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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현대인의 초상…착한 유전자와 진화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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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진화의 배신…착한 유전자는 어째서 살인 기계로 변했는가

뉴스1

신간 '진화의 배신'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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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영섭 기자 = 이 책은 인류가 천신만고 끝에 생존에 성공해 지구 생물의 찬란한 승리자로 군림하는데 기여한 4개의 유전적 형질을 다룬다.

이 형질 덕분에 인류는 생존했지만 바로 이것으로 인해 현대 인류는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게 이 책의 메시지다. 진화의 역사로 현대 질병의 비밀을 밝히고 해결책을 제시하 게 이 책의 주제다.

◆ 인류 승리의 원동력--4가지 유전 형질

호모 속(屬)이 출현한 후 230만년,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후 20만년간 마침내 인류는 유전의 질서에서 승리하고 지구를 정복했다. 출현 지구 생물 중 현재까지 생존활 확률이 0.2%였다니 인간은 만물의 영장다웠다.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우리 뇌력의 궁극적 승리 덕분이었지만 우리 생존은 언제나 몸에 달려 있었다"며 유전적 형질을 거론하다.

저자는 Δ굶주림 Δ탈수 Δ폭력 Δ출혈, 이 4가지가 인류를 가장 크게 위협해왔다고 진단한다. 인류는 이에 대비해야 했으며, 이는 인류의 유전적 형질을 크게 바꾸었다.

◆ 굶주림에 대비한 유전 형질은 비만의 씨앗으로

먼저 굶주림은 음식이 생길때마다 지나칠 정도로 배불리 먹어두게 하는 유전적 형질을 강화시켰다. 그 결과 우리 몸은 20개가 넘는 분자와 호르몬이 허기와 포만감 조절에 관여하고 3가지 유전자가 좋아하는 단맛과 감칠맛을 감지하는 한편, 25개가 넘는 유전자가 위험한 쓴맛을 찾아낸다.

또 배, 허리, 둔부에 집중된 350억개의 지방세포는 약 13만칼로리(비만일 경우 1400억개, 100만칼로리)의 열량 비축 능력을 자랑하게 됐다. 인류 역사 내내 아사 위협에 직면했던 인류는 과식을 해서라도 많은 양을 흡수하는 쪽으로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 탈수에 대비해 키워진 소금 욕망

탈수를 피하는 것 역시 인간의 생존에 대단히 중요했다. 작고 약한 인간은 사냥감이 쓰러질때까지 뒤쫓아야 했다.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하고, 고단했을까.

이래서 인간은 다른 포유동물보다 많은 땀을 흘리고, 더 많은 양의 물을 마셔야 했다. 이는 짠 음식을 욕망하는 유전적 형질을 키우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 유전자는 심지어 소금이 필요하지 않을 때도 짠 음식을 먹고 싶게 하는 강력한 탈수 방어 기제가 작동하도록 했다.

◆ 폭력에서 살아남기 … 우울의 시작

우리 조상에게 폭력으로 인한 비명횡사는 다반사였다. 우리 조상들은 결코 '온건한 야만인'이 아니었다. 선사시대 비명횡사는 동물 공격이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등의 사고 보다는 살인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인간이 살해 욕구를 지닌 것은 식량과 물, 여성을 차지하기 위함이다. 생물적 진화의 목적에 부합한 행위일 수 있다.

살인 능력 만큼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은 살해당하지 않는 능력이다. 살해 당하지 않으려는 조상들은 극도로 경계하고 두려워하면서 불안해 했다. 도망치거나 싸울 수 없을 경우엔 순종적 태도를 취한 뒤 슬퍼하면서 우울해졌다. 책은 "뚜렷한 이유없는 과잉 경계심. 심지어 공황조차도 생존의 기능일 수 있다"고 진단한다. 불안과 우울이 진화의 탁월한 자기 방어법이었다는 얘기다.

◆ 출혈이 낳은 훌륭한 혈액 응고 시스템

인류가 피할 수 없는 출혈은 심각한 문제였다. 구석기시대 사람의 12%, 초기 농업 정착민의 25%는 살인과 치명적 부상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상들은 피를 흘릴 경우 빨리 응고되기만을 바랬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는 두가지 응고 신속 대응 경로를 갖추게 된다. 혈액 내 혈소판을 통한 응고, 열가지가 넘는 응고 단백질이 도미노처럼 연쇄 반응을 일으켜 섬유 그물망을 만드는 매커니즘 등이다.

이런 4가지 훌륭한 유전 형질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유전 형질은 최근 200년만에 인류의 목숨을 앗아가는 주범으로 돌변한다.

◆ 착한 유전자가 낳은 비만, 소금과잉섭취, 우울, 뇌졸중

살찌기 보다 살빼기가 힘든 것은 유전적으로 그렇기 때문이다. 체중이 감소할 경우 우리 몸에서는 입맛을 돋우는 최소 일곱 가지의 호르몬과 분자가 분비된다. 여기에 현대인의 활동량 감소, 넘쳐나는 고열량의 값싼 음식 등이 결합하면 현대인의 비만은 숙명이 된다.

굶주림에 대비해 인류가 유전적으로 길러온 탁월한 지방저장 능력까지 가세하면 살빼기에 실패한 주변 사람들의 의지를 결코 나무랄 수 없다.

조상들은 하루 0.7그램의 나트륨만 섭취하고도 잘 살았다. 하지만 현대 미국 성인은 일일 평균 3.6 그램을, 세계적으로는 평균 5그램을 섭취한다. 우리는 하루 1.5그램 이상의 나트륨은 필요치 않지만 우리 몸의 탈수 방지 프로그램은 어김없이 작동해 더 많은 소금을 섭취토록 한다. 고혈합의 95%가 본태성인 것도 이 때문이다.

선사 시태와 달리 인류 사이의 폭력과 비명횡사는 거의 사라졌지만 우리의 생존 본능인 두려움 불안 공포 순종 슬픔 우울 등 심리적 기제는 여전히 살아있다.

출혈 방지 유전 형질은 더 끔직한 결과로 이어진다. 미국 내에서 혈액 응고과 직결된 혈전으로 인한 질병(심장마비, 혈전성 뇌졸중, 폐색전 등)은 모든 사망 원인의 25%를 차지한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저자는 "우리의 유전자가 현대의 변화속도에 발을 맞추지 못한다"고 말한다. 현대 인류의 환경은 크게 변했지만 유전적 형질은 선사 시대 이래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류는 생존이라는 전쟁에선 이겼지만 적응이라는 전투에서 지고 있는 셈이다.

◆ 해법은…"실패했다 자책 마세요"

저자는 이런 질병에 대응하기 위해 의지력에서부터 최첨단 기술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대안을 모색한다.

저자는 다이어트, 운동, 소금섭취줄이기, 심리치료 등 다양한 방안이 어느정도 효과를 내지만 그것의 한계도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실패했다고 해서) 죄책감과 가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의미없다. 그 대신 우리는 뇌를 써서 우리의 체질을 바꿀 수 있고, 또 바꿔야 하는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또 다른 선택지는 약과 수술이다. 이미 개발됐거나 개발될 예정인 비만 치료제, 당뇨병 치료제, 지방세포 조작 기술, 장 속 박테리아 개선 등도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아울러 유전자 치료법, 불리한 DNA 및 RNA 조작 기술 등 첨단 기술 개발도 시도될 것이이라고 저자는 예상한다. 저자는 미래를 낙관한다. 그는 "인류가 가진 뛰어난 뇌를 십분 활용해 타고난 체질과 시대의 요구를 일치시켜야 한다. 이는 충분히 승산 있는 싸움"이라고 밝힌다.

◇ 진화의 배신 …착한 유전자는 어째서 살인 기계로 변했는가 / 리 골드먼 지음 / 김희정 옮김 / 부키 / 2만2000원
sosab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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