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이해충돌 아니라 손해충돌? 그말이 그말인 손혜원 발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나전유물 구입, 작가 발굴, 작품 지원, 공방 지원, 유통점 개설, 해외전시 지원, 개인전 지원, 도록 출간, 신상품 개발… 이렇게 13년을 보내며 통장은 바닥나고 목포를 한국나전의 중심으로 만들려 했는데… 이익충돌이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 경우는 ‘이해충돌’아닙니다. ‘손해충돌’입니다.”

중앙일보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내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지난 23일 오후 목포 투기 의혹 현장에서 의혹을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손혜원 의원이 24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는 지난 23일 목포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도 이해충돌과 관련한 질문에 ▶본인이 사적인 이득을 취득한 적이 없고 ▶남편 정건해씨가 이사장인 재단과, 대표로 있는 기업(크로스포인트인터내셔널)이 취득한 목포 부동산 역시 추후 국가에 기부할 것이니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폈다. “제가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제 이익을 위해 움직이거나 남을 움직인 적이 없다” “제가 국회에서 발언하면 (조카 소유의) 창성장 장사가 잘되나?” 등의 발언도 했다. 이전에도 “단 일원(1원)도 어디에도 이익충돌은 없다”고 했다.

이번 사안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시민들은 “손 의원과 언론이 같은 단어를 두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래서 행정학사전을 뒤져봤다.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 이익충돌·이해상충과도 혼용되는 단어다. 행정학에서는 ‘공직자의 사적 이익과, 공익을 수호해야 할 공직자의 책무가 서로 부딪히는 상황’으로 정의한다. 공직자가 두 이익 사이에 상충하는 상황을 그대로 유지한 채 공적 업무를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현행 공직자윤리법도 유사한 내용의 ‘이해충돌 방지 의무’ 조항(제2조의2)을 두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마찬가지다. 2003년 이해충돌 방지 가이드라인엔 “공적 의무·책임의 수행에 부당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적 지위에서의 이익을 공직자가 가지고 있는 경우”로 돼 있다.

이에 대해 최계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7년 ‘이익충돌에 관한 법적 연구’ 논문에서 “이해충돌 그 자체는 부패(corruption)가 아니다. 부패는 의도적 행위에 의한 결과지만, 이해충돌은 의도하지 않게 발생한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손 의원이 간과한 게 바로 그 지점이다. 손 의원은 “내게 이익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아직 부패로 인정되지 않았을 뿐 이해충돌 상황에는 놓여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 인사들은 “손 의원이 이해충돌의 개념을 혼동한다”고 지적한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손 의원은 사익을 취한 게 없다는 취지인데, 사익을 추구하려고 한 건 아닐지라도 결과적으로 이익과 관련된 것이어서 이해충돌에 해당한다”며 “이해충돌을 조금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손 의원이 ‘기부’를 언급하며 장차 공익을 위한 것이란 취지로 해명한 걸 두고도 하 교수는 “기부하는 것으로 사익이 상쇄되는 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중앙일보

전남 목포시 근대문화역사공간 전경. 목포=프리랜서 장정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도권의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도 “이해충돌 방지라는 것은 공직자가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사적 이익이 연관될 수 있으면 거기에 대한 권한 행사를 회피·자제해야 한다는 취지”라며 “사적 이익과 결부된 사안에 대해 공적 권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외관이 형성되면 결과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해충돌로 여겨질 만한 상황이 되면 그게 이해충돌이란 의미다.

손 의원이 남편 법인 명의로 부동산을 구입케 한 과정 역시 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익명을 요청한 한 판사는 “손 의원이 백지신탁한 회사의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행위는 공직자윤리법 14조의11 ‘의견표명’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손 의원이 백지신탁한 해당 업체 주식이 아직 처분되지 않아서다.

그러나 손 의원이 몸담았던 여당 내 일부는 손 의원처럼, 이 같은 ‘일반론’에서 벗어난 인식을 보여준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4일 유튜브 채널 ‘씀’에 출연해 “이해충돌 문제와 관련해선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동산) 전·월세나 상가 임대를 주고 있는 국회의원이 전·월세와 임대료 상한제 도입에 반대한다면 이것도 이해충돌인가”라고 물었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는 “법치가 발달한 서구사회와 달리 우리 사회에서 이해충돌이란 개념이 확고하게 뿌리내렸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번 논란을 계기로 공직자의 이해충돌에 대한 법적 개념과 인식을 재정립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 이해충돌이란 개념의 공감대가 확고하게 형성돼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쪽만 옳다고 판단하는 건 불공정하다. 논란이 정리되면, 이해충돌과 관련한 제도 개선과 윤리의식 제고를 위한 사회적 논의가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