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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불안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 "노사 갈등 줄이려다 되레 키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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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최저임금 결정 이원화] 옥상옥 우려

세계일보

고용노동부가 최근 ‘최저임금 결정체계 이원화’ 방침을 밝힌 것을 두고 자칫 ‘옥상옥(屋上屋·불필요한 일을 두 번 한다는 뜻)’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정부가 검토하는 안은 최저임금 상하한 구간을 결정하는 전문가 집단인 ‘구간설정위원회’를 신설해 노·사·공익위원이 정해진 구간 내에서만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사가 추천한 전문가들이 합의를 이루지 못해 구간을 넓게 설정할 경우 결국 최저임금 결정과정이 기존과 다를 게 없고 이해당사자 간 갈등만 증폭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소모적인 갈등 줄어들까? 전문가 “잘못하면 갈등 확산될 가능성 높아”

고용노동부가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전문가 공개토론회’에서 박귀천 이화여대 교수는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소모적인 갈증이 줄어들까하는 부분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TF안에서도 논쟁”이었다며 “옥상옥처럼 돼서 전문가들도 갈등하고 결정위에서 또 갈등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전문가 그룹이 1년 내내 여유를 갖고 다양한 기준, 자료를 가지고 논의를 하면서 어느 정도 구간을 제시하고 좁히다 보면 다소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장점을 기대해본다”면서도 “다만 갈등이 더 중복된다면 새로운 대안은 뭐가 있을까”하는 고민을 내비쳤다.

전윤구 경기대 교수도 “이번 개편안에서 제시한 구간설정위 구성 2안(전문가를 노·사·정 각 3명씩 추천해 9명으로 구성)과 결정위원회 구성 2안(노·사·공 위원 각 5명으로 구성)으로 결합이 된다면 이건 옥상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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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전문가 토론회. 연합뉴스


구간설정위에서 최저임금 상한 구간을 넓게 잡으면 기존과 다를 게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동안 사용자 측은 지난해를 빼고 최근 9년간 최저임금 동결을 제시했고, 노동자 측은 20~79%의 들쭉날쭉한 인상률을 제시했는데 구간설정위가 20%이상의 인상률을 설정한다면 기존 합의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 구간의 폭이 넓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구간설정위를 정부 측 전문가로 구성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고 제안했다. 권 교수는 토론회에서 “진보정부에서는 정책적 기조에 맞게 (최저임금) 상향에서 설정한 사람들을 참여시킬 것이고, 보수정부에서는 반대쪽 위원들을 참여시킬 것”이라며 “선거라든가 (국민이) 판단을 구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책임을 최저임금위원회와 함께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 경우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국 정부가 결정한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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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 “새로울 게 없는 개편안…결국 정부가 결정하게 돼”

노사 양측 모두 사실상 변한게 없는 개편안이란 기류가 많다.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이 이미 상·하한선을 제시해왔던 상황에서 따로 구간설정위를 만들어봤자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류필선 소상공인연합회 차장은 통화에서 “이원화 방안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구간설정위) 전문가 위촉 과정에서 양측의 입장이 반영된다면 기존의 재판이 될 수 있다”며 “결정위원회 역시 사용자와 노동자, 공익위원으로 구성되면 결국 지금처럼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들도 근본적인 문제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9일 기자회견문을 통해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공익위원이 상하한선을 제시하면서 운영을 해오고 있다”며 “정부는 정부 추천 공익위원이 사실상 결정권을 행사하는 심의구조를 법 개악 추진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정부입장에 따라 최저임금인상률이 달라진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공익위원 선출기준만 바꾸면 된다”고 반발했다.

30년간 해묵은 최저임금 갈등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한 채 고용노동부는 결정체계 개편 안에 대한 여론 수렴에 나서고 있다. 오는 21일부터 30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개편안에 대한 의견을 모을 계획이며 24일에는 대국민 토론회를 개최한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구간설정위원회, 결정위원회 구성안을 확정하고 오는 2월 임시국회를 통해 법 개정을 마무리 할 예정이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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