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작가 중편 'd'·'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엮은 소설집
디디의 우산[창비 제공] |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1970년대 태어나 1990년대 대학생으로 시위에 나가고, 2010년대 현재는 구두회사 직원으로 일하는 가난한 집안 맏딸 '김소영'
그는 '서수경'과 함께 20년을 살았지만, 자신들이 무슨 관계인지 정의할 수 없다.
열두개 미완의 원고를 가진 김소영은 '누구도 죽지 않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딸들의 존재를 부끄러워하는 아버지, 성차별이 만연한 대학생 운동권 사회, 1996년 '연대 사태'의 고립과 폭력 등을 겪으면서 그는 사회로부터 눈을 돌리지만 한편으로는 '어른'이 된다는 것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러던 중 서수경 생일인 2014년 4월 16일을 맞아 김소영은 작은 파티를 계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때에 우리는 저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거나 우리는 그들이 아니라거나 하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그 배가 침몰하는 내내 목격자이며 방관자로서 그 배에 들러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어."(295쪽)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와 모두의 마음에 상처와 부채감을 남겼다.
그리고 인간 내면으로 눈을 돌린 작가들은 다시 사회와 혁명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황정은의 신간 '디디의 우산'(창비)은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두 편 중편소설을 엮은 소설집이다.
두 소설은 인물과 서사는 다르지만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6∼2017년 촛불혁명이라는 시대상과 주제의식을 공유하며 공명한다.
'd'는 2010년 발표한 단편 '디디의 우산'에서 시작해 2014년 단편 '웃는 남자'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받아 안은 작품이다.
연인이던 'dd'의 죽음 후 자신도 죽음과도 같은 하루를 보내던 'd'는 세운 상가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 침잠한다.
상가에서 수십년간 음향기기를 수리한 '여소녀'와 만나 조금씩 다시 세상 속으로 발을 디딘 d는 혁명을 얘기하는 친구 박조배와 함께 세월호 1주기 광화문 광장을 찾는다.
d는 그곳에서 "혁명을 거의 가능하지 않도록 하는" 공간, 그 진공을 만나 모든 것을 하찮게 느끼지만 오히려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얇은 유리 껍질 속 진공"에서 쓰라린 깨달음을 얻는다.
"d는 무심코 손을 내밀어 그 투명한 구를 잡아보았다. 섬뜩한 열을 느끼고 손을 뗐다. 쓰라렸다. d는 놀라 진공관을 바라보았다. (…) 우습게 보지 말라고 여소녀가 말했다. 그것이 무척 뜨거우니, 조심을 하라고."(145쪽)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서 김소영은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 판결 순간을 서수경, 동생, 그리고 조카와 함께 지켜본 뒤 이들이 모두 잠든 조용한 오후를 맞는다.
그는 누구도 죽지 않는 이야기 한편의 제목을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로 하고 싶다고 말한다.
"누구에게도 소용되지 않아, 더는 말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로."(316∼317쪽)
그것이 가능한 그날이 바로 '혁명이 도래했다는 오늘'인 것이다.
이처럼 두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혁명'이다.
두 소설은 양쪽 주인공이 세월호 1주기를 맞은 2015년 4월 16일 세종대로 사거리가 '두개의 긴 벽을 사이에 둔 공간'(132·290쪽)이 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같은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128·289쪽)과 마주치면서 중첩한다.
"다시 소설을 써야겠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을 때 내게는 누군가의 죽음 외에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그걸 어떻게든 소설로 쓰지 않으면 소설 쓰는 일이 여태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주 어려워질 거라는 직감이 있었다. 종래 내가 가진 것 중에 무언가 심각하게 파괴된 것처럼 종래 내가 쓴 소설 중 무언가 파괴될 필요가 내게는 있었고 나는 '디디의 우산'을 선택했다. '디디의 우산'을 선택한 이유는 디디가 혁명, 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작가의 말' 부분)
연인의 죽음이라는 비극과 암울한 시대상, 사회적 참사를 얘기함에도 황정은 소설은 절망적이지 않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끌어안아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을 응원하게 한다.
두 소설 사이에는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라는 문장이 삽입됐다.
비 오는 새벽 친구들의 귀가를 걱정하며 우산을 챙기는 dd의 생각이자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살피는 마음이야말로 혁명을 가능케 하는, 혹은 혁명 그 자체의 면모라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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