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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조보' 세계최초 일간지, 독일 신문보다 83년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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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 발행 '조보(朝報)' 통해 중앙과 지방 긴밀히 소통

작년 4월 경북 영천서 활판인쇄본 '민간조보' 실물 발견

'민간보조'…2일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521호 지정

뉴시스

민간조보,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521호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세계 최초 일간신문 '조보(朝報)'를 아시나요?

한국국학진흥원은 '조보-조정의 기별'을 소재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1월호를 발행했다. 조선시대 조보는 매일 아침 왕과 신하들의 회의가 끝나고 나면 승정원의 관리가 '조보소(조방)'에서 그 날의 주요 소식을 전한 것이다.

각 관청에서 나온 '기별서리'는 구두로 전달하는 내용을 종이에 옮겨 조보를 만들었다.

한양에 있는 양반들은 매일 아침 조보를 받았다. 지방의 관리나 양반은 5~10일 정도 걸렸다.당시의 어려운 교통환경을 고려하면 조보 발행에 상당히 많은 자원을 투자했음을 알 수 있다. 조보를 통해 중앙과 지방이 긴밀히 소통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조보'라는 용어는 조선왕조실록 중 1508년 3월14일 중종실록 5권에 처음 나타나지만 1515년 중종이 "조보는 예로부터 있는 것이다"라고 언급한 것으로 미뤄 조보의 기원은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기별(奇別)'은 조보의 다른 이름으로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라는 속담에 쓰이기도 했다.

중종실록에 의하면 조보는 세계 최초의 일간신문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실물이 전하지 않아 1650년 독일에서 발행된 '아이코멘데 차이퉁'이 그동안 세계 최초의 일간신문으로 알려져 왔다.

2017년 4월 경북 영천에서 선조 10년(1577) 활판인쇄로 발행된 민간조보의 실물이 발견됐다. 아이코멘데 차이퉁보다 83년이나 앞선 일간신문이다.
뉴시스

격무에 시달리는 승정원 주서(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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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민간조보는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 521호로 지정됐다.

민간조보가 탄생하게 된 것은 왕과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던 조보에 대한 일반 백성들의 갈망을 배경으로 한다. 백성들은 조보를 읽을 수 없었지만 알 권리 충족을 위해 1577년 민간조보를 탄생시켰다.

조보는 손으로 쓰여졌지만 민간조보는 활판으로 인쇄됐다. 백성들은 돈을 주고 구독했다.

민간조보는 관의 허락을 받았지만 발간된 지 3개월 만에 선조에 의해 폐간됐다. 조보 발행인들은 가혹한 형벌과 유배에 처해졌다.

민간조보가 유통된 일에 대해 선조가 크게 노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이번 웹진 1월호 필진인 노병성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18세기 한문단편집 '동패낙송'에 실린 소설 '조보'를 통해 조보의 흥미로운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가난한 무관 우하형은 문자를 아는 기생출신 수급비(물 긷는 여종) 궐녀를 만나게 된다. 궐녀는 우하형이 병마절도사가 될 상이라 생각해 경제적인 지원을 했다.조보를 통해 우하형의 소식을 수소문하며 평안도 한 고을의 수령으로 부임한 우하형을 찾아가 관아 안살림을 관리한다.

이후에도 조보를 계속 읽음으로써 조정의 정세를 파악했다. 이러한 정보를 기반으로 뒷바라지를 한 결과 우하형이 마침내 병마절도사로 승진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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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패낙송(東稗洛誦), 조선 후기 노명흠이 저술한 한문 단편집


한문을 읽을 줄 아는 기생 출신 첩이 조보를 활용해 조정에 영향을 끼쳐 남편을 병마절도사로 만드는 이야기는 접근이 차단된 정보에 대한 백성들의 갈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소설 '조보'의 주인공 궐녀가 조보를 통해 조정의 정세를 파악했다는 이야기처럼 조보의 내용에는 대체로 관리의 임면, 이동, 승진 등 인사동정 기사가 가장 많았다.국왕의 동정을 비롯해 날씨 기상 천문, 사망, 개명, 농사, 범죄, 문안, 과거, 건강, 자연재해 및 역병, 외국동정 등이 실렸다.

대체로 오늘날 정치면과 유사하며, 사회면과 거의 흡사한 측면이 있다.

조보는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에서 매일 발행했다. 전쟁 중에도 발행됐다.

승정원에는 기자 역할을 하는 '주서'가 있어 도승지 감독 아래 매일 조보를 작성했다. 여러 가지 기사 중에서 취사선택을 해야 했다. 빠른 속도로 알아보기 쉽게 글씨도 써야 했다.

조보에 기사가 실리는지 빠지는지, 어떤 내용으로 실리는지 등은 정치인들에게 있어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많은 공격을 받기도 했다.

글씨가 졸필이며 알아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상소를 받기도 했다.

또한 조보에도 보도지침이 있어 군사기밀이나 비밀을 요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조보에 내지 않도록 했다. 이런 원칙을 어겨서 벌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뉴시스

새해 첫 '조보'를 보고 파직 사실을 알게 된 관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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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보를 받아서 읽는 독자들의 생각과 의견은 어떠했을까. 선인들의 일기에서 이와 관련된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다.

16세기에 쓰여진 '초간일기'의 저자 권문해는 공주목사로 근무하던 1582년 1월3일 새해 첫 조보를 통해 본인의 파직 소식을 듣게 된다.죄수가 탈옥한 일로 인해 파직된 것이다.권문해는 '공무수행에 완전하지 못해 파직을 당한 것은 부끄러운 바가 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 독서와 교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하니 새로운 기대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고 적었다.

'쇄미록'의 저자 오희문은 임진왜란으로 궁핍한 삶을 살던 중 우연히 조보에서 아들 윤겸이 수령으로 추천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기쁨을 표시한다.

'계암일록'의 저자 김령은 조보를 받고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이라 조정의 소식에 제대로 닿지 않는 것을 한탄하며 나라의 안보와 관련한 중대한 일이 조보에 담기지 않았음을 분개하고 있다.

이번 달 편집장인 공병훈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소통은 개인들을 연결하고 공동체를 형성해 살아 움직이게 한다"라며 "조보를 통해 소통했던 선인들의 모습에서 참신한 창작소재 발굴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kjh9326@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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