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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신재민 폭로’가 남긴 정말 고민해야 할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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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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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를 출입하고 있는 방준호입니다.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의 폭로 이후 당혹, 안타까움, 미안함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으로 기재부와 출입기자들은 2019년을 열고 있습니다. 오늘은 신 전 사무관 폭로로 시작된 ‘2017년 말 적자국채 발행 논란’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아, 이 사안은 너무 어렵다.” 기재부 기자실 곳곳에서 한숨이 나옵니다. 등장하는 개념 자체가 복잡한 것이 첫째 이유, 제시된 증거만으로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당시 청와대와 기재부의 ‘본심’을 파악해야 했던 것이 둘째 이유입니다. 특히 당시 오간 주장의 배경에 대해선 여전히 청와대와 기재부도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2017년 적자국채 논란은 큰 규모의 초과세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아직 한도가 남아 있는 적자국채를 더 발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갈등입니다. 적자국채를 더 발행하면 국가채무비율이 오르고 이자 부담이 생깁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2017년 총수입을 더 많이 남겨 이 가운데 일부를 이듬해 복지나 일자리, 공공인프라 투자 등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같은 확장적 재정운용(복지, 공공인프라 등에 정부 지출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신 전 사무관의 주장 속에서 청와대는 ‘적자국채를 더 발행하자’는 입장이었고, 기재부 국고국은 ‘발행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애초 불거진 청와대 외압 논란은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습니다. 국가 재정에 대한 고민을 청와대가 나눠 지는 것이 크게 어색한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기재부 국고국의 뜻대로 적자국채 추가 발행은 없던 일이 되기도 했고요.

오히려 정말 중요한 지점은 ‘청와대가 적자국채 발행을 요구한 배경’ 입니다. 재정운용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철학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정부의 공식·비공식 설명을 요약해보면, ‘이듬해(2018년) 추경에 활용할 수 있는 세계잉여금(애초 예산안보다 덜 쓰거나 세금이 더 걷혀 남은 돈)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2018년 실제 재정운용과 겹쳐보면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많습니다. 2018년 3월 정부는 추경안을 내놓았지만 3조9천억원 규모의 ‘미니추경’에 그쳤습니다. 2017년 국가채무비율을 올리면서까지 2018년 추경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치고는 너무 적은 액수입니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강조하는 청와대의 입장이 일관되게 유지됐다면 “2017년 적자국채 발행을 못했던 만큼, 이번 추경에선 조금 빚을 내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만큼 재정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더군다나 2018년에는 경기 둔화 조짐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국가채무비율과 관련해서도 청와대는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여 의문을 자아냅니다. 2017년 적자국채 발행을 요구한 것과는 반대로 이듬해(2018년)에는 청와대가 국가채무비율 ‘관리’(축소)에 나서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2017년에 이어 지난해 막대한 규모의 초과세수(25조원 이상 추정)가 다시 남았을 때, 정부는 이 가운데 4조원을 같은 해 발생한 국채 조기상환(국가채무비율 하락)에 썼습니다. 당시 정부는 “국가채무를 미리 줄이자는 대통령의 의중도 담겨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 첫해 국가채무비율을 높여, 이후 임기 동안 국가채무 ‘증가율’을 낮추려고 했다는 의심도 나옵니다.

여전히 정부의 ‘본심’은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정부가 재정운용의 원칙에 있어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지속적으로 엿보입니다. 우리나라는 국가경제에서 재정이 차지하는 비중(국내총생산 대비 일반정부 재정규모)이 32.5%(2017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입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줄곧 정부 재정의 역할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빚을 지는 데는 주저하는 ‘국가채무 공포증’은 여전히 떨쳐내지 못한 게 아닐까요. 국가부채를 줄이면서 확장적 재정운용을 하겠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이 모순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안은 적극적 증세정책을 펴는 것뿐입니다. 현재로선 세금이 얼마나 걷힐지에 대한 세입전망 실패로 본의 아니게 더 걷힌 초과세수가 확장적 재정운용의 주요한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한겨레

신재민 전 사무관이 “자기가 경험한 좁은 세계 속의 일을 가지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문재인 대통령 새해 기자회견 중)했을 수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정부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재정을 운용할지 입장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중요한 고민거리를 던진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방준호 경제팀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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