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을 둘러싼 갈등으로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가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와 민주당이 극한 대치를 지속하고 있다. 양 측 모두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는 상황을 전제해 전략을 세우고 있는 등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서 셧다운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민주당은 워싱턴으로 돌아와 셧다운을 끝내고 남쪽 국경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끝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2일 오전 0시를 기해 셧다운 사태가 22일차로 접어들며 종전 가장 길었던 1996년 1월 빌 클린턴 정부 때 기록을 23년만에 넘어섰지만 대화보다는 민주당을 압박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 교도소 수감자의 23%가 불법이민자이고, 국경에서 (불법 이민자) 체포가 230% 증가했다”면서 “나는 지금 백악관에서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민주당은 돌아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압박에도 민주당은 향후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경우에 맞서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WP는 국가비상사태를 견제할 수 있는 법적 소송을 염두에 두고 민주당이 법률가들과 함께 대응 전략을 짜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전날 일부 부처나 기관이라도 문을 열게 하자는 취지에서 내무부와 환경보호청(EPA) 예산이 담긴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은 아예 표결을 부치지도 않았다. 여야는 주말에도 협상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화하고 있는 셧다운 사태는 벌써부터 공직 사회를 중심으로 타격을 주고 있다. 이번 셧다운 이후 80만여명의 연방 공무원이 급여를 받지 못했는데 이중 연방수사국(FBI) 등 필수직군으로 분류된 42만여명은 셧다운 이후에도 출근하고 있고, 나머지는 일시해고 상태다. 국무, 국토안보 등 15개 미 정부부처 가운데 9개 부처가 셧다운 영향을 받고 있는 가운데 전년도 세금 보고 시작일(28일)을 앞둔 국세청 직원들의 업무도 지장을 받아 지방정부까지 파장이 미칠 것이란 전망이다.

이런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곧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이란 예측도 제기되지만 당장 공화당 내부에서부터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 연방정부법에 따르면 미 대통령은 육군의 각종 건설 사업을 중단시키고 여기서 생긴 예산을 긴급한 사건에 전용할 수 있는데 관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만약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경우 이런 방법을 활용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런 시나리오에 대해 미 최대의 육군 군사기지인 포트 후드를 자신의 지역구에 두고 있는 로저 윌리엄스 공화당 하원의원은 “나는 그(트럼프 대통령)가 그렇게 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며 “(지역구의) 돈이 그리로 간다면 난 불만을 터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 심슨 공화당 하원의원도 푸에르토리코 등을 위한 미 공병단의 긴급구호자금을 전용하자는 방안에 대해 “공화당 여러 의원들을 곤란하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미 국민의 67%가 셧다운 해법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도 트럼프 정부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미국 CBS방송은 전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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