보장은 없다"며 "케이블 노후화 등을 우려해 분선반을 열 때가 있는데 그때서야 찾아낼 가능성은 있다"고 했습니다. 국토부는 사고 이후 전국 모든 선로전환기를 전수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수많은 인력이 투입될 테고 오랜 시간이 걸려 그 결과가 발표될 것입니다. 지금 더 중요한 건 점검 매뉴얼부터 손 보는 것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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