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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나윤석의 영화 속 그곳] 절망·분노 달래듯...솔숲에 스며든 '용서의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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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기회송림공원-'밀양’

200년前 마을 보호 위해 방수림 조성

병풍 두른듯 9,500그루 소나무 빼곡

영화 클라이맥스 집회 장면 촬영장소

밀양역 '전도연 거리'로 발길 옮기면

약국·양품점 등 상호·간판 그대로 있어

마치 영화 속에 있는 듯 여행객들 반겨

피아노학원 세트장 개조한 ‘카페 밀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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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2007년)’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줬다고요···?”라며 온몸으로 절규하는 신애(전도연)의 모습이 떠올라 몸서리치게 되고는 한다.

유괴범의 손에 아들을 잃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신애는 종교에서 구원을 얻는다. 교회가 설파하는 사랑의 교리는 쓰러진 신애를 일으키는 은총이요, 축복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범인을 용서하기로 마음먹는다. 결심이 서기 무섭게 신애는 교도소로 향하는데 이를 어쩌나. 깨끗한 안색으로 나타난 범인은 신애에게 “나도 교도소에 들어온 뒤 하나님을 만났다”고 고백한다. 떨리는 신애의 눈동자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이 죄 많은 인간을 용서하신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며 밝게 웃는다. 죽은 아이는 내 아들인데 누가 나보다 먼저 살인자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는 “누구도 신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 수는 없는 법”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신을 다 안다고 착각했던 신애는 뒤통수를 세게 한 방 얻어맞는다. 아들의 죽음 이후 그를 지탱했던 ‘믿음(信)’과 ‘사랑(愛)’은 이렇게 파도에 휩쓸리는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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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던 신에게 배반당한 신애가 할 수 있는 일은 신을 향한 반항뿐. 신애는 반쯤 미친 표정으로 신도들이 모인 야외집회장에 몰래 들어가 분위기를 망쳐놓는다. 영화의 결정적인 클라이맥스라고 할 만한 이 집회 장면은 밀양시 산외면 남기리에 위치한 ‘기회송림공원’에서 촬영됐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밀양강을 따라 폭 200m, 길이 1.5㎞의 공간에 조성된 숲을 메운 9,500그루의 소나무와 만난다. 이 숲은 약 200년 전 마을 사람들이 수시로 범람하는 강으로부터 마을과 농토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수림(防水林)이다. 사색과 힐링의 여행지로 더할 나위 없는 송림공원은 해마다 여름철이면 캠핑족(族)을 위한 야영지로 변모한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소나무와 밟을 때마다 기분 좋은 촉감을 전해주는 솔밭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처럼 인상적인 풍경을 선물한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한자 ‘밀양(密陽)’을 번역한 ‘Secret sunshine(비밀의 햇볕)’인데 공원을 거닐다 보면 사시사철 푸른 나무를 아름드리 빛내는 따스한 햇볕의 기운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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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공원 외에 신애가 운영한 피아노학원 세트장, 하나님을 향한 신애의 사랑과 원망이 동시에 스며 있는 밀양남부교회는 밀양역 인근의 ‘전도연 거리’에 옹기종기 자리한다. 이 가운데 피아노학원 세트장은 영화 제목과 같은 이름의 카페로 꾸며 음료를 판매하고 있다. 전도연 거리에 자리한 일부 제과점과 약국·양품점 등은 영화 촬영 이후 10년 넘게 흐른 지금도 당시와 똑같은 상호와 간판을 내걸고 영업 중이어서 영화 ‘밀양’을 떠올리며 이곳을 찾은 여행객들에게 반가운 기분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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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중혁은 2013년에 펴낸 산문집 ‘모든 게 노래’에서 이렇게 썼다. “사람이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행동이 위로라고 생각한다. 위로는 죽으려는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모든 것에 환멸을 느낀 한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도 있다.” ‘밀양’은 참 고통스러운 영화지만 우리가 이 이야기를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 것은 진심 어린 위로의 힘을 아는 종찬(송강호)이라는 인물 덕분이다. 카센터 사장인 종찬은 영화의 시작과 함께 밀양으로 이사 온 신애의 차를 수리해주면서 연을 맺는다. 종찬은 점점 신애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지만 그 사랑의 깊이만큼 대단한 일을 해주지는 못한다. 대신 그는 교회 예배당에서, 장례식장에서, 교도소에서 늘 신애보다 한두 걸음 떨어져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신애가 쓰러지면 조용히 다가가 손을 내밀고 슬픔이 차오를 때면 목놓아 통곡하도록 내버려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종찬은 신애와 같이 있다. 집 앞마당에서 머리를 자르려는 신애를 위해 종찬은 기꺼이 거울을 들어준다. 그 거울을 보며 신애는 싹둑싹둑 머리를 자른다.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좇던 카메라는 이윽고 잡동사니가 굴러다니는 땅바닥을 비춘다. ‘밀양’의 첫 장면이 차창에 비친 하늘이었음을 뒤늦게 떠올린 관객은 비로소 생각한다. 정말로 신이 있다면 그 초월적 존재는 저 높은 하늘 위가 아니라 비록 누추하지만 우리가 모여 사는 이 땅 위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는 것이라고. 신이 우리에게 고통을 부여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위로와 연대를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글·사진(밀양)=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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