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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아베는 ‘공포’로 동아시아에 군림하려 하나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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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연일 '한국 때리기'로 공포 조장… 정치적 의도 노골적으로 드러내

우리 해군 함정 광개토대왕함이 20일 동해상에서 조난당한 북한 어선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레이더를 가동한 것에 대해 “P-1 초계기를 화기관제(사격통제)레이더로 조준했다”고 주장한 일본이 28일 P-1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에 근접해 찍은 영상을 공개하면서 한일 갈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일본은 21일부터 방위성과 외무성, 정치권, 언론 등을 총동원해 “뒤에서 총을 쏘는 행위다” “함장이 사죄해야 한다”며 한국에 대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1월 5일 일본 수산청 단속반이 불법조업 중인 중국 어선을 단속하다 반나절 이상 중국 어선에 끌려 다녔으나 비공식 대응을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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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총리는 공포심리를 자극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일본의 문제제기 초기 로키(Low-key) 모드를 유지하던 우리 정부도 일본이 한일 실무화상회의를 개최한 지 하루만에 영상을 공개하자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 “우방국으로서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며 맞대응에 나섰다.

일본의 이같은 태도 원인으로는 아베 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를 꿈꾸는 아베 신조 총리가 한국을 위협으로 부각시켜 군비증강의 명분을 쌓고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밖이 시끄러우면 안이 조용해진다’는 고대의 정치술을 재현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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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위성은 지난 20일 우리 해군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이 동해상에서 일본 해상초계기의 레이더 겨냥 논란과 관련해 초계기 영상을 28일 공개했다. 일본 방위성 영상 캡쳐


◆영상 공개했으나 ‘韓 함정 위협’만 드러낸 日

일본 방위성은 28일 유튜브에 ‘한국 해군 함정에 의한 화기 관제 레이더 조사(照射) 사안’ 영상을 올렸다. 13분 7초 분량의 영상에는 P-1 초계기가 동해상에서 북한 조난 선박을 구조하던 우리 해군 광개토대왕함(971)과 해양경찰 삼봉호(5001)를 촬영한 화면과 초계기 승무원의 대화가 담겨 있다.

영상을 분석한 군 당국은 “일본이 억지를 부린다”는 반응이다.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초계기 승무원들이 “화기관제(사격통제)레이더 신호가 탐지됐다”고 말했지만 증거능력은 없다.

일본은 광개토대왕함이 실제 사격 시 표적을 조준하는 스티어(STIR-180) 레이더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스티어의 전자파는 I 또는 K밴드다. 광개토대왕함이 사용했다고 우리 군이 밝힌 탐색용 레이더(MW-08) 전자파는 G밴드다. 일본이 P-1 초계기가 수신한 레이더 전자파 데이터를 공개하면 대조, 비교과정을 거쳐 사실관계를 명확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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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상자위대 P-1 초계기. 세계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일본은 결정적 증거인 레이더 주파수를 공개하지 않았다. 영상에서도 레이더 주파수에 대한 언급은 없다. “(사격통제레이더) 안테나가 우리를 향하고 있는 것을 식별했다. 의도가 뭐냐”는 말만 나온다. 사격통제에 쓰이는 스티어 레이더는 광학카메라를 함께 운용, 카메라 작동 시 같이 움직인다.

대공화기를 장비한 광개토대왕함에서 사격통제레이더 전파를 수신했다면 회피 기동을 해야 했지만 그런 움직임은 발견되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전자파 조사(照射)를 받았다면 회피기동을 해야 했고, 승조원의 목소리도 다급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당시 초계기에 대한 위협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영상 공개는 우리 군이 일본 방위성에 문제를 제기할 부분도 발견됐다. 인도주의적 구조활동중인 함정을 지원하는 대신 근접비행을 통한 감시를 하고 있었다는 점은 비행 의도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항공기와 함정이 조우하면 회피가 어려운 함정의 부담이 더 크다. 그 항공기가 대함미사일 등을 탑재할 수 있는 초계기라면 함정에 상당한 위협이 된다.

군 관계자는 “영상을 보면 일본 초계기는 광개토대왕함과 삼봉호가 북한 조난 선박 구조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광개토대왕함에 가까이 접근했다”며 “영상 촬영 당시 일본 초계기와 광개토대왕함의 최근접거리는 500m, 고도는 150m로 나타났다. 우리 함정 승조원들이 굉장한 위협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본 초계기는 150m 상공을 비행하면서 함교 위로 날아간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공비행을 한 적이 없다는 25일 일본 방위성의 주장과는 상반된다.

일본은 고도 150m 이하로 비행하면 항공기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을 준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 관계자는 “IACO 규정은 군용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본에 먼저 항의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일본 초계기라는 점을 이미 확인했고, 우군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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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군사력 증강을 밀어붙이며 주변국을 자극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아베는 ‘공포의 지배자’가 되는 길을 걷고 있다

일본 방위성의 29일 영상 공개는 레이더 논란의 실체와 별도로 아베 정권이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위성이 처음 문제를 제기한 시기는 지난 21일이다. 이보다 앞선 18일 일본 정부는 ‘방위계획의 대강(방위대강)’개정안과 ‘중기방위력정비계획 2019~2023년’을 공식 채택했다. 방위대강은 10년마다 개정하는 것이 관례지만, 아베 정권은 2013년에 이어 5년만에 방위대강을 바꿨다. 헬기탑재형 호위함 이즈모에 F-35B 스텔스 수직이착륙기를 탑재,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방안과 원거리 정밀타격능력을 갖추는 계획이 포함된 중기방위력정비계획에는 27조엔(약 267조원)이 투입된다. 군사력 증강의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일본은 공격하지 못한다’는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깨고 군사력 확충에 나선 아베 정권으로서는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70여년 동안 평화를 누려온 일본 국민들에게 군비증강의 당위성을 설명해야 한다.

예전에는 이같은 설득이 어렵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핵과 탄도미사일 위협을 거론하면 ‘프리패스’였기 때문이다.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이 일본 열도를 넘어가고, 동해의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노동과 스커드 개량형 탄도미사일이 낙하하면 일본 국민들은 방위성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남북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북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멈춘 것이다. 북한을 비난하면서 정치적 기반을 다지고 군사력을 키웠던 아베 정권은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 중국의 해양 위협은 중대한 문제이나 국민들에게 피부로 와닿지 않는 이슈로 군비 증강의 명분으로 내세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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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항공자위대 F-15J 전투기가 이륙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대규모 군비증강 계획을 천명한 지 사흘만에 방위성이 레이더 논란을 제기한 것은 아베 정권의 정치적 의도를 잘 보여준다. 일본 본토와 가까운 공해상을 광개토대왕함이 항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P-1 초계기 승무원들이 “화기관제레이더를 쏘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실관계는 그 다음 문제다.

영상을 본 국민들은 본토에서 가까운 해상을 한국 군함이 항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협을 느낀다. 초계기 승무원들이 주고받는 말과 기계음은 공포 심리를 자극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공포가 커질수록 아베 정권이 주장하는 군비증강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줄어든다. 국민을 겁박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답정너’ 아베 정권에게 우리 정부와 군의 합리적인 설명은 ‘쇠귀에 경읽기’나 마찬가지다.

이솝 우화 중 하나인 ‘양치기 소년’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다. 양치기 소년의 배후에 동네를 단결시키려는 정치적 목적과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자 공포 심리를 자극하려는 이장이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에 이장 캐릭터를 추가하면 광개토대왕함 레이더 논란과 유사한 맥락이 형성된다. 동네 사람들은 일본 국민, 양치기 소년은 방위성, 이장은 아베 신조 총리다.

평화 대신 공포를 이용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공포의 지배자’ 아베 신조 총리가 계속 집권하는 동안 ‘한국 때리기’를 이용한 일본 국내 정치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공포를 조장하는 정치는 오래 가지 못한다. 공포도 계속 겪으면 내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더 큰 공포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효과는 길지 않다. 고대 중국의 동탁, 프랑스의 로베스피에르 등 공포정치로 국민을 겁박한 정치 지도자들은 단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포를 조장하는 횟수가 늘어나면 국민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불장난은 한 번으로 족하다는 사실을 아베 정권이 기억해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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