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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일간신문 '조보' 아세요…조정 소식 담은 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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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승정원에서 발행…중앙과 지방 긴밀한 소통 역할

연합뉴스

세계 최초 일간신문 '민간조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21호 지정 (출처 영천시)[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안동=연합뉴스) 김효중 기자 = "세계 최초 일간신문 조보(朝報)를 아세요?"

한국국학진흥원이 '조보 : 조정의 기별'을 소재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1월호를 펴냈다.

8일 웹진 담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는 매일 아침 왕과 신하들 회의가 끝나면 승정원 관리가 '조보소(조방)'에서 그날 주요 소식을 알렸다.

각 관청에서 나온 '기별서리'는 구두로 전달하는 내용을 종이에 옮겨 조보를 만들었다.

한양에 있는 양반은 매일 아침 조보를 받았다. 지방의 관리나 양반은 조보를 받아보는 데는 5∼10일 정도 걸렸다.

당시 교통환경을 고려하면 조보 발행에 많은 자원을 투자했음을 알 수 있다. 조보로 중앙과 지방이 긴밀히 소통하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조보라는 용어는 조선왕조실록 1508년 3월 14일 중종실록 5권에 처음 나타난다.

1515년 중종이 "조보는 예로부터 있는 것이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조보 기원은 그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기별(奇別)은 조보 다른 이름으로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라는 속담에 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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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조보에서 파직 사실을 알게 되다(삽화 정용연)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중종실록 기록을 보면 조보는 세계 최초 일간신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물이 없어 1650년 독일에서 발행한 '아이코멘데 차이퉁'이 그동안 세계 최초 일간신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17년 4월 경북 영천에서 선조 10년(1577) 활판인쇄로 발행한 민간조보 실물이 나왔다.

아이코멘데 차이퉁보다 83년이나 앞선다. 경북도는 2019년 1월 2일 이를 유형문화재 제521호로 지정했다.

민간조보가 탄생한 배경은 왕과 사대부 전유물이던 조보와 관련한 일반 백성들 갈망이라고 한다.

일반 백성은 조보를 읽을 수가 없어 알 권리를 충족하기 위해 1577년 민간조보를 만들었다.

손으로 조보를 썼으나 민간조보는 활판으로 인쇄했다. 백성은 돈을 주고 구독했다.

민간조보는 관 허락을 받았으나, 발간한 지 3개월 만에 선조가 폐간했다.

조보 발행인들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렸고 유배를 보냈다. 민간조보가 유통한 것에 선조가 크게 노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보가 무엇이길래 그토록 읽고 싶은 갈망을 불러일으켰을까

이번 웹진 필진으로 참여한 노병성(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18세기 한문 단편집인 '동패낙송'에 실린 소설 '조보'에서 그 흥미로운 모습을 소개한다.

가난한 무관 우하형은 문자를 아는 기생 출신 수급비(물 긷는 여종) 궐녀를 만난다.

궐녀는 우하형이 병마절도사가 될 상이라 생각해 경제적인 지원을 했다.

조보로 우하형 소식을 수소문해 평안도 한 고을 수령으로 부임한 그를 찾아가 관아 안살림을 관리한다.

그 뒤에도 조보를 계속 읽으며 조정 정세를 파악하고 이런 정보를 기반으로 뒷바라지를 한 결과 우하형이 마침내 병마절도사로 승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문을 읽을 줄 아는 기생 출신 첩이 조보를 활용해 조정에 영향을 끼쳐 남편을 병마절도사로 만드는 이야기는 접근을 차단한 정보에 대한 백성들 갈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처럼 조보 내용은 대체로 관리 임면, 이동, 승진 등 인사 동정 기사가 가장 많았다.

국왕 동정 기사, 날씨·기상·천문 관련 기사, 사망 기사, 농사기사, 범죄기사, 자연재해 기사, 외국 동정 기사 등이 실렸다.

현재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에서 조보를 매일 발행했다. 전쟁 중에도 펴냈다.

승정원에는 기자 역할을 하는 '주서'가 도승지 감독 아래 날마다 조보를 작성했다.

여러 가지 기사 가운데 취사선택을 해야 했고 빠른 속도로 알아보기 쉽게 글씨를 써야 했다.

조보에 기사가 실리는지 빠지는지, 어떤 내용인지 등은 정치인에게 예나 지금이나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많은 공격을 받기도 했다.

조보에도 보도지침이 있어 군사기밀이나 비밀을 욕하는 내용은 내지 않도록 했다.

조보를 읽는 독자들 생각과 의견은 선인들 일기에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16세기에 쓰인 초간일기 저자 권문해는 공주 목사로 근무하던 1582년 1월 3일 새해 첫 조보에서 본인 파직 소식을 듣는다. 죄수가 탈옥한 일 때문이다.

�국학진흥원은 2011년부터 운영하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 조선 시대 일기류 244권을 기반으로 창작소재 4천872건을 구축해 검색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공병훈 교수는 "소통은 결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나누는 것이고 개인을 연결하고 공동체를 형성해 살아 움직이게 한다"며 "조보로 소통한 선인들 모습에서 참신한 창작 소재를 발굴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kimh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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