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이스법]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상승→최저임금 결정구조 등 제도개편 논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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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태원에서 20년 가까이 음식점 여러개를 운영하던 방송인 홍석천씨가 일부 폐업을 결정한 일이 화제가 됐다.
그는 폐업의 이유를 대여섯가지 언급했는데 그 중 하나가 '나' 다. 나는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홍 씨는 부랴부랴 해명했다. "폐업 결정은 폭등하는 임대료, 부족한 주차공간, 상권 변화, 외식업 트렌드, 가성비, 그리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여러 이유가 있다"고.
나의 이름은 최저임금법. 나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미워한다. 나는 모든 경제현상의 원인이자 결과로 꼽힌다. 그리고 나는 투쟁과 협상의 단골 메뉴로 매년 도마에 오른다.
언제부턴가 나는 경제·사회·정치 현상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내가 왜 존재하는지. 한 번이라도 차분히 귀기울여주는 사람은 어디 없나.
#전태일과 홍석천. 그 사이
나는 이제 서른 세 살.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매우 늦게 태어났다. 최저임금제도는 1894년 뉴질랜드, 1896년 호주, 1909년 영국, 1912년 미국이 차례로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 최저임금제도 관련 규정을 넣었다. 하지만 당시 관료들은 우리나라 경제상황이 최저임금 제도를 시행하기에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논의는 30년 넘게 미뤄졌다.
우리 경제가 이제는 최저임금 제도를 수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건 1980년대 중반이다. 정부는 1986년 12월 31일 최저임금법을 제정·공포하고 1988년 1월 1일부터 최저임금제도를 시행했다. 특히 1987년 9차 개정 헌법은 최저임금제 시행을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1987년 12월18일. 첫 최저임금심의위원회가 출범하고 현판식을 하고 있다./사진=최저임금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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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탄생과 함께 '노동 약자 보호'의 임무를 가장 먼저 부여받았다. 생계비에 못미치는 수당을 받던 청소년, 여성 노동자의 '착취'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경영진에 비해 협상력이 떨어지는 소수 근로자가 '적정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내가 태어나기 18년 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말을 남기고 분신한 전태일 열사 사건은 전국 노동운동에 불을 지폈다. 전국 2500여개에 달하는 노동조합이 생겼고 최저임금제도 도입 요구의 토대가 됐다.
#매년 상승. 어찌보면 당연한.
나는 2000년이 돼서야 비로소 모든 사업장의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처음 시행된 1988년만해도 '제조업 상시근로자 10인 이상' 이라는 단서조항과 18세 미만 청소년·수습·장애인 적용 제외조항이 있었다. 당시 전체 임금 노동자의 20%만 나와 만날 수 있었다.
이후 4차례 적용 대상 확대로 2000년 11월 24일부터 모든 임금노동자가 최저임금을 보장받게 됐다. 제조업에서 시작한 파도는 광업, 건설업, 전 산업 순으로 커졌다. 최저임금 적용 사업체의 상시근로자 기준도 10인→5인→1인 이상으로 확대됐다. 수습은 10% 감액 적용으로 완화됐다.
최저임금 기준은 매년 올라갔다. 올해 최저임금은 8350원. 작년보다 10.9% 올랐다. 1988년 최저임금이 섬유·식료품 등 1그룹 462.5원, 담배·화학 등 2그룹이 487.5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8배 가량 인상된 셈이다.
1991년 10월10일. 제3차 전체회의에서 노·사·공익 위원들이 최저임금(안)을 제시하는 모습/사진=최저임금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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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초기던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매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0%를 상회했다. 1993~1997년까지는 6~9%대 인상률을 이어오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인해 1999~2000년은 각각 2.7%, 4.9%로 소폭 인상에 그쳤다. 하지만 한국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난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최저임금은 다시 연평균 11.3% 인상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로 최저임금 인상률은 다시 낮아져 2009년 6.1%, 2010년 2.8%, 2011년 5.1%를 기록했다. 2011~2016년부터는 최저임금이 6~8%대의 인상률을 유지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2018년 7530원(인상률 16.4%), 2019년 8350원(10.9%)으로 대폭 상승했다.
내가 곧 임금이 되는 점은 의아했다. 임금 결정의 상한선이 기업의 지불능력이라면 하한선은 생계비다. 나는 하한선에 가깝다. 하지만 경제불황과 물가상승이 동시에 벌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은 임금 결정구조를 뒤틀었다. 여전히 임금은 하한선 아래, 또는 상한선 위를 넘나들고 있다. 나는 이제 시급을 따지는 아르바이트생의 전유물처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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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
나는 매년 '뜨거운 감자' 지만 사각지대도 여전히 존재한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해 8월 발표한 '최저임금 적용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사업주가 최저임금을 고지한 업체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경우 87%가 최저임금이 '잘 지켜진다'고 답했다.
반면 사업주가 고지하지 않은 곳의 근로자는 36%만이 잘 지켜진다고 말했다. 고지여부도, 지켜지는지 여부도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26%나 된다.
최저임금위원회의 또 다른 보고서에 따르면 약 200만 이상의 근로자들이 현 최저임금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고용의 6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30명 미만 영세기업들은 최저임금 미이행의 고발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내가 정말 노동자의 저임금을 해소시켰는지. 아니면 저임금근로자의 고용을 감소시켰는지. 근로 빈곤을 줄이기 위한 정책효과가 있는지, 소비자 물가만 상승시켰는지.
전세계 국가들의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이 수십년간 연구했지만 여전히 '정답'은 없다. 영국은 최저임금제를 1993년 폐지했다가 6년만에 다시 시행했다. 고용에 미치는 영향과 빈곤 근로자에 대한 엇갈린 판단때문이었다.
최근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중심으로 불거진 '최저임금 논란'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의 한 축으로 최저임금을 활용했다.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상승때문에 더 힘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소상공인들도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고용을 축소시켰다고 반발한다.
정부의 최저임금 상승 전략은 아직까지는 즉각적인 경제 지표보다 우리 사회가 임금 체계와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합리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처절히' 얻은 계기라는 측면의 평가가 더 많다.
2017년 7월 최저임금위원회 제11차 전원회의. /사진=최저임금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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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계류중인 개정안 81건…나의 앞날은?
국회는 나를 뜯어고치겠다고 발벗고 나섰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 정책에 반발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주축이 됐다. 2월 임시국회에 올려 정부여당 경제정책을 비판하겠다는 심산이다. 20대 국회들어 발의된 개정안은 81건. 지난 19대 국회(25건)와 비교해도 세 배 이상 늘었다.
내용은 주로 최저임금 상승분 적용 시점 유예 또는 최저임금 동결이다. 최저임금 산정 기준에서 주휴시간을 빼야 한다는 내용과 업종별 차등 적용, 최저임금위원회 새로운 구성 방안 등도 있다. 대표적으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매년 1월1일 시작하는 최저임금 적용 시점을 6개월 유예하자는 개정안을 대표발의헀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한 영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1996년부터 6년간 최저임금위원장을 역임했던 김수곤 전 위원장은 2019년 대한민국에 이같이 조언한다. "정치계는 최저임금 몇 푼을 더 올리고 내리는 것으로 싸울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임금체계를 합리적으로 개편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줄 것을 권고한다."
지금까지 내 이야기를 들어준 당신에게 묻고싶다. 나는 정말 죄인(罪人)인가.
김하늬 , 박승두 인턴 기자 hone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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