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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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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vs 역사, '말모이'와 '시골말 캐기'에 담긴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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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한글박물관 '사전의 재발견'

우리말 사전 발자취 담은 기획전

영화 속 전개와 비교해보니...

중앙일보

영화 '말모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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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말모이'는 일제의 탄압에도 우리말 사전을 펴내려고 애쓴 사람들의 이야기. 뒤늦게 한글을 깨치는 판수(유해진) 같은 극 중 캐릭터는 상상의 산물이지만, 실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을 비롯한 역사가 영화에 녹아있다. 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3월 3일까지 이어지는 기획전 '사전의 재발견'(무료 관람)이다. 허구와 실제가 뒤섞인 영화를 보고 떠오른 궁금증을 풀어가는 데도 좋은 기회다.

주시경과 그 제자들의 '말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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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원고. 표지 안쪽의 제목은 '말모이'의 한글 자모를 풀어 쓴 것이다. 조선광문회. 1910년대.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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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원고. 현재 'ㄱ'부터 '걀죽'까지의 원고가 남아 있다. 조선광문회. 1910년대.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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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에 나오는 '말모이'는 말을 모은다는 뜻에서 사전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자, 1910년대 한글학자 주시경(1876~1914)과 그 제자들이 집필한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 제목. 완성단계에서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뒤 실제 발간되진 못했지만 우리말 사전의 기틀이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그 일부인 'ㄱ'부터 '걀죽'까지의 원고가 전해져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전시장에는 종이로 겹쳐 붙인 부분까지 재현한 복제본도 마련, 관람객이 넘겨 볼 수 있다. 한자어는 '+', 외래어는 'x'를 낱말 앞에 붙여 순우리말과 구분한 것도 눈에 띈다.

금을 캐듯 전국에서 '시골말 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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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모이'의 판수(유해진)은 전국 각지 출신의 지인들을 모아 사투리를 수집에도 활약을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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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처럼, 실제 사투리 수집에 들인 노력도 여러 자료에 나타난다. 영화의 주배경인 1940년대에 앞서 잡지 '한글'에 이미 1935년 실린 광고에 이런 대목이 있다. “조선어사전편찬회에서 각 지방 방언을 수집하기 위해, 사오년 전부터 부내 각 중등학교 이상 학생을 총동원해 하기 방학 시 귀향하는 학생에게 방언을 수집하였던 바, 이미 수집된 것이 만여 점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을 장차 정리하여 사전 어휘로 수용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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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말 캐기 잡책. 표지 모습이다. 최현배. 3판 1957년(초판 1936년). 발행 정음사. 종이에 활자 인쇄. 15.2X10.8cm.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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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말 캐기 잡책. 항목별로 낱말을 열거하고 이에 해당하는 각 지역의 말을 빈칸에 적도록 되어 있다. 최현배. 3판 1957년(초판 1936년). 발행 정음사. 종이에 활자 인쇄. 15.2X10.8cm.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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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는 각지에서 보내온 사투리를 잡지에 실은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사투리 수집에 활용할 전용 수첩도 만들었다. 국어학자 최현배(1894~1970)가 엮은『시골말 캐기 잡책』이 그것. 주제별로 약 1000여개에 달하는 낱말을 늘어놓고 빈칸에 이에 해당하는 각 지방의 말을 적도록 했다. 머리말을 보면 '시골말'의 반대가 '서울말'이 아니란 점도 적혀 있다. “여기서 시골말이란 것은 대중말(標準語·표준어)과 사투리를 아직 구별하지 않은 모든 시골(地方·지방)의 말을 이름이니, 서울말도 서울이란 한 시골(地方·지방)의 말로 보고서 캠이 옳으니라”

서울역에서 기적처럼 발견된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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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큰사전 원고. 조선어학회에서 1929년부터 1942년까지 13년 동안 작성한 원고의 최종 수정본. 조선어학회. 1929~1942년. 한글학회 소장, [사진=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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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큰사전 원고. 손으로 쓴 원고를 수정하거나 첨삭한 부분이 그대로 담겨 있다. '유'로 시작하는 낱말 중에 '유관순'도 눈에 띈다. 조선어학회. 1929~1942년. 한글학회 소장, [사진=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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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지막에는 조선어학회 실제 사전 원고가 등장해 묵직한 감동을 준다. 영화에서 이를 되찾는 과정은 상상력을 발휘한 허구이지만,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8일 서울역 창고에서 원고가 기적적으로 발견된 건 사실이다. 그 감격은 2년 뒤 드디어 발행된 사전의 앞부분에 이렇게 적혀 이다. “이날 원고가 든 상자의 뚜껑을 여는 이의 손은 떨리었으며, 원고를 손에 든 이의 눈에는 더운 눈물이 어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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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모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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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6500여장, 총 17권의 방대한 원고 가운데 12권은 한글학회가, 5권은 한글학회의 기증으로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번 기획전에는 한글학회의 소장본 가운데 '시~싶''유~윷판''ㅎ~허리' 등 세 권이 나왔다. '유'로 시작하는 낱말 중에는 '유관순'도 눈에 띈다. 김민지 학예연구사는 “백과사전이 없던 당시에 우리말 사전이 언어적 뜻풀이 외에도 전문용어를 풀이하는 백과사전의 역할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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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모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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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그 전모가 그려지지 않지만, 1942년 10월부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에 검거된 사람만도 33명. 사건의 발단이 된 곳을 따라 대부분 함경남도 함흥으로 붙잡혀 갔다. 수감 중에 고문을 당하거나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한글학자 이윤재(1888~1943)와 한징(1886~1944)은 감옥에서 숨을 거뒀다. 1947년 시작된 『큰사전』의 발간은 한국전쟁의 발발로 다시 난관을 겪다가 1957년 전 6권으로 완간됐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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